21.06.04 07:39최종 업데이트 21.06.0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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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지난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성소수자와 노회찬 ①에서 이어집니다.)
 

2007년 6월 2일, FTA 퀴어문화제에 참석한 노회찬. ⓒ 노회찬재단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의 색깔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일곱 가지 색깔이 서로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2007년 6월 첫 번째 토요일인 6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는 무지개색 깃발들이 나부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도 훨씬 낙후돼 있던 그 당시, 그 무지개 깃발 앞에 노회찬(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었다.
 
노회찬은 이어 "우리 헌법에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나와 있다"라면서 "종교든, 사상이든, 양심이든, 학문이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양심과 선의에 기초해 스스로 가족 구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노회찬은 동성결혼 합법화, 성전환자 성별변경 입법화 등을 약속했다.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정책간담회: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
'똑같아예, 딴 데하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예'

 

2007년 6월 16일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정책간담회: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에 참석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와 방송인 홍석천씨. ⓒ 노회찬재단

 
2007년 6월 16일 연예인 홍석천씨가 운영하는 이태원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 노회찬은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정책간담회: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 자리에 참석,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LGBT'(Lesbian, Gay, Bisexuality, Transgender) 30여 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노회찬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날 자리는 정책 간담회란 이름을 '거창하게' 내걸었지만 사실은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후보가 성소수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일은 어떤 측면에서는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전 서울시장)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해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동성애 비하 발언을 하고도 여전히 지지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노회찬이 성소수자의 문제를 인권의 시각에서 처음 바라보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1996년 민주노총 총파업 때 거리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또 2005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무지개 깃발을 꽂고 있는 가게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노회찬은 간담회 인사말에서 스스로를 '붉은 삼반'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반(동성애자들을 지칭하는 말)보다 뒤늦게 각성한, 그러나 그를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삼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곤 "하늘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깔이 공존해서 아름다운 빛을 내듯이 여러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노회찬은 "붉은색이 주황색을 차별하지 않듯 자장면이 짬뽕 차별하는 경우도 없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등 특유의 화법으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어 노회찬은 이렇게 덧붙였다.
 

2007년 6월 16일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정책간담회: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에 참석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 ⓒ 노회찬재단

 
"진보정당의 기본색은 빨간색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는 경직되기 쉽다. 생태와 환경을 상징하는 녹색도 들어와야 한다.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진보의) 붉은 색을 유지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으로 진보적인 정당으로 가려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차별없는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지, 새로운 차별을 기꺼이 없애고 공존을 위해 노력하며 나가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상징이다. 장소를 제공한 홍석천은 "노회찬 의원은 지난 5년간 우리 가게를 찾은 명사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이다.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사랑스럽다. 이런 분이 정치권에 있다는 게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면서 "여러분 모두가 하루하루 저 아래에선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오늘 만큼은 딱 지금 불어오는 바람만큼 자유롭게 숨쉬다 가자"고 화답했다. 

노회찬은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단순히 유교적인 배타적 성인식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이는 종교, 사상, 연령, 성별,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차이에 대한 차별'의 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따라서 이 문제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노회찬의 성소수자 '상식지수'는 얼마일까? 성 소수자가 직접 준비한 6개의 문제 가운데 노회찬은 5문제를 맞추고 1문제를 틀렸다. 노회찬이 틀린 문제는 '중국에서 OO는 동성애자를 서로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로 답은 '동지'였다.

노회찬과 성소수자들과의 '특별한' 만찬은 이날 밤 10시가 넘어 끝났다. 노회찬은 간담회를 마치고 나서 "성소수자들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는 청소년기에 이런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상담교사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고 자신들의 경험에 기반해 정책적 조언을 했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17대 국회에서 노회찬은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대한 특별법'(2006년),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2008년) 등을 발의하는 등 성 소수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최초로 내놓았다. 그렇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간담회가 전부 끝날 무렵 한 참가자가 이런 말을 했다. "혹시 <밀양> 보셨어요? 신애(전도연)의 동생이 '밀양이 어떤 곳이에요'라고 묻자 종찬(송강호)이 이런 말하잖아요. '똑같아예, 딴 데하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예'라고요." 그가 말을 이어간다.

"저희도 똑같습니다. 그냥 다 똑같아요."

이야기를 마치며: "당신은 실패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노회찬이 2007년 12월 9일 한국게인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로부터 받은 '무지개 인권상'. ⓒ 노회찬재단

 
2007년 성적 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크게 기여한 위 사람에게 제2회 무지개인권상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성적 소수자 인권운동에 열정적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이 상으로 수상자의 행적이 더욱 빛나길 기원합니다.

2007년 12월 9일 노회찬은 '무지개 인권상'을 받았다. 무지개 인권상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성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이다.

박기호(친구사이 간사)는 "노회찬 의원의 '평등 감수성'은 놀랍다"고 말한다. 노회찬은 2007년 6월 트랜스젠더인 연예인 하리수가 입양 의사를 밝혀 논란이 일자 "하씨의 입양권은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기본권"이라며 "하씨의 당당한 입양 계획은 억눌렸던 4500여 명(추산) 트랜스젠더를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기호 간사는 "동성애자 사회에서도 하리수씨 입양에 대해서 '너무 앞서나간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노회찬 의원실에서 입장을 발표해 문제를 가십거리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박수진 기자, [노회찬] 자장면이 짬뽕 차별하던가, <한겨레21> 688호, 2007.12.6.).

노회찬은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진보정당의 기본색은 빨간색이지만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들어와야 진정한 진보의 붉은색을 띨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자유롭게 휘날리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당당히 무지개를 내걸 수 있는 날을 앞당기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4월 2일부터 6일까지 5일간 게이유권자파티(준)는 전국 593명 후보자(녹색당 5명, 민주통합당 240명, 새누리당 232명, 자유선진당 10명, 진보신당 30명, 청년당 7명, 통합진보당 69명)에게 동성애자 인권 관련 정책질의서를 보낸 결과를 분석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노회찬 후보(통합진보당)를 가장 '동성애자 인권의식이 높은 후보' 1위로 선정했다

게이유권자파티(준)는 노회찬 후보가 '차별금지법 제정, 군형법 92조(계간)조항 삭제, 시민연대 협약 제정' 등 세 가지 동성애자 인권 관련 정책에 대해 모두 찬성의사를 밝혔고 '17대 국회 성전환자 성별변경에 관한 특별법 발의·성적소수자와 함께 하는 호프데이 주최·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등 성 소수자와 관련된 활동을 추진한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2019년 고 노회찬 의원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해 제정된 성소수자 인권상 '프라이드 어워드'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프라이드 어워드는 영화감독 겸 제작자인 김조광수가 설립한 사단법인 '신나는센터'가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 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ophobia)을 기념해 2019년 만든 상이다(<뉴스엔>, 2019.5.10.)

심사위원회는 노회찬을 프라이드 어워드의 첫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에 대한 차별 금지법을 발의하는 등 국내 정치인 가운데 누구보다 앞서 성소수자 편에서 함께 해온 사람"이라고 밝혔다. 
 

노회찬이 "나는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정의당 당원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 노회찬재단

 
5월 17일 노회찬을 대신해 수상 무대에 오른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노회찬 의원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했다"며 예전에 노회찬이 성소수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했던 "무지개는 일곱 색이 어울려서 아름다운 빛을 연출한다. 여러분이 계셔서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는 말을 옮겼다. 

하리수씨와 함께 시상자로 나선 김조광수 신나는센터 이사장은 "많은 정치인들이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내뱉는데 노회찬 의원은 대한민국이 그리 가면 안 된다고,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데 누구보다 먼저 활동하신 의원"이라며 "지금 이 자리에 안 계신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슬프지만, 프라이드 어워드의 첫 번째 수상자로 시상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19.5.18.). 

노회찬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김조광수 이사장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1회 프라이드 어워드 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손을 잡고 더 나은 세상,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옮겨온 신필규씨의 이어지는 글로 <성소수자와 노회찬> 기록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 가장 마음이 쓰라린 대목이었다. 진보, 세상을 앞으로 끌고 나아가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던 사람에게 '멈춘다'는 얼마나 가슴 아픈 표현이었을까.

... 전달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다. 소수자가 차별 받지 않고 멸시 당하지 않으며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 그런 사회를 향한 지향은 우리가 공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노회찬 의원이 평생의 걸쳐 자신의 마음속에 품어온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목표 속에는 그의 손길과 흔적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노회찬 의원이 꿈꿔온 입법과 제도 도입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나는 그때가 다가오면 우리가 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은 실패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내밀어주셨던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당당히 앞으로 갔습니다'.

기록 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 다음 기사 '여성과 노회찬'은 6월 8일, 11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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