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2 20:01최종 업데이트 21.01.22 20:01
  • 본문듣기
  

2018년 10월 19일 과테말리와 멕시코를 연결하는 수치아테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주자 카라반 행렬. ⓒ 연합뉴스/AP

  
새벽은 숨어, 달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군요
여명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부디, 태양이 떠오르지 않기를
부디, 국경수비대에 발각되지 않기를

(중략)


아! 내가 가는 길이여,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오직 내가 가진 희망만을 쫓아갈 뿐입니다.
나 홀로, 온전히 나 홀로 어둠을 좇아 숨어들 뿐입니다.

(중략)

곧 돈을 보내겠습니다.

(후략)

Tish Hinojosa(1989), Donde Voy 노랫말 중 일부


'돈데 보이'(Donde Voy), 멕시코와 미국 국경 어디쯤 사막에 숨어든 불법 이주자가 국경 수비대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는 사연이 담긴 노래다. 그 와중에도 고향에 두고 온 연인에게 곧 돈을 보내겠노라 가슴 절절한 약속을 한다. 노랫말만큼이나 애절한 가락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꿈의 나라 미국으로 향해가는 이주자의 슬픈 심정을 대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 모 방송사의 주말연속극에 삽입곡으로 소개되면서 제법 유명해졌다.

돈데 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가 만들어지던 1989년 그 무렵을 이주자들에게 더 할 수 없었던 호시절로 기억한다. 누구라도 맘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국경선 근처에 이르러 코요테라 불리는 월경 브로커에 약간의 돈을 챙겨주면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여유롭게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국경을 자처하고 서 있는 구조물들은 옆집 담장이라 하기도 민망할 만한 높이였고 그나마 두 나라를 가르는 3200km 중 대부분 구간은 구조물도 없이 자연 국경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굳이 사막이나 강을 건너지 않더라도 양국 간 도시와 도시를 잇는 지점에서 미국 땅을 쉽게 밟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의 경우라면 서류를 갖춘 어른들과 동행하는 이상 어지간하면 별도의 조사 없이 무사통과되기도 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이 개시되면서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멕시코 3개국이 국경을 정비하긴 했지만, 지금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국경이었다.  

지난 2018년 4월 3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발트 3국 정상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멕시코 국경) 장벽을 쌓고 적절한 경비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군대로 국경을 지킬 것"이라며 "이는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22일 멕시코 국경수비대원이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의 보조 장벽을 따라 순찰하는 모습. ⓒ 연합뉴스/AP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멕시코에서 살기 힘들어 미국행을 선택한 경우다. 그럼에도 그런 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밀입국에 소요되는 비용이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맘먹는다면, 간단히 괴나리봇짐 하나 들고 갈 수 있는 길이었다.

당시 미국으로 갔거나 혹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국경 넘는 일을 심지어 낭만적으로 추억하기도 한다. 마리아(48)의 경우 1990년대 후반 미국행을 결심했다. 당시 미혼이었지만, 세 아이가 있었다. 일단 그녀가 먼저 들어가 아이들을 데려갈 계획으로 샌디에이고 바로 아래 붙은 멕시코 도시 티후아나에 닿았고 그곳에서 일주일 간 학원을 다녔다. 위조 서류를 만들어 미국 이민국 무사통과를 돕는 학원이었다. 학원비는 300달러였다. 밀입국에 성공할 때까지 지도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학원은 허름한 주택가에 있었지만, 일단 안에 들어가면 그 곳에 미국 이민국과 똑같은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미국 이민국 직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수강생이 제법 많아서 정말 이민국 심사를 받는 것 같은 실감이 났단다. 수강생들끼리 줄을 서서 한 명 한 명 이민국 심사 연습을 하는데, 입에서 말이 줄줄줄 나올 정도로 하루에 서른 번 가까이 통과 연습을 했다.

막상 미국에 들어갈 때는 바로 국경 너머에 쇼핑을 가는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달랑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넘어갔는데, 어찌나 연습을 많이 했던지 자기도 놀랄 만큼 말이 술술술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미국에 들어가 일자리를 구했지만 결국 멕시코에 남겨두고 간 아이들이 보고 싶어 2년만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후안(40)은 어릴 적 부모가 먼저 미국으로 밀입국한 뒤 할머니 손에 키워지다 미국에서 온 먼 친척과 함께 미국으로 들어갔다. 당시 후안의 부모는 밀입국한 지 5년이 되도록 합법적 지위를 얻지 못하여 후안을 데리러 올 수 없었고, 먼 친척이 그 일을 대신했는데 후안이 그의 형과 함께 친척 아저씨의 승합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갈 때 이민국 직원은 후안 형제들에 대한 어떤 서류도 요구하지 않았다.

후안이 미국에 들어간 지 10년 후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고, 다시 일가친척이 있는 멕시코로 돌아왔다. 가끔 그는 미국 공원묘지에 묻힌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당장은 아버지의 묘소에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가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미국은 항상 부엌 찬장 가득 채우고 있었던 시리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이다.

이처럼 멕시코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미국행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경험담을 듣노라면, 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했던 시절 국경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허술했다. 코요테 고용 비용도 매우 저렴했다. 2000년대 초반에도 1000달러를 넘지 않았다. 지금은 2만 달러를 지급해도 성공 보장이 없다.

미국 측의 본격적인 국경 감시가 시작된 시점은 2001년 911사태 이후다.

트럼프 장벽

장벽은 높아졌고 감시는 촘촘해졌다. 적법한 절차 없이 국경을 넘는 일이 녹록지 않아졌다. 코요테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빠르게 상승했고 조금이라도 적은 비용으로 월경하고자 하는 이들은 더 외진 사막과 더 깊은 강으로 내몰렸다. 세계에서 가장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국경이 되어 버렸다. 더 비싸지고 더 어려워지고 당연히 더 위험해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꿈의 나라다. 오직 그들의 비루한 삶에 한 방 잭팟을 터뜨려 줄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다. 승률 앞에 그들이 걸 수 있는 것은 목숨이다. 그들의 삶이 힘들수록 목숨이 걸린 배팅은 과감해진다.

2016년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판이 짜여졌다. 물론 이주자들에게 훨씬 불리하게 기울어진 판이다. 지난 4년간의 상황에 비한다면 이전의 모든 시기는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던 셈이다. 이주자들 입장에선 지난 4년의 시절이야말로 공룡도 얼어 죽을 만한 혹한기에 다름 아니다. 수십 년 살아온 이주자들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가족과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미국 밖으로 내몰렸다.

그렇다고 이주자들이 그들의 행렬을 멈춘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삶의 영위가 불가능한 곳에서라면 더 그렇다. 사람들은 어디서든 자신의 목숨 값을 가늠한다. 배고픔과 폭력 앞에 목숨 값이 가벼워질수록 그 목숨을 건 베팅은 쉬워진다.

트럼프 장벽이 등장하면서 멕시코 사람들의 이주는 확연히 감소했다. 승률이 매우 희박해진 밀입국에 목숨을 걸기엔 그들이 사는 곳에서의 목숨 값이 그리 헐하지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반면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라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3국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이주자들이 미국을 향해 올라온다. 죽음의 열차에 올라타고, 이주자 카라반이 꾸려진다.(이주자 카라반이 온다, 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어라, http://omn.kr/1m4te) 그 중 상당수는 여성과 미성년 아동이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
 

2018년 11월 14일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중앙 아메리카 이주자 카라반 참여자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AP

 
자국 내 배고픔과 치안부재에 시달리느니 유민 혹은 난민이 낫겠다는 계산이기도 하다. 그러니 멕시코를 거쳐 미국 국경에 닿는다 해도 밀입국을 시도하지 않는다. 코요테를 고용할 수 있는 돈도 없을 뿐더러 코요테를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사막이나 강을 건너는 일도 쉽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난민신청이다. 배고픔과 치안부재로 목숨에 위협을 받고 있으니 난민으로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수는 빨랐다. '안전한 제3국'을 걸고 나왔다. 난민 신청 이후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이 아닌 안전한 제3국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안전한 제3국은 '당연히' 멕시코였다. 그간 이들을 거쳐 보냈던 멕시코가 동의할 리가 없을 터, 멕시코의 반발에 관세보복이라는 수를 걸었다. 멕시코가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멕시코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물자에 매달 5%의 관세를 합산하여 부과하겠다는 것이었다. 2019년 6월 5% 관세를 부과한 후 7월에는 10%, 8월엔 15% 그리고 9월과 10월에는 각각 20%와 25%까지 부과하겠다는 포고였다.
 

2018년 11월 28일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중앙 아메리카 이주자 카라반 참가자들이 담요를 덮고 있다.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춥고 비가 많이 오는 티후아나의 날씨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 연합뉴스/AP

 
참으로 희한한 계산법이었지만, 자신의 구미에 맞게 국경 장벽을 건설하면서도 모든 비용은 멕시코에 지불하라던 전력이 있던 터라 놀랄 일도 아니었다. 결국 멕시코는 당장 부과하겠다는 관세 압력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안전한 제3국'을 자처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세계 난민법에 정면으로 위배되었지만, 관련 국제기구들도 침묵했다. 법보다 주먹이 우선이다. 아무리 봐도.

게다가 지난해 3월 18일 이후 미국의 육로 국경이 폐쇄되었고 (양국 간 필수 산업 종사자들만 왕래할 수 있다), 이민국 업무도 계속하여 중단되고 있는 상황이니 결코 반갑지 않은 난민 신청이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 재난 앞에서는 약한 곳이 먼저 타격을 받게 되어 있으니, 경제 대국들도 코로나바이러스 앞에 휘청거리는 마당에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라 불리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치안에서도 이미 취약하기 이를 데 없던 3개 국가의 상황은 부연 설명이 무색하다.

모든 것은 그들의 목숨 값으로 설명된다. 어제 내 목숨 값이 10달러였다면, 내일 내 목숨 값은 9달러 혹은 8달러일 것이다.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내 목숨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목숨을 건 베팅은 더욱 쉬워진다. 그렇게 난민이 되어 미국에 닿긴 닿았으나 트럼프의 괴상망측한 계산으로 절대 안전할 수 없는 '안전한 제3국' 멕시코에 머무는 사람들이 100만 명에 이른다.

하루에 30-40명 정도 진행되는 난민심사와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 혹은 십 수 년까지도 걸린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결국은 멕시코야말로 출구 없는 희망고문터가 되는 셈이다. 그로 인한 골 깊은 갈등의 씨앗을 떠안은 채 말이다.

바이든은 다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UPI

 
2021년 1월 20일 정오, 미국에서는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닷새 전, 1월 15일 '바나나 공화국'이라 조롱삼아 불리는 온두라스에서는 다시 또 미국을 향한 이주자 카라반이 시작되었다. 처음 모인 2000여 명의 숫자는 금방 1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4년간 혹한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조 바이든 시대의 미국에 보내는 S.O.S 인 셈이다. 과테말라 국경에서 군 병력과 대치 끝에 일시 해체되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회오리바람이다.

다만 그들이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오늘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불법 이주자를 추방한 오바마 대통령의 파트너였다는 사실이다.

1823년의 먼로 독트린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 중앙아메리카 작은 나라들이 미국에 얼마나 충실하게 뒷마당 역할을 했는지, 그 와중에 그 나라들의 정치와 경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었는지, 그리고 그 역사 속에 지금 목숨을 걸고 베팅하는 이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미국은 분명히 알고 있다.

대선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와 차이를 두며 이주자에게 우호적이었던 조 바이든은 취임을 며칠 앞두고 한발 슬쩍 뺐다. 당장은 기존 정책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설령 변화가 있다 해도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자들에 대한 대책이 우선 순위 임을 밝혔다. 아직 미국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우호적 입장을 견지하겠지만 최소 6개월 혹은 1년 동안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는 무엇보다도 큰 복병이다. 

UN에 의하면, 멕시코에는 여전히 미국에 닿기를 희망하며 떠도는 100만 명 정도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가 있다고 한다. 이들이야 말로 어쩌면 조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가장 바랐던 사람들일 것이다. 결국 바이든의 시대가 열렸지만, 이들의 꿈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새로운 정부가 미국에 들기 위해 멕시코를 떠돌며 순간 순간 목숨을 걸고 삶을 베팅하는, 왕년 뒷마당 사람들을 부디 잊지 않기를 계속하여 바랄 것이다. 그 희망으로 결고 안전하지 않은 '안전한 제3국'에서의 신산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