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3 11:16최종 업데이트 21.04.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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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 시대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말]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당대표 취임사(2012.10.21.)와 당대표 퇴임 고별사(2013.7.21.)에서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라며 투명인간분들을 아래처럼 구체적으로 호명한다.

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한 달에 85만원 받는,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인 50, 60대 아주머니분들"
② "현대자동차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③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④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


이번 글에서는 "현대자동차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관련한 노회찬의 이야기와 그들의 '지금·여기' 삶의 현주소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 기자말


'최초의 대법원 승소자에서 징계해고자로'   
 

2012년 10월 25일 오후 울산 북구 현대차 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 2012년 10월 17일부터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아래)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노회찬의 '6411 연설'(2012.10.21; 2013.7.21.) 중에서

1997년 IMF가 터지면서 현대자동차는 1998년 5월 19일 노조에 '고용조정안'을 통보, 생산량 감소에 따른 여유인력 1만 5031명중 8189명을 우선 정리해고하고 나머지 6842명은 계속 고용하되 이 인원수만큼 연간 인건비와 복리후생비를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후 재벌기업 중 최초로 사측에 의해 일방적인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이에 현대차 노동자들은 36일간(7.20~8.24) 공장점거 파업으로 맞섰다.

파업 이후 정리해고 통보서인 '노란봉투'가 1주일에 걸쳐 대상자들에게 전해졌고, 빈 자리에는 2000년부터 하청업체 101개 업체를 두면서 파견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투입시켜 왔다. 2003년 말부터 현대차에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되었고 2005년까지 비정규직 노조는 불법파견 문제를 놓고 현대차에 맞서 정규직 전환 투쟁을 시작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지위에 대해 하급심 법원의 엇갈린 판결을 정리하고 '합법적인 사내 하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 노동'이라고 판결, 파기환송했다.

2012년 2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최병승씨는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렸다. 완성차 사내하청에 대해 처음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최병승씨가 노조 활동으로 부당해고돼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2005년 5월부터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7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완성차 제조업에서 만연해온 불법파견을 바로잡을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묵살했다. 대법원 판결대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신규채용이란 편법으로 대응했다. 또한 현대차는 집요하게 최병승 개인의 정규직화 승소일 뿐 사내하청 고용형태 일반의 불법파견은 아니라고 맞섰다.

이런 노골적인 적반하장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즉각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정규직화 승소 당사자인 최병승씨도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 2012년 10월 17일부터 2013년 8월 8일까지 296일 동안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였다. 결국 최병승씨는 2016년 12월 15일부로 징계해고됐다(이남신, 「'가짜사장' 전성시대, '불법'의 온상이 된 대기업들: [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③] 손배 가압류로 돌아온 대법원 현대차 하청노동자 승소 판결」, <오마이뉴스>, 2017.1.19.).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소송 일지> 표 ⓒ 노회찬재단


"지금 대한민국의 정의는 저 두 사람이 웃으면서 내려오는 것"

2012년 10월 17일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인 최병승, 천의봉 두 명이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쪽에 위치한 고압선 송전철탑 15m와 20m 지점에서 겨우 앉을 수 있는 크기의 나무판자를 깔고 앉아 각각 밧줄로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현대차의 불법파견 은폐와 신규채용 중단,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노동자의 즉각 정규직 전환,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구속 등을 요구했다.

노회찬과 진보정의당은 현대자동차 철탑농성의 사회적 공론화와 정치적 의제화를 위해 애썼다. 10월 25일 노회찬(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은 1주일째 고공농성 중인 송전탑을 찾아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회찬은 <난중일기>를 통해 이렇게 전했다.

"10월 25일(목) 맑음. 심상정 후보, 조준호 대표, 천호선 최고위원과 함께 명촌주차장을 찾았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출입구 중의 하나이다. 지난 20여 년간 무던히도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진보정당을 알리러, 선거 때는 대통령 후보, 울산시장 후보, 국회의원 후보, 울산북구 구청장 후보들을 모시고 출근하는 노동자, 밤샘근무하고 퇴근하는 노동자를 만나러 아침 7시에 찾던 곳이다. 현대자동차공장의 여러 정문 중 겨울 아침 바람이 차갑기로 유명한 곳이다. 한 시간 반가량 아침인사를 나누다 보면 온 몸이 얼어있기 십상이다.

지금 그 주차장 입구 고압선 송전탑 위에 최병승, 천의봉 등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사람이 일주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저 위험한 곳으로 자진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채용을 거부하는 현대자동차 사용자에 의해 저 위험한 곳으로 쫓겨난 것이다. (…)

송전탑 아래 풀밭에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간부들과 후보, 당지도부의 간담회를 가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정의는 저 두 사람이 웃으면서 내려오는 것이 정의이다. 저 두 사람을 내려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2013년 당시 최병성씨의 철탑 위 농성 및 아래 연대 농성장 모습. ⓒ 변창기

 
2012년 12월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

당시 기자회견을 연 진보정의당은 "노동자들의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는 까닭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 때문"이라며 "아무리 힘겨운 현실이라 할지라도 부디 안타까운 선택만은 피해주시길 지금 이 시각 고통 받는 모든 노동자들께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노회찬은 "이명박 정부에서 내몰린 노동자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 이후 절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다"며 "현대자동차는 12월19일 박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2000여명의 용역을 투입해 폭력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그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박 후보의 당선을 기다렸던, 바로 그런 태도였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바로 다음 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원직 복직된 지 이틀 만에 휴직 상태로 추락하게 되고, 대선 때 190억 원에 이르는 손배 가압류 횡포와 노조탄압에 시달리던 노동자 최강서 조직차장은 박 후보의 당선 소식을 듣고 너무 절망한 나머지 자살했다. 그리고 또 하루 만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이운남씨가 자살했다"고 말했다.

노회찬은 현대차와 한진중공업 등 사측에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자본에 의해 가진 자들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폭력으로 짓밟아도 좋다는 신호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며 "경거망동하면 그 후과를 반드시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3년 1월 5일. 1년 3개월 만에 다시 시동을 건 'AGAIN 희망버스-다시 희망 만들기'에 노회찬 등 진보정의당 지도부와 전국 각지의 당원들이 함께 했다. 울산 현대차 철탑농성장, 부산 한진중공업을 찾은 1500여명~2000여명의 참가자들은 투쟁 노동자와 연대하고 희생 노동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3년 1월 5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 철탑농성장 주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희망버스 ⓒ 박석철

  
같은 날 진보정의당 보도자료는 이렇게 적고 있다.

"최근 잇따른 노동자들의 사망, 그리고 대선 이후 한층 심해진 노동자 탄압과 관련해 진보정의당이 시민들과 함께 절망 속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에 나선다. … 울산 현대차 철탑농성장에서는 해를 넘겨 벌써 세달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결코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전하고, 이들이 원하는 정규직 전환 등의 요구가 정당한 것임을 연대집회를 통해 정부와 사측에 다시 한 번 강력히 알린다.

이어서 방문하는 한진중공업에서는 추모촛불문화제를 통해 과거 부당한 대량해고와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배 가압류 등 노동자를 탄압해온 사측에 엄중히 항의하고, 지난 달 21일 목숨을 끊은 노동자 고 최강서 님의 명복을 빌며 노동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성원을 보낸다."


(* '희망버스'는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지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 희망버스는 2011년 6월부터 10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총 4만여 명이 참가했다.) 

300여 일만의 농성 해제...  "함께 맞이하자"던 노회찬

2013년 8월 8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한다. 송전철탑 고공농성을 296일 만에 푼다는 것이었다.

"전 조합원 8일 오전 12시 30분까지 철탑으로 집결 바랍니다. 296일간 철탑농성을 이어온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오후 1시경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함께 맞이합시다."

2013년 8월 12일 노회찬은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천사가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 듯합니다. 천의봉과 최병승. 296일을 하늘에 있다 보니 천사가 다 되었군요."
   

당시 노회찬이 최병승, 전의봉씨 등 관련해 자신의 SNS에 올렸던 내용. ⓒ 노회찬재단


노동자 옥죄는, '손배 가압류'라는 올가미  

2015년 7월 22일 부산고등법원 301호 법정.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울산 1공장 점거 파업, 2012~2013년 파업과 296일 철탑 농성, 2013년 현대차 희망 버스 등 사건 때마다 현대차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소한 재판이 열렸다. 47명의 피고인들이 법정을 가득 메운 가운데 형사 2부(재판장 박영재)는 2010년 11월 공장 점거 파업과 관련해 최병승에게 업무방해 혐의는 없지만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업무 방해 방조죄'를 인정해 벌금 400만 원을 판결했다.

1심에서 "최병승은 비정규직지회의 임원이 아니었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며, 점거 농성을 결정하는데 공모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하였던 것을 기각하고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핵심 지도부들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홍영표 노동위원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 국회의원들이 들어와 '인사하고 농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음에도 유독 최병승 만을 콕집어 유죄를 선고한 것은, 명백히 최병승으로 상징되는 사내하청 불법파견 철폐운동을 겨냥한 판결이었다. 이렇게 무리하게 업무방해 방조라는 얼토당토 않는 혐의를 만들어낸 건 최병승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대법원 승소자 최병승씨는 최초의 정규직 전환자가 되기는커녕 사측의 대법원 판결 무력화와 손배 가압류의 덫에 갇혀 해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남신, '가짜사장' 전성시대, '불법'의 온상이 된 대기업들: [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③] 손배 가압류로 돌아온 대법원 현대차 하청노동자 승소 판결, <오마이뉴스>, 2017.1.19.).

이처럼 부산고법 판결은 검찰·노동부의 사용자 편향적 법집행을 정당화해 줬을 뿐만 아니라 '업무방해 방조죄'라는 기발한 무기를 제공해 줬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옹호한 것을 업무방해방조죄라는 죄목으로 뒤집어씌운 것이었다. '업무방해 방조죄'는 이미 그 실효를 다해 2007년 노조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진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은 1980년 12월 31일 노동쟁의조정법(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만든 대표적인 악법인 것이다. 그때에는 다른 사업장에 연대하면 이 악법으로 구속했다. 지지발언이나 기자회견만으로도 처벌을 받았고 심지어 조합원 교육을 한 사람들도 처벌을 받았다. 상급단체의 활동가들도 이 법으로 처벌을 받았다(김혜진,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진리, <매일노동뉴스>, 2015.7.30.).

사실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죄'만 하더라도 그동안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은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다양한 법적 물리적 제재로 노동자들은 해당 권리를 사용할 수 없다. 업무 방해죄는 산업 혁명 이후 유럽에서 노동자의 파업을 막기 위해 만든 법으로 현재 이 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노동자의 파업을 업무 방해로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래서 2009년 11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약칭 유엔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파업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수단인 업무방해죄 적용'을 우려하며 시정을 권고하였다. 국제노동기구(ILO)도 2012년 11월 '한국 정부가 형법 314조(업무 방해)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시키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즉각 취하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해줄 것'을 촉구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마가릿 세카기야는 2014년 3월에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업무 방해와 같은 형법의 조항들을 이용해 파업권을 빈번하게 범죄화되는 현실을 우려하였다. 그는 2013년 당시 고공농성을 벌이는 최병승과 천의봉을 방문해 조사하기도 하였다.

기록 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송전탑 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회찬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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