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8 19:00최종 업데이트 21.04.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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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일 역사문제가 다 끝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책임져야 할 일이 더는 없는 듯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이 문제에 집착을 보일 때가 많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이 27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스가 총리에게 보고하고 외무성 홈페이지에 PDF 판으로 올린 <외교청서 2021>에서도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작년 한 해 동안의 외교 활동 및 국제정세를 정리한 322쪽 분량의 이 책은 제2장 '지역별로 본 외교'의 제2절 '아시아·대양주' 밑에 있는 2. '조선반도' 편에서 남북한 정세 및 대일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2. '조선반도'뿐 아니라 제2절 '아시아·대양주'의 서론에서도 독도·강제징용·종군위안부 같은 역사문제를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에는, 2019년도부터 <외교청서> 제2절 서론 내에서 서술 비중이 높아졌다. 말로는 다 끝난 문제라고 하면서도, 위안부를 비롯한 한·일 역사문제를 비중 있게 바라보는 일본 외무성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외교청서 2021>은 영토 문제인 동시에 역사 문제인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서는 "다케시마(竹島)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어떠한 근거도 없이 다케시마를 계속해서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제법적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케시마 문제의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해결을 꾀하고자 1954년·1962년 및 2012년에 한국 정부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등을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고 말한다. 
   

2021년 판 일본 외교청서의 독도 관련 부분에 작년 판과 마찬가지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점거를 계속하고 있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2021.4.27 ⓒ 일본 외무성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지자, 이틀 뒤 <아사히신문>에서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신문은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제소는 유력한 선택지"이며 한국이 불응하면 "입장이 나빠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 뒤 이용수 할머니 등이 'ICJ로 가자'고 외쳤지만, 일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말로 할 마음이 있다면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근거로 해서라도 ICJ 회부를 추진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에 비해 독도와 관련해서는 ICJ 제소 주장을 상당히 자신감 있게 내비치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도 한국 영토이긴 하지만 1905년 이후 한동안 자신들이 점거했던 사실로 인해 법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외교청서 2021>은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도 종전 주장을 되풀이했다. "1965년 일·한 국교정상화의 중핵인 일·한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제1조)함과 함께, '두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더불어 두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중략)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경제협력을 통해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완료됐다는 식의 주장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개인과 국가를 분간하지 못하고 경제협력과 임금 지급을 혼동하는 주장이다.

앞뒤 안 맞는 서술
 
독도나 강제징용 문제에 비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청서 2021>의 설명은 상당히 자세하다. 27일 일본 각의가 앞으로는 위안부로 통일해서 부르기로 한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외교청서 2021>은 제2절 서론과 제2절 2.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외교청서 2021>은 위안부들이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속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교수는 논문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에서 "한국이건 일본 정부건 정부가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일본군이 사기 치는 모집책과 함께 일한 것은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일본 정부가 강제적 혹은 기만적으로 동원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공식 표명했는데도 <외교청서 2021>은 강제 연행을 부인하고 있다.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보이지 않았다"며 '직접'이란 표현을 넣은 것은 고노 담화를 의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고노 담화 때는 직접적인 자료를 참고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이다.
 
사실, 강제로 끌려갔느냐 자발적으로 갔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일본이 공권력을 이용해 여성들을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식민지배 시스템을 활용해 여성들을 그 방향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특정 피해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공권력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대중은 공권력이 그런 힘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폭력이 동반되지 않더라도 대중은 공권력 앞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본 국가권력이 한국 여성들을 '연행한 것'과 '강제 연행한 것'의 차이는 본질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외교청서 2021>은 이 점을 외면하고 있다.
 
<외교청서 2021>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는 것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램지어 교수도 위 논문에서 "매춘부들은 일을 태만히 하거나 돈을 들고 달아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성노예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도망갈 수 있었으므로 노예가 아니라는 식의 논리는 그 어떤 노예주도 인간 노예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음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신체가 구속되는 것도 노예이지만 자유의사가 구속되는 것도 노예라는 점을 외면한 것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청서 2021>의 서술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49쪽 끝부분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한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 일·한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문장이 있다. 그런데 같은 페이지 앞부분에는 "1965년 일·한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지만, 그런 속에서 전(前) 위안부들의 현실적 구제를 도모하는 관점에서 1995년에 일본 국민과 일본 정부가 협력하여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했다는 문장이 있다.
 
이는 1965년 협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적 구제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1965년에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과 부합하지 않는다.
 

초치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가 2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를 이날 공개했다. 2021.4.27 ⓒ 연합뉴스

 
"그 담화는 다른 고노가 낸 것"
 
고노 담화가 나온 1993년에 일본 정치는 격동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었다. 7월 18일 중의원 선거에서 1955년 이래의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붕괴한 상태에서 자민당 내각이 8월 4일 고노 담화를 발표했고, 그해 8월 9일부터 1996년 1월 10일 사이에는 자민당이 아닌 일본신당·신생당·사회당이 연달아 총리를 배출했다. 이처럼 자민당이 위축됐던 시기에 고노 담화가 나오고 아시아여성기금이 설립됐다.
 
이 같은 정치적 혼란에 더해 일본의 '욕망'도 고노 담화를 낳는 원인이 됐다. 일본은 1992년 7월 2일 미일정상회담 이후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했다. 1993년에 고노 담화를 통해 위안부 강제 동원을 얼른 시인한 데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급선무'라는 인식도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자민당 정권을 장악한 극우파가 볼 때는 1990년대 초중반에 일본 정부가 했던 일들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시의 일본 정권이 했던 일과 지금의 일본 정권이 하는 일 사이의 논리적 모순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위와 같은 서술상의 충돌을 초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고노 담화의 주역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을 아버지로 둔 고노 다로 현 행정개혁 담당 대신이 고노 담화를 두고 2017년 11월 24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그것은) 다른 고노가 낸 것'이라며 거리를 둔 것도 그런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외교청서 2021>은 역사문제가 다 끝났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역사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을 뿐 아니라 논리적 모순까지 드러내는 일본 정부의 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일 역사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외교청서 2021>이 역설적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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