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9 19:07최종 업데이트 21.03.2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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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25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답변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2021.1.27 ⓒ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신경 쓰는 금년 중의 날짜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 개막 예정일인 7월 23일도 있고, 10월 21일 임기 만료 예정인 중의원 선거일도 있다. 이에 더해, 4월 21일도 상당히 신경 쓰이는 날짜다.

이날은 고 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이하 '김복동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가 판결 선고를 내리기로 한 날이다.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1월 13일로 예정됐었지만, 재판부가 추가 심리를 위해 변론 재개를 결정함에 따라 4월 21일에 선고가 나오게 됐다.


일본 정부가 볼 때 1월 8일에 판결이 선고된 소송에 비해 4월 21일에 판결이 선고될 소송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서울중앙지법이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인에게 1억 원 승소 판결을 내린 1월 8일로부터 보름이 경과한 1월 23일에 우리 외교부가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내각 사이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날 외교부는 입장문을 통해 "우리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그랬기 때문에 김복동 사건 재판부는 이 같은 입장 변화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정대로 1월 13일에 판결이 선고됐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선고 연기 뒤에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으므로 이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태도 바꾼 한국 정부

외교부 입장문은 실제로도 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월 19일에 재판부는 원고 측을 상대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유효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위안부 합의로 발족된 화해치유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는지' 등을 소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지난 수요일인 3월 24일 변론에서 원고 측은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이므로 법적 효력이 없다', '원고 9명이 화해치유재단 지원금을 받았지만 이는 인도적 지원금이지 배상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 배춘희 할머니 사건 재판부는 1월 8일 판결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 또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배상에 관한 합의가 아니며, 화해치유재단 지원금은 손해배상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에 비해, 김복동 사건 재판부는 1월 23일의 외교부 입장 표명을 어느 정도라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일본 입장에서는 배춘희 사건보다 김복동 사건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상황이 일본 정부에 유리한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 외교부의 입장 표명 뒤에 돌발한 램지어 사태로 인해 일본 정부의 입장이 불리해진 데다가, 김복동 사건 재판부의 양식과 역사의식을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그런 전망이 우세하다. 3월 24일 자 <교도통신> 기사 '위안부 소송 4월 판결로(慰安婦訴訟4月に判決へ)'는 "이번 소송에서도 원고가 승소할 것으로 보는 관점이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4월 21일에 피고 패소 판결이 나온다 해도 일본 정부가 당장에 커다란 부담을 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 편에 서서 적극적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월 23일 입장문에서 한국 외교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 유린이자 보편적 인권침해의 문제로서 국제인권규범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동시에 "우리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언명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을 거들 가능성을 일본 정부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또 승소 판결을 기초로 일본정부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개시한다 해도, 일본대사관과 그 재산에는 손을 댈 수 없다. 1961년 4월 18일 국제연합에서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22조 제3항이 "공관 지역과 동 지역 내에 있는 비품류 및 기타 재산과 공관의 수송 수단은 수색, 징발,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상당한 규모의 일본정부 재산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강제집행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3월 24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전 위안부 소송, 4월 21일 판결(元慰安婦訴訟、4月21日に判決)'은 '관계자'의 발언을 근거로 "일본은 원고 측이 일본정부의 재산(에 대한) 압류에 나설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같은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비엔나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본정부 재산이 해외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증권 투자나 채권 투자 또는 부동산이나 공장 등에 대한 직접투자 등의 형태로 해외 곳곳에 재산이 많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재산의 규모는 꽤 상당하다. 예전부터도 그런 재산이 많았다. 1987년 5월 27일 자 <동아일보> 기사 '일(日) 대외 총자산 1천 8백억 달러'는 총자산에서 부채를 공제한 일본의 대외 순자산 중에서 정부가 소유한 액수가 418억 1천만 달러(1986년 말 기준)라고 보도했다.

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을 합한 해외 자산은 그 뒤 꾸준히 증가했다. 1990년 2월 26일 자 <매일경제> '일 대외자산 세계 1위'에 따르면, 민간과 정부를 합한 해외 총자산(부채 포함)이 1988년에 1조 4693억 달러로 세계 1위였다.

그 뒤로도 일본이 1위를 차지한 해가 많았다. 2019년 5월 24일 자 <연합뉴스> '일 대외 순자산 3천 700조 원'은 "작년 말 기준 대외 순자산액이 341조 5천 560억엔(약 3천 700조 원)"이라고 한 뒤 "일본의 대외 순자산 규모는 수치가 공개된 주요국 가운데 28년 연속으로 1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해외 자산이 많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그 속의 정부 자산이 강제집행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한다 해도, 총액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커다란 부담을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주의 성향이 특히 강한 자민당 정권으로서는 일본 국가가 외국 민간인들에게 패소해 강제로 재산을 내주는 것을 치욕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또 강제집행 형식으로 배상금을 내주게 되면, 처음부터 깨끗하게 사과하고 배상한 것만 못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 3월 24일 자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 지식인들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담은 문서를 새로이 만들어 주한일본대사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스가 내각은 아직까지 전향적인 발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계속해서 한국의 태도 변화만을 촉구하고 있다. 피해자가 촉구해야 할 태도 변화를 가해자가 촉구하는 적반하장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단계에 돌입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래로 일본 정부의 적극 방해와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 속에서도 계속해서 확산돼 왔다. 이제는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뒤지지 않는 세계적 이슈가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세로 굳어지는 이런 흐름을 일본 정부가 과연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7월 23일이나 중의원 선거일보다 4월 21일이 스가 내각에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 정부에 끼치는 영향은 도쿄 올림픽이나 중의원 선거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다. 사과와 배상이 국가적 굴욕이 아니라 백년대계의 출발이라는 인식이 일본 우익과 자민당 정권에 확산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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