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6 18:59최종 업데이트 21.05.0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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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잡기 게임을 아시는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오락실 앞에 꼭 있었던 최고의 인기 게임이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오락기에 동전을 넣으면 10개쯤 뚫려 있는 구멍에서 무작위로 두더지가 올라왔다 내려간다. 머리가 튀어 올라올 때를 노려 손에 쥔 망치로 내려치면 점수가 올라간다. 있는 힘껏 때리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타격해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하는 그런 게임이다.

근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자면 두더지 잡기 게임 딱 그 짝이다. 주요 교단에서 동성애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소위 '동성애처벌법'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아래 감리교)에서도 2015년 헌법인 '교리와 장정'에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직·면직·출교에 처한다는 규정(재판법 3조 8항)을 신설했다. 이제 합법적으로 게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 조항과 처벌이라는 망치를 쥔 채.
 

2019년 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꽃을 뿌리며 축복식을 집례하였다. ⓒ 주피터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할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슬프게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이 법 조항이었다. 축복을 받고 기뻐할 이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채 몇 분이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이게 법을 위반하는 일인지에 대해 수십 번 숙고해야 했고, '문제 없음'이라는 결론을 낸 후에도 섭외 수락을 하기까지 어떤 부분의 각오가 필요했다. 평소 잘 들여다 볼 일도 없는 두꺼운 책 속, 단 한 줄이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그렇게 참석한 축복식. 함께한 이들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내가 믿는 신에게 진심을 다해 복을 빌었다. 참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인상 깊었던 축복식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어준 건 몇몇 목사들이었다. 행사장에 도둑처럼 숨어 들어온 이 분들은 고발을 하기 위한 악독한 마음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어갔다. 목사님들이 사랑 넘치는 거룩한 축복기도시간에 어찌 그런 불순한 행동을 했는지.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교단으로부터 고발 소식을 접했다. 고발 사유는 '동성애에 대해 찬성하고 동조하였음'이었다.


고발이 접수되고 교단으로부터 조사가 시작된 초기에 가장 많이 받았던 요구는 '침묵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다 말해놨으니 그냥 가서 죄송하다고만 하고 오면 된다'는 식의 회유부터 '목사직을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 다시는 안하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협박까지.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연락을 해왔다. '가뜩이나 교회가 욕을 많이 먹는데 괜히 시끄럽게 만들지 말아라' '너 같은 놈 때문에 교인 수가 줄어들고 전도가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글쎄, 교회를 욕 먹이고 있는 게 나인지 너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었고, 신념껏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집요한 사상검증이 시작됐다.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된 심사에서는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그래서 동성애에 찬성이야, 반대야?'를 물었다. 어찌 인간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찬반을 논하리요. 대답할 수 없는 잘못된 질문이라는 걸 수차례 어필했지만 심사위원들이 볼 때는 확신범이었다. 결국 종교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은 그야말로 코미디 같았다. 고발인 측은 '동성애는 죄'라는 구호 외에는 거의 아무런 준비를 해오지 않았고, 그나마의 어설픈 주장들은 우리 측 변호인들에 의해 다 논박됐다. 완벽하게 이겼다고 생각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재판을 지켜봤던 모든 사람이 그랬다.

선고 전날 우리는 무죄를 확신하며 앞날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아직도 그날 그곳의 공기와 재판위원장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피고 이동환 목사를 정직 2년에 처한다"라고 판결 주문을 읽고 판결봉을 탕탕탕 두드리는 순간, 내가 망치에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이 판이 얼마나 편파적으로 기울어져 있는가를 절감한 순간이었다.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 후 매주 월요일 광화문 감리교 본부 앞에서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 이동환

  
그에 더해 사상검증의 망치는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재판에 관하여 감리교 30, 40대 젊은 목회자 140여 명이 지지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성명서에 연서명한 이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했고, 소속 연회와 교회까지 명시한 명단을 공개했다.

심지어 동성애대책위원회는 교단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에 "지금이라도 돌이키고 지지를 철회하는 의사를 개별적으로 본 위원회에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 동조하는 이들이 차후 교리와 장정에 따라 함께 처벌을 받는 불이익을 받지 않기를 촉구한다"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름을 빼지 않았다고 교회로부터 받던 후원금이 끊어진 이도, 심사위원회가 열려 처벌을 받을 뻔했던 이도 있었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이동환을 옹호하니 너도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였다.

군사독재 시절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가던 것과 다를 게 무언가. 그야말로 3조 8항의 '동성애 처벌법'은 국가보안법처럼 작동했다. 뿐만 아니라 이 틈을 타 교단 내 반동성애 세력들이 결집하며 온갖 비방과 거짓 선동을 하기 시작했다. 교단 게시판은 혐오 글로 도배됐고, 본인들과 다른 의견을 표하는 이들에게는 '당신도 사상을 검증해 봐야 한다'면서 빈정거렸다.

그리고, 아직도 이 망치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머리를 내려치는 중이다. 감리교에는 계속해서 사상검증이 이어진다. 얼마 전 준회원 진급심사에서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는 질문에 "동성애를 죄로 보기 어렵다"고 소신껏 대답한 준회원 전도사의 진급이 누락되는 일이 있었다. 어떤 이는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내게 안수보좌를 부탁했다는 이유로 동성애 지지자로 몰려 수일 내에 교단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재판인지 징계위원회인지 모를 나의 항소심도 아직 진행 중이다. 참 엄혹한 시절이다.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리는 날 신학생과 젊은 목회자들이 재판장소에서 피켓팅 시위를 했다. ⓒ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고초를 겪는 이들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요 며칠 허덕였다. 머릿속에 있는 운동적 구호를 새기며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지만, 사실 잘 되지 않는다. 편견은 뿌리 깊고 교권은 강고하다. 힘과 권력, 돈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법도 그들의 편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약하고 가난하다. 그리고 너무 지쳤다. 무엇이 우리를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낼까.
 
추락한 신들은 살아남는다
포위된 도시마다 있는
크레바스와 머드팟에서
오븐으로 또는
교수대로 싣고 가기엔
시체가 너무 많은 곳에서
추락 이후에
우리의 쓸모는
우리의 침묵보다 중요해졌다
묻거나 태워야 할
피가 다 빠져나간 껍데기가 너무나 많다
귀를 기울일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의 할 일은
우리의 침묵보다
더욱더 중요해졌다.

우리의 할 일은
우리의 침묵보다
더욱더 중요해졌다.

- 오드리 로드(Audre Lorde) <여러 운동을 위한 노래> 중에서
  
가볍고 진부한 희망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 시대를 겪어내며 절망을 마주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더 이상은 잃고 싶지 않기에 침묵하지 않으려 한다.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고개를 들어 망치를 맞는 일일지라도 그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수십수백 마리의 두더지들이 이어져 고개를 내밀기를 기대한다. 난 이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게임오버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고, 승자는 늘 두더지일지니.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동환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사로 영광제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정직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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