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8 07:33최종 업데이트 21.05.1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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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건설현장 노동자. 기사의 사건 내용과 관련 없음. ⓒ BG BAU

 
독일에서도 노동자는 죽는다. 지난해 독일에서 397명이 일을 하다 죽었다. 통근 사망자까지 합치면 631명이 죽었다. 일터에서, 일터로 가는 길에,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죽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직업훈련생도 죽는다. 

독일, 안전을 중시하고 산업재해가 적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적다. 한국보다는 덜 죽는다. 독일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90년에는 1208명, 2000년에는 918명, 2010년에는 519명이 죽었다. 지난 10년간은 감소 추세가 더디다가 지난해 300명 대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죽은 노동자 수는 882명. 20년 전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절반으로 줄이기까지 독일도 20년이 걸렸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독일 산재 사망자 통계 ⓒ 독일 산재보험조합중앙회(DGUV)

   
19살 직업훈련생 압사, 그 후

2010년 고등학교를 마치고 유리공장에서 직업훈련을 시작한 19살 브요른. 유리를 자르는 기계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위험한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는 안전장치가 부착된 기계였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회사는 2006년에 이 안전장치를 제거했다. 


독일 오스나브뤼크 지역 법원은 2013년 9월 20일 이 사건으로 기소된 회사 대표 등 5명에게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유리공장 공동 대표인 형제 2명에게 6개월 자유형(自由刑)의 집행유예. 또 다른 공동대표에게는 벌금 1만 유로를 선고했다. 함께 있던 현장 직원도 처벌받았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기계 안전장치를 제거한 기계 관리 담당 직원은 벌금 3600유로, 기계에 안전장치가 없는 걸 알면서도 직업훈련생에게 혼자 작업을 시킨 제조팀장에게는 벌금 2000유로가 선고됐다.

유리공장을 관리·감독하는 관청의 감독관도 '처벌 방해죄'로 벌금 9000유로를 선고받았다. 그는 사고 직후 경찰에게 잘못된 정보를 말했고, 안전관리가 소홀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했다.

여기서 가장 큰 처벌을 받은 건 대표 2명. 법원은 "이들은 오직 이윤을 위한 경영상의 이유로 이러한 행동을 범했다"라면서 "벌금형은 고려되지 않는다(너무 가볍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저 사장의 명령을 받아 실행에 옮겼을 뿐인 직원도, 관리·감독을 맡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공무원도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독일의 한 변호사는 "벌금형보다 자유형이 항상 더 무거운 처벌이고, 초범이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범시에는 여지없이 실형을 살게 된다"라며 "벌금형을 받은 이들도 재범시에는 자유형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고, 이후엔 실형을 살 수 있다"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다만 사업장감독관의 벌금이 많은 건 그의 월급이 다른 피고인들보다 높기 때문이지, 더 큰 벌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독일은 수익에 따라 벌금이 달라진다).

독일은 19살 직업훈련생이 일터에서 죽어야 했던 원인을 하나하나 따졌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피고인들도 항소를 포기해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뒤늦게마나 본인들의 죄를 인정하고 무겁게 받아들였다.

이 판결은 기업 경영진이 산업 안전 관련 의무를 이행하는 게 자신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독일 사회에 각인시켰다. 사업장 관리·감독을 맡은 공무원들도 사고가 나면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됐다. 죽음의 책임을 물어야 죽음의 원인이 반복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독일 산재 사망 감소, 공사장 사망은 증가

이 판결 이후에도 노동자는 죽는다. 그래도 줄어들고 있다. 독일 산재보험조합중앙회(DGUV)는 지난 2017년 산재 사망자 통계를 발표하면서 "산재 사망자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사고 한 건 한 건이 다 무겁다.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줄어드는 숫자를 자화자찬하지 않고, 사고 한 건 한 건의 무게를 강조했다. 
 

1960년대 독일 산재보험조합중앙회에서 만든 현장 안전 포스터. '떠 있는 철재 아래 죽음이 도사린다!" ⓒ 독일 산재보험조합중앙회(DGUV)

     
지난해는 코로나 덕분(?)에 독일에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이 줄어들었다. 록다운으로 인한 이동 통제, 단축근무, 재택근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반면 공사장 사고는 증가했다. 지난해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97명. 코로나에도 공사현장은 록다운 되지 않고 작업이 이뤄졌다. 방역수칙 등 새로운 안전 조치를 급하게 취하면서 기존의 안전 대책에 쏠릴 여력이 분산됐다는 분석이다.

여유를 가지고 주의한다면 안전이란 지킬 수 있는 목표다. 독일도 산재를 줄이기 위해 현장 안전을 위한 캠페인을 벌인다. 캠페인으로는 물론 부족하다는 걸 안다. 
 

독일 산재보험조합중앙회(DGUV)의 산업 현장 안전 캠페인 '현명한 아이디어', '나쁜 아이디어' ⓒ 독일 산재보험조합중앙회(DGUV)

 
국가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라고 요구한다. 독일 건설업산재보험조합(BG BAU) 대표 로베르트 파이거(Robert Feiger)는 "각 주정부의 노동 안전 담당부서에서 감독관 한 명 당 노동자 2만 6000명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가의 더 많은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체 안전감독을 두고 예방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직종협회의 활동만으로는 국가의 부족한 관리·감독을 채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산재 사망자가 한국의 절반인 독일에서도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어디에서나 노동자는 죽는다. 사망자 수가 0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줄이는 게 일이다. 한 명이 죽었을 때, 그 한 명의 무게를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하는가에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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