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8 08:06최종 업데이트 20.12.2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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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저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원인 바이러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바이러스가 있나 싶다. 전염성이 높은데 사망률까지 비교적 높은 편인 이 질환으로 아무 증상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중증으로 발전해 몇 달씩 앓는 사람들이 있다.

증상을 자각하기 전이나 가볍게 앓을 무렵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전염을 시키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캠페인이 이어져 왔다.
 

미니어처 반달곰 같기도 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데블 ⓒ 픽사베이

 
주머니곰에게 퍼진 괴상한 종양

동물에게 전염성과 치사율이 모두 높은 전염병이 유행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자연선택의 압력이 되는 일이다. 질병은 빠르게 집단 내로 퍼져나가 대부분의 개체를 감염시키고 그 과정에서 이 질병을 견뎌낼 수 있는 유전인자나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들만이 생존해 자손을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사라진다. 감염성과 치사율, 초기 집단의 크기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종 자체가 절멸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섬에 사는 주머니곰들 사이에서 지난 수십 년간 전염병이 돌아 전체 개체 수의 80% 이상이 죽었다. 이 때문에 멸종하게 될 거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최근 이들이 이 전염병을 이겨내고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었다.

이 주머니곰들은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섬에 사는 유대류로 '태즈메이니아 데블'(이하 데블)이라 불리며, 검은색 털에 앞가슴에만 흰색의 반달무늬가 있어 마치 반달곰의 미니어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납고 공격적이며 밤이 되면 으스스하게 울어댄다는 이유로 데블(악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이에나와 마찬가지로 죽은 동물을 먹이로 삼는데 동물의 사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물고 물리는 싸움을 한다. 특히 짝짓기 시기에 그 공격성이 극에 달하는데 짝짓는 과정에서도 암컷과 수컷이 서로 물어뜯고 상처를 낸다.

지난 1996년 이 데블 사이에 괴상한 종양이 번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데블 안면 종양(Devil facial tumour disease)이라고 불리는 이 종양에 걸리면 얼굴에 암 조직이 자라 1년 이내에 죽게 된다. 암 조직이 온몸에 퍼지고 종양이 커지면서 이빨의 위치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입천장과 목구멍을 막아 점차 먹이를 먹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려 죽어간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이 종양에 걸린 개체가 다른 개체들을 무는 과정에서 전염이 된다는 것인데 공격성이 강한 종의 특성 때문에 지난 20여 년간 빠르게 번져갔다.

1990년대에 약 14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던 야생 데블 개체 수는 현재 1만 5000여 마리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만큼 이 종양의 파괴력은 컸다. 마땅한 치료제도 없어 10년 전에는 일부 학자들이 이 종양으로 데블이 멸종하게 되리라 예측하기도 했다. 이에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멸종에 대비해 시설에서 데블들을 키워 차후에 야생으로 내보내려는 목적으로 보호 프로그램들을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서 데블들이 이 질병을 이겨내고 있고 점차 이 암이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질병에 보인 반응 경이로운 수준"

최근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연구는, 현재 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인 SARS-CoV-2의 유전체를 분석해 전파를 추적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2003년과 2018년 사이 감염된 여러 데블에서 채취한 종양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종양 유전체의 분석은 바이러스 분석보다 더 복잡하다. 연구진은 일정한 속도로 진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28개 유전자에 집중해 어떻게 특정 돌연변이들이 종양 샘플들 사이에 퍼져나갔는지를 추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암 자체가 데블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비율을 계산해 이 질병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초에 감염 재생산지수가 3.5였다가 최근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감염된 데블 한 개체당 적어도 3.5마리의 다른 개체들을 감염시켰던 것에서 최근에는 개체당 다른 한 마리를 감염시키거나 아예 감염시키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 감염 재생산지수가 1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이는 질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야생에서는 이렇게 빠르게 감염 재생산지수를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다.
 

"태즈메이니아데블이 파괴적인 안면 종양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라는 <가디언> 기사. 트위터 캡처 ⓒ Twitter

 
연구에 참여했던 태즈메이니아 대학의 로드리고 하메데 박사는 데블들이 이 질병에 보인 반응 속도가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말한다.

"보통 이런 일은 네댓 세대 만에 일어나지 않죠.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이번 연구는 이 전염병이 한참 전에 그 절정에 달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죠. 앞으로 데블들은 다시 개체 수가 늘어나게 될 겁니다."

이 말은 살아남은 데블들에게 면역체계가 발달해 있어 감염이 더 번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집단 면역 상태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간 데블들의 개체 수가 크게 낮아진 만큼 밀도가 낮아져 서로 접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가 차후 야생으로 보내려고 시설에서 데블들을 키우는 프로그램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이 질병에 저항성을 갖게 된 야생의 개체들과 시설에서 자라 아무런 저항성이 없는 개체들 사이에 자손이 생겨나 퍼지면 이 암에 대한 야생 개체들의 저항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지금 상태에서 야생으로 데블들을 풀어줘 갑자기 개체 수가 늘어나 버리면 접촉이 늘어 감염 재생산지수도 다시 올라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돕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자연선택을 거쳐 스스로 개체 수를 회복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적극적인 개입보다 더 필요한 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물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또 다른 연구는 이 전이성 암에 걸린 데블들이 보인 행동상의 변화에 관해 보고했다. 12월 9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종양에 걸린 데블들과 다른 개체들의 접촉이 줄었다.

연구진은 22마리의 데블에게 추적 장치를 달아 6개월간 관찰했다. 이 장치는 개체들끼리 서로 30cm 이내로 가까워지는 것을 기록했다. 매달 이 데블들의 종양 감염 여부와 그 크기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도 기록했다. 이를 추적 장치 데이터와 함께 분석해 각 개체의 감염 여부와 증상의 진행 상황에 따라 다른 데블들과의 밀접 접촉하는 양상이 달라지는지를 본 것이다.

결과에 따르면 감염된 개체는 병증이 심해짐에 따라 다른 개체들과의 접촉을 줄였다. 평소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개체였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건강한 개체들이 감염을 피하려고 접촉을 안 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결과였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이 질병을 활발히 퍼뜨리는 개체들은 감염 초기 단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감염 초기 단계일 때 다른 개체들과 싸우고 물면서 그사이 질병을 전염시킬 기운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대부분의 전파가 미처 증상을 자각하기도 전 건강한 시점인 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암이 점점 커지는 과정에서 얼굴에 변형이 오고 이빨이 제 위치에서 밀려나는가 하면 입천장과 목구멍이 막히기도 해 먹이 섭취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만큼 아픈 데블들이 에너지를 아끼고 회복하려고 공격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다른 개체들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연구진은 암덩어리가 가장 커 가장 활발히 전이할 시기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질병 전파 속도를 떨어뜨릴지도 모른다고도 말한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외신들은 종양에 걸린 데블들이 "반사회적"으로 변하는지도 모르겠다거나 이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냐고 말하고 있다.

어째서 아픈 데블들이 증상이 심해짐에 따라 사회성이 줄어드는지 그리고 이것이 질병의 전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후속 연구에서 더 밝혀질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멸종 위기에 처했던 태즈메이니아 데블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소식은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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