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3 10:57최종 업데이트 21.05.0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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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3차 긴급사태선언 중인 4월 26일 도쿄의 모습. ⓒ 연합뉴스

 
"이혼했대. 알고 보니 최근에 미키 짱이 엄청 많이 맞았다 하더라고."

지난주 아내가 놀라운 메시지를 보내왔다. 큰 딸, 둘째 딸과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까지 친하게 지내던 동급생 아이의 부모가 갈라서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이혼하는 양쪽 다 알고 지내는 사이다. 지난 십여 년간 매년 바비큐 파티나 동네 축제 등도 같이 참가해 왔던 이웃사촌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혼 원인이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이라니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평소에 부부 사이가 좋아 보였고 아이들도 구김살이 없어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연기였단 말인가. 놀라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아니 그렇게 안 봤는데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단 말야?'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아내는 바로 답장을 해 왔다.

"남편이 작년부터 재택근무 계속 했잖아. 같이 있으면서 불화가 심했나봐. 그래도 그럴 줄 몰랐는데 나도 충격이야. 지금 다른 엄마들도 다 충격 받았어."

아, 결국 이것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원인인가. 통계상으로 잡히는 수치는 남의 일 같지만, 실제 주변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하면 금세 내 이야기가 된다. 가정폭력이 1.5배 증가했다는 통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가사·육아 분담으로 갖은 트러블이 생긴다는 언론보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아이에게 옮겼다는 이유 때문에 죄책감을 못 이겨 자살한 30대 가정주부 이야기 등이 비로소 진정한 경험적 사례로 체감되는 것이다.
  

일본 4개 광역자치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가 발효 중인 가운데 26일 오전 도쿄도(東京都) 다이토(台東)의 한 음식점에 휴업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021.4.26 ⓒ 연합뉴스

 
엄마들의 충격

코로나 2년차를 맞이하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일본사회에서는 업종, 연령을 불문하고 여성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 원래부터 남성우월주의 습속이 체화된 사회이기도 할 뿐더러 여성의 사회적 진출, 평등성 등을 다룬 각종 수치를 보면 그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2019년 12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각국의 젠더 불평등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0)에는 2019년도 판 젠더 갭 지수(GGI)가 랭킹별로 분류돼 있다. 전 세계 153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지수랭킹에서 일본은 121위를 기록했다. G7 중에는 압도적인 최하위였고 동아시아 3국으로 한정해도 중국(106위), 한국(108위)보다 낮은 등수였다. 랭킹 산별의 기준 항목은 성별 간 경제적 참가도 및 그 기회, 교육달성도, 건강과 생존, 정치적 발언권 및 권한이었다.

이 항목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부분을 보면 초등교육에서 남녀 간의 불평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평등지수 세계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등교육(중·고등학교)과 고등교육(대학·대학원)으로 가면서 100위 밖으로 밀려나 버린다. 1등을 기록하던 평등성이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뚝 떨어진다는 말이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임금격차는 67위로 중간이지만, 소득격차는 109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층의 순위이다. 국회의원(135위), 여성 각료(139위) 및 경영관리직, 교수, 기업대표 등은 전부 100위 이하였고 이 순위는 과거 십년간 별로 차이가 없다. 즉 일본사회는 이미 구조적으로 정착돼버린 여성 불평등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적 기관의 수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후생노동성은 2017년 3월 '일하는 방식 개혁실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직장 내 갑질과 성희롱 등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여성 노동자 셋 중 한명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가 나와도 사회적 주목을 전혀 끌지 못했다.

이미 정착돼버린 사회적 습속이 이러다 보니 작년부터 올해까지 약 1년 2개월에 걸친,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 여성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과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남편의 폭력

대표적인 것이 4월 28일 내각부가 발표한 '코로나 상황에서의 여성 생활과 고용에 관한 영향조사'이다. 작년부터 올해 2월까지 열 차례에 걸친 전문가 회의와 통계자료, 현장 인터뷰 등을 취합해 작성한 총 112페이지의 이 보고서에는 작년 한 해 동안 여성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컸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인의 부부가 이혼하는 계기가 된 가정폭력 통계만 보더라도 2020년 4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상담건수는 17만 5693건으로, 2019년 같은 기간의 11만 9276건보다 약 5만 5천 건 정도가 더 많다. 특히 제1차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되었던 작년 5월부터 가정폭력 상담이 급격히 증가한다. 선언의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권장되던 바로 그 시기다. 4월에는 전년대비 +4581건이었던 것이 5월 +6405건으로 늘어났는데, 상담 내용을 보면 하루 종일 같이 집에 있게 되면서 불화가 심해졌고,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증언이 압도적으로 많다.
 

2021년 4월 28일 일본정부 내각부가 발표한 '코로나 상황에서의 여성 생활과 고용에 관한 영향조사' 보고서. ⓒ 박철현

  

ⓒ 박철현

 
이 상담 건수는 긴급사태선언이 끝난 5월 이후에도 +4000에서 +5000건을 유지하는데 이 원인은 재택근무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도 크다. 여름부터 여성 노동자 해고 러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앞서 세계경제포럼의 성평등 지수에서 언급했듯 일본 여성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큰 이유는 일 자체가 계약직 및 서비스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요식업과 관광업이 전멸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됐고, 이로 인한 가정의 경제적 소득이 줄어들면서 다시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는 일본의 오래된 임금 디플레 상황과도 결부된다.

2019년 리크루트가 조사한 40대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보면 약 470만 엔(4800만 원)에서 520만 엔(53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이는 2010년의 450~500만 엔과 별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이 정도 세전 소득으론 자녀가 있는 가정이 버틸 수가 없어 주부들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부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나 계약사원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주위의 아내 친구들을 보면 연평균 100만 엔 정도를 받을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절한다. 103만 엔부터는 소득세 과세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이들 서비스 업종이 휴업/폐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해고당하고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남성 노동자들 역시 평균 임금이 10~20% 감소되었다(총무성 통계)고 하니 가정의 절대적 가처분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제적 곤란이 가정불화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결국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

여성 자살자의 증가 추세도 이를 방증한다. 2019년 일본의 자살자 수는 총 2만169명으로 남성은 1만4078명, 여성은 6091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2020년의 자살자 수는 2만1081명으로 912명이 늘어났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남성은 1만4055명으로 전년도 대비 23명이 줄어든 반면, 여성은 7026명으로 집계돼 935명이나 늘어났다. 월별로 보면 제1차 긴급사태 선언이 끝난 6월부터 증가하다가 10월에 가장 폭증한다(전년 동월 대비 +423명).

긴급사태선언이 끝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집에서도 갖가지 이유로 고통 받던 도중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도쿄 등 4개 광역지역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억제를 위한 긴급사태 재선포를 결정한 23일 저녁 도쿄 번화가 신바시(新橋) 주변이 행인들로 붐비고 있다. 2021.4.24 ⓒ 연합뉴스

 
여성과 아이들이 위험하다

일본 정부는 작년 10월 이후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6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여성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 보고서 '코로나 상황에서의 여성 생활과 고용에 관한 영향조사'를 발표하면서 국제연합(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 고용과 생활면에서 여성들이 특히 강한 영향을 받고 있고 남녀 간의 격차가 심대해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여성과 여자아이들을 코로나 대응의 중심에 놓고 정책을 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사회의 오래된 습속을 본다면 일본정부가 지금 당장 여성들의 존엄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코로나 3차 웨이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방역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지어 두어 달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 개최여부도 아직 최종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데, 과연 여성들의 삶에 눈길을 돌릴 수 있을까?

28일, 아내는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남편이 양육비를 지불할 형편이 안 된다고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 소유권을 미키 짱에게 넘기고 남은 주택론을 자기가 갚아가기로 했나봐. 아이는 엄마랑 같이 살고. 근데 문제는 미키 짱도 지금 당장 일을 구할 수가 없어서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대. 그래서 우리(동네엄마친구)들이 조금씩 모아서 주기로 했거든. 줘도 되지?"

당연히 보태라고 했고, 나중에 또 힘들다고 연락 오면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빌려 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아이들과 유년의 즐거운 추억을 함께 보냈던 그녀들이 지금의 고달픈 삶을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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