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0 07:28최종 업데이트 21.05.20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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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비롯한 공적 집단이 저지르는 차별과 혐오 표출의 해악은 크다. ⓒ envatoelements

 
사회적 영역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 깔끔하게 나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구분된 것들이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다소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주장해본다면 나는 개인보다도 국가를 비롯한 공적 집단이 저지르는 차별과 혐오 표출의 해악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사회를 운영하고 체제를 만들 직접적인 권력이 있다. 아무리 유명한 개인이 대중매체에서 혐오를 표현한다고 해도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간접적일 뿐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악이 없거나 작은 것은 아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비롯하여 공공기관의 판단과 선택 심지어 전하는 메시지는 모든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소수자들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여기에 국가가 자행한 차별과 혐오는 언뜻 보기에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아주 세련된 '공적 언어'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가령 미국에서 동성애자 군인의 군 복무가 논쟁이 되었을 때 등장했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을 떠올려보자.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도입한 이 악명 높은 정책은 입대 지원자에게 성적 지향을 묻지 않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언뜻 보기에 이 정책은 아주 공평해 보인다. 개인에게 '당신이 레즈비언인지 바이섹슈얼인지 묻지 않을 테니 당신도 말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군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집단과 개인이 묻지 않을 의무, 말하지 않을 의무를 공평하게 부담하는 구도다. 하지만 이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인 사람이 군인이 되고 싶다면 평생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겨야 한다고 강요한다는 점에서 결국 차별적이고 혐오적이다. 같은 정책을 출신 지역이나 가족 형태를 놓고 실행했다고 생각해보라. 

민망한 한국의 현실

어쨌거나 우여곡절을 거쳐 이 문제의 정책은 폐기되었고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국가가 일견 '공평'하고 '공정'하게 보이는 언어로 어떻게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물론 이후 미국이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물 건너 한국은 어떨까. 우선 군대와 관련하여 한국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묻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색출을 해서 쫓아내고 잡아갔던 일이 무려 2017년도에 벌어졌으니 현재 미국의 환경이 아주 이상적이지 못하다 해도 비교가 민망한 수준이다.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이미 잘 알려져있듯 육군은 변희수 하사의 성전환 수술을 '심신장애'로 판정하고 변 하사를 강제 전역시켰다. 이후 전역 결정을 다시 심사해달라는 인사소청이 제기되었으나 기각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육군의 처분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으며 변희수 하사의 전역을 취소하고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라는 권고를 전했다. 하지만 육군은 어느 것 하나 수용하지 않았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 이후에 변 하사의 가족들은 전역 취소 소송을 수계하여 이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상실이 있었던 이후라 군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첫 재판에서 육군은 당시의 처분이 적법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않는 오만을 보였다. 전역 처분은 정책적 사안이니 법원이 관여해선 안 된다는 터무니 없는 발언도 했다.

두 번째 재판에서는 복무 부적합을 증명하겠다면서 변 하사가 복무하던 당시 주임원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개인의 모든 일과와 행적이 세세한 기록으로 남는 군대에서 왜 굳이 증거 제출이 아니라 증인 신청을 했는지 의문이다. 당사자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증언을 통해 고인의 '심신장애'를 입증하겠다는 것은 아무리봐도 의도적 흠집내기를 의도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퀴어축제를 향한 서울시의 어이 없는 기만
 

무지개 깃발 휘날리는 퀴어퍼레이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처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어쩌면 사람들은 군대가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영역, 세상과 발맞출 줄 모르는 외골수 집단이라 이런 행보를 보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군대가 아닌 국가의 다른 영역은 다를까. 별로 그렇지도 않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사단법인 설립 신청에 서울시가 보인 반응을 보자. 이들은 시작부터 '적합한 주무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정관에 '성소수자와 평등'이 언급되는 조직위는 문화단체가 아니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 문화예술과가 주무부서로 지정이 되었지만 우여곡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직위는 서울시 문화예술과의 까다로운 요구를 거쳐 형식을 제대로 갖춘 서류를 접수했다. 그러자 그 다음에는 법무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는데 그 답이 아직 오지 않아서 허가해줄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다른 단체도 사단법인 설립 신청을 하면 유권해석을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조직위의 거듭된 요구에도 이들은 유권해석의 내용조차 밝히지 않았고, 결국 법적으로 지정된 사단법인 설립허가 기한까지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가 법무부에 전한 문의는 '퀴어문화축제가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등의 이유로 오래 논란이 되어 왔는데, 사회적 갈등이 있거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활동이 허가요건에 저촉되지 않는가'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의 기만이라면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는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소수자에게도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라

지난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아이다호 데이'였다. 아이다호 데이는 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 기구(WHO)가 동성애를 질병 부문에서 삭제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후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 된 것이 그보다 약 10년 이후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진전된 게 별로 없다.

진전은커녕 성소수자 혐오집단은 이전보다 더욱 똘똘 뭉쳐 소수자 보호 정책, 성평등 정책에 훼방을 놓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맞서 평등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 할 국가는 이를 시끄러운 갈등 정도로 치부하며 몸을 사리거나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처럼 말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국가의 이러한 행위는 '미진하다', '아쉽다' 정도로 평가할 수 없다. 이는 아무리 온건하게 표현해도 '해악'이다. 특정 국민들만을 대상으로 국가의 존립 근거인 헌법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반(反) 국가적 행동이다. 우리는 신문의 국제면에서 특정 민족·인종·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이런 행위를 하는 국가들을 보고 이들을 비판하곤 한다. 그런데 같은 일이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인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부디 지금보다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사회는 이를 제대로 감시하고 요구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사족. 고 변희수 하사의 결심에 소속 부대의 군단장은 그런 변 하사를 존중하며 슬기롭게 잘 극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메일을 보냈다. 군단장은 변 하사를 수용했다. 그렇다면 배제하고자 한 건 누구의 의도인가. 한국 군대에서 군단장보다 높은 직급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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