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1 18:44최종 업데이트 21.03.1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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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카펫으로 세상의 한 부분을 바꾸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 생각을 처음 품은 것은 나의 첫사랑 덕분이었다. 순수하던 고등학생 시절 그녀를 처음 만났고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이내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내 모든 발자취를 이것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시작은 그때였다.


그 이후 사회의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완전한 것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결국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살 시절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대통령이 돼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공부해야 했다. 그래서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첫 여행지였던 인도에서 산 스카프에 "비 더 저스티스!(Be the justice!)"라는 문장을 매직으로 직접 적어서 전 세계의 명소에서 동영상을 찍으며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대통령도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대통령일수록 나라의 큰 일,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을 모두 다루는 것은 무리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일상을 개선하는 것이 결국 국민들의 삶을 바꾸는 데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한 명의 시민으로서 나는 어떻게 그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동에 설치된 최초의 옐로카펫 ⓒ 이제복

 
나는 그 시절부터 NGO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국가가 나서기에는 어찌 보면 사소한, 하지만 결코 사사롭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역할을 NGO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을 두드리다가 비로소 한 NGO를 만났고 정말 즐겁고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옐로카펫'이라는 것을 창안하게 됐다. 5년여 전 한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만든 최초의 옐로카펫이 전국 1000개소 이상 확산됐고, 이젠 대한민국 정부 정책으로 집행되고 있다. 

만약 누군가 NGO의 최종 미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작은 마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창안하고, 이를 사회에 확산시킬 수 있도록 매뉴얼화해 결국 국가 정책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답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NGO 활동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세상에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난 한계를 느꼈다. 그것은 바로 NGO 활동을 하는 분들이 대단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NGO 활동가가 되겠다고 하면 마치 세상의 모든 욕망을 멀리하고 사회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가져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슴속 한편에 우리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정의로운 마음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품었던 사람일지라도 쉽사리 행동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상상력이 필요한데, 결코 소수 활동가만으로 그 일을 다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발견한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을 위한 상상력을 함께 발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2020 어린이보호구역 아이디어 공모전 본선발표 및 시상식 ⓒ 이제복

 
나는 이 모순적 상황의 해결책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고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정리했다.

그것은 바로 "취미처럼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활동을 할 수는 없을까?"였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내가 꿈꾸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결혼을 포기하지 않아도, 부자로서의 삶을 외면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취미처럼 즐겁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개인으로서 혹은 단체로서 취미처럼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내가 먼저 고민하고 실천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내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이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먼 느낌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세상이라는 개념은 온 지구 혹은 우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세상이라는 개념은 나한테 영향력을 끼치고 또 내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만큼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당신이 삶에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말 온 지구나 우주가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어떤 문제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이 겪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는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마을 혹은 국가 차원이라고 해도 특정 부분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내가 우리를 위해서 바꿔야 할 세상의 범위는 지구나 우주 차원이 아니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바로 그 부분이면 충분한 것이다.
 

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 이제복 ⓒ 이제복

 
나의 어릴 적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누나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다. 누나들이 학교나 학원을 마치면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집으로 오는 한 골목길이 꽤 길고 어두웠다. 나는 한 번도 그 길을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지만 누나들은 무서워했다.

그래서 밤에 집으로 오는 길이면 매일같이 집으로 전화해서 놀고 있는 내게 마중 나오라고 했다. 나는 왜 초등학생인 나를 마중 나오라고 했는지 당시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누나가 시키는 일이니 열심히 마중 나갔다. 그런데 이게 매일 반복되니 어떤 날은 하루에도 세 번씩 나가거나,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뛰쳐나가야 하니 꽤 번거로운 일이 됐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누나에게 왜 이 길이 무섭냐고 큰맘 먹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누나가 우리 집 앞 골목길이 너무 캄캄하고 긴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골목길은 이 정도면 가로등이 두세 개는 있는데 누나들이 집으로 오는 딱 그 골목길만 가로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러면 가로등만 설치되면 더 이상 마중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바로 동네 동사무소에 달려갔다. 동사무소 직원에게 "우리 집 앞에 골목길이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누나들이 집으로 오는 걸 무서워해요"라며 종이에 골목길을 그려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꽤 긴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요. 이 정도 위치에 하나 설치해 주셔야 안전해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 골목길에 내가 꼭 집은 위치에 밝은 가로등이 생겼다. 엄청 신기했다. 와, 초등학생인 내가 우리 동네에 가로등을 달다니! 뭔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매우 뿌듯하고 기뻤다. 물론 더 이상 하루에 최대 세 번씩 누나들을 마중을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에 더 기뻤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적어도 우리 누나들에게 밤길이 무서운 세상을 조금이나마 해결한 것이다.

혹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 설치한 것 가지고 밤길이 무서운 세상을 해결했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시 내가 '어두운 골목길이 없는 세상'을 만들거나 하는 거창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바로 골목길 하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온 세상이 바뀐 것과 마찬가지인 효과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온 지구의 밤길을 모두 다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우리 동네에 어두운 골목길 하나 정도는 밝힐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일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혹시 아는가, 어느날 모든 동네의 초등학생들이 각자 다니는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씩을 밝힌다면 우리나라 모든 골목길은 밤에도 밝게 빛나서 안전해질지 말이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그들보다 똑똑하다

가로등 사례처럼 원래 있는 아이디어를 추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의 새로운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창안하거나 더 좋게 바꾸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 사회를 만들어 놓은 당시 엘리트들이 결코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 믿음은 옳은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분명 몇 년은 전일 것 같은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예시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길을 걸으면 매일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떠올려보자. 바닥에 점자 혹은 일자 형태로 돼 시각장애인들이 지팡이로 그 모양을 감지해서 직진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서 주변을 살펴야 하는 곳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단순한 신호판이다. 이 신호는 아주 단순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눈이 되어주는 만큼 매우 중요하다. 
 

유도블록이 처음 설치된 곳 일본 오카야마시 나카구 하라오시마 ⓒ 위키백과

 
그런데 당신은 이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의 처음에는 무슨 모양이었고 어떤 과정으로 발전해 왔는지 기억하는가? 아마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각 장애인 유도 블록은 1965년에 일본의 미야케 세이이치(三宅精一, Seiichi Miyake)가 친구의 실명을 계기로 발명해 1967년 3월 18일 일본의 한 교차로에 최초로 설치된 이후에 그 모습 그대로 전 세계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개발했을 때는 더 좋은 대안이 없는 최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1965년이 아닌 2019년에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새로이 개발한다면 과연 그때와 똑같은 모습일까? 두 말할 것 없이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창조될 것이다. 진보된 과학기술과 디자인이 적용될 것이며, 시각장애인의 보행 특성 등까지 반영돼 보다 편리한 모습으로 개발됐을 것이다.

이는 특정 개인이 다른 누군가보다 똑똑하다는 차원이 아니다. 50여 년 동안 인류의 문명이 다방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50여 년 전 이 사회를 만들었던 사람들보다 똑똑한 것은 당연하다. 다시 첫 문단에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겠다. 기존 사회는 결코 불완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은 옳은 것일까, 틀린 것일까? 대답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특별히 똑똑하거나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조금만 고민해 보면 분명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엉뚱하면서도 서툰 생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가지만 분명히 기억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가 부족한 것보다 더 불완전하다. 우리보다 덜 똑똑했던 과거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다방면에서 "이건 왜 이렇지?"라고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발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취미처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자

NGO에서 활동한 지 8년이 됐다. 어린이 횡단보도 안전지대 '옐로카펫'을 창안해 정부 정책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에도 비영리법인 옐로소사이어티 대표이자 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 NGO 활동가를 직업으로 하기보다는 취미처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활동을 하시기를 제안한다.
 

아동안전위원회 「조두순 접근금지법」 국회 발의 기자회견 ⓒ 이제복

 
아동안전위원회에서도 많은 시민들께서 국민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도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아동이 안전한 나라'라는 공동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아동 관련 법과 정책에 대해서 토론하고, 더 나은 대안을 만들고, 그리고 캠페인을 펼쳐서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일 등을 취미로 활동하는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꾼다는 말이 더 이상 대단한 일인 것처럼 들려서는 안 된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세상을 바꾼다 함은 민주화 운동처럼 역사적 사건에 목숨을 바친 이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새로운 역사의 길을 열어주신 이러한 일들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정말 그런 일들만이 가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도 우리 보통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각자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하나씩 바꾸어 나가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고 이 방식이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새로운 길이라고 확신한다.

꼭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이슈만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마을의 통학로를 아이들에게 더 안전하게 만든다든지, 집 앞 골목길을 더 깨끗하고 쾌적하게 바꾼다든지, 아니면 공원을 더 어르신들께서 쉬시기 편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자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주는 변화일지도 모른다. 
 

아동안전위원회 국민위원들이 참여하는 국민회의 ⓒ 이제복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결코 대단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가져야만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즐거운 취미처럼 담백하게 활동할 때만이 수 천만 국민들의 상상력이 현실로 스멀스멀 흘러 들어와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 취미활동을 위한 준비물은 무엇일까? 오직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진심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필요한 아이디어와 함께 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당신 주위로 다가올 것이다. 당신은 이미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게 바꿀 준비가 충분한 사람이다. 이제부터 취미를 시작하듯 가볍고, 산뜻하게 시작하면 된다.

* 추신. 혹시 이 글을 읽고 "NGO 활동가는 권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에 대한 대답은 "NGO를 꿈꿀 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말려도 하고 있더라"다.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을 쓴 이제복씨는 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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