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4 07:50최종 업데이트 21.04.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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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청한 독자가 8일과 10일 쪽지 및 이메일을 통해 안중근 의사가 거사 직후에 외친 "코레아 후라"에 관한 자신의 글을 다른 분들과 공유할 방법에 관해 문의해왔습니다. 그가 보낸 글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다는 판단이 들어 지난 2월 10일 학술지 게재가 확정되고 그 후 발행된 학술논문과 함께 그 글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안중근 의사는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 거사 직후 상황에 대해 "그때 나는 곧 하늘을 향하여 큰소리로 '대한 만세'를 세 번 부른 다음 정거장 헌병 파견대로 붙잡혀 들어갔다"라고 회고했다. 자서전에는 '대한 만세'라고 썼지만 의거 당시 현장에서 안 의사는 "코레아 후라"(대한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코레아 후라'를 러시아어 '까레야 우라'라고 추정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도 많은 글에는 그것이 러시아어라고 적혀 있다.

거사 당시에도 그런 보도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독자 ㄱ씨가 제공한 1909년 11월 2일 자 <도쿄아사히신문>에도 "노국(露國, 러시아) 및 불어로 우라 카레야, 한국 만세를 외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러시아어와 불어로 만세를 부르고 이어 혁명가를 불렀다고 보도한 1909년 11월 2일 자 <도쿄 아사히 신문> ⓒ 독자 제공

 
12월 3일 안중근을 만난 일본 경찰관 사카이 요시아키의 신문 기록은 "러시아어로 코레아 후라를 삼창 했다"라고 말한다. 코레아 후라가 러시아어였을 거라는 추정은 이런 기록에 근거한다.
 

일본 경찰관 사카이 요시아키의 안중근 신문 기록 ⓒ 독자 제공

  
에스페란토어였을 가능성 커

하지만 안중근에 대한 신문 기록들은 일관성이 없다. 12월 22일 자로 작성된 미조부치 다카오 검찰관의 신문 기록에는 "코레아 후라는 러시아 말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안중근이 "영어로도 불어로도 러시아어로도 코레아 후라라고 한다"라고 답변하는 내용이 나온다. 안중근이 일관성 없게 답변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본 관헌과 통역이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미조부치 다카오 검찰관의 안중근 신문 기록 ⓒ 독자 제공

 
지난 2월 10일 논문 게재가 확정된 국문학자 신현규의 논문 '코레아 후라의 어원에 대하여'(<언어사실과 관점> 제52권)는 "안중근의 진술을 들은 사카이 경사 등의 신문 담당이나 스테판 페트로비치 박 또는 도리이 다다히로 등의 통역 담당이 이를 러시아어로 판단하고 러시아어 문장으로 옮겼"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중근이 외친 말은 러시아어가 아니었다. 이 점은 본인의 법정 진술에서 드러났다. ㄱ씨는 <여순법원 공판 시말서>를 인용해 1910년 2월 7일 뤼순(여순)법원 공판 때 "각국에서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코레아 후라라고 말하는 대한국 만세를 삼창 하였다"라는 안중근의 진술을 제시한다.
 

여순법원 공판시말서 ⓒ 독자 제공

 
그 진술을 근거로 2월 9일 자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은 그 언어를 '세계공통어'로 보도했고 13일 자 <대한매일신보>는 '세계통행어'로 보도했으며 15일 자 <황성신문>은 '세계공통어'로 보도했다고 ㄱ씨는 설명했다. 안중근이 외친 것은 국제공용어이자 보조언어였던 에스페란토어임이 분명하다는 게 ㄱ씨의 주장이다.
 

1910년 2월 15일 자 황성신문 ⓒ 독자 제공

  

1910년 2월 15일 자 황성신문 중 안중근 의사가 거사 직후 '코레아 후라'를 외쳤다고 기술한 곳. ⓒ 독자 제공

  

1910년 2월 13일 대한매일신보 기사 ⓒ 독자 제공

  

1910년 2월 13일 대한매일신보 기사 중 안중근 의사가 거사 직후 '코레아 후라'를 외쳤다고 쓴 곳 ⓒ 독자 제공

 
위의 신현규 논문은 "코레아 후라의 연원은 세계통행어와 세계공통어"라며 "이에 대하여 <대한계년사>는 '世界普通使用之羅丁語(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라틴어)'로, <안중근사건 공판속기록>은 '世界で普通に能く使用する言葉(세계에서 보통으로 사용하는 말)'로, 후대에 정리된 <한국독립운동사 자료>는 '각국에서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풀이"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뒤 "(이 근거들은) 코레아 후라가 세계어 에스페란토라고 하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라고 정리한다.
 

왼쪽은 <안중근사건 공판속기록>(만주일일신문 간), 오른쪽은 <독립선구 안중근 선생 공판기>(경향잡지사 간) ⓒ 독자 제공

 
위 논문은 "본고에 큰 도움을 주신 성균관대학교의 박진영 선생님은 2016년 11월에 안중근이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어 사용자)였을지를 다룬 일련의 글을 발표하여 학술적 차원에서 세계공통어설의 가능성을 검토·제시하셨다"며 그 발표의 요점을 정리했다. 요점 중 일부는 이렇다.
 
"<만주일일신문>에서 1910년 3월 28일 발간한 '안중근 사건 공판속기록'과 이를 번역한 <안중근 선생 공판기>(1946)에는 '세계에서 보통 널리 쓰는 언어'로 나와(서) 에스페란토였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하얼빈 의거에서 울려 퍼진 삼창을 재현하는 것은 어려우며, 문헌 기록이므로 여러 차례의 옮김이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에스페란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제국주의 국가 언어에 강한 반감

<안응칠 역사>에 따르면 17세 때인 1895년 안중근은 프랑스어를 배우다가 그만둔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일본말을 배우는 자는 일본의 종놈이 되고, 영어를 배우는 자는 영국의 종놈이 된다"라며 "내가 만일 프랑스 말을 배우다가는 프랑스 종놈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폐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안중근이 자서전을 집필한 시점은 10·26 의거로 감옥에 갇힌 뒤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의 종놈이 되므로 배우지 않겠다는 신념이 10대 때 잠깐 품은 것에 불과했다면, 1879년 생인 그가 서른이 넘어 집필한 자서전에서는 종놈 운운하는 말이 생략됐을 수도 있다.

열일곱 살 때 했던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다가 죽기 직전에 자서전에 담았다는 사실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어에 대한 반감이 죽을 때까지도 강력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러시아 제국주의의 언어로 대한 만세를 불러 거사의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렸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점을 보더라도 코레아 후라가 러시아어였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안중근이 일본 제국주의뿐 아니라 러시아 제국주의도 경계했다는 점은 감옥에서 집필한 미완의 원고인 <동양평화론>에도 나타난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한때 일본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일본이 러시아의 동양 침략을 막아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04년 러일전쟁을 거론하면서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할 때, 일본 천황이 선전포고하는 글에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독립을 공고히 한다'라고 했다"라며 "이와 같은 대의가 청천백일의 빛보다 더 밝았"다고 썼다.

이처럼 그는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 대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정도로 러시아를 싫어한 안중근이었으므로, 코레아 후라가 러시아어가 아니었을 가능성에 더욱더 무게가 실린다.
 

<만주일일신문>에 실린 안중근 의사 공판 기사 삽화 ⓒ 독자 제공

  
안중근은 동양 평화를 명분으로 이토를 저격했다. 그는 동양평화를 명분으로 러일전쟁까지 일으킨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동양평화를 깼으므로 이토 히로부미를 쏘게 됐다며 자신의 의거를 국제평화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ㄱ씨가 보낸 글, 신현규 논문, 박진영 발표문에도 설명된 것에 따르면, 그는 의거 현장에서 국제공용어로 대한 만세를 외침으로써 '한국을 살리고 동양 평화를 살리고자 거사를 했다'는 명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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