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4 07:32최종 업데이트 20.11.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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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게임사 캡콤은 16일, 사이버 범죄집단의 해킹 공격으로 게임 이용자와 거래처 관련 정보 35만 건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 unsplash

 
지난 16일 일본의 게임 회사 '캡콤'이 대규모 해킹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해커들은 캡콤의 사내 기밀 문서를 빌미로 막대한 규모의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로인해 캡콤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과는 별개로 게임 커뮤니티는 한동안 들썩였다고 한다.

해커들이 빼돌린 자료로 '알려진' 정보들 속에는 캠콤의 인기 게임 후속작 및 신작 개발 일정도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흥미를 끈 자료는 따로 있었다. 바로 게임 속 여성·비백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 재현과 관련한 캡콤의 사내 지침이다.


캡콤의 가이드에는 게임이 소수자에 대한 재현을 할 때 그 속에 편견이나 혐오가 담겨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이 내용은 지침에 적합한 사례와 그렇지 못한 경우까지 담길 정도로 매우 구체적이었다.

예를들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Part II'는 성소수자 캐릭터를 제대로 묘사한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되었다. 반면 여성을 도움이 필요하거나 수동적인 역할만을 수행한 사례는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지침에는 선택 가능한 캐릭터들이 어떤 성별이든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이들의 외모를 설정할 수 있다면 머리 스타일, 피부색, 체형 등의 옵션이 다양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캐릭터들의 노출과 성애화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지침은 그런 식의 재현에 성별에 따른 편차가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이야기의 흐름상 필요한 경우에만 등장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정치적 올바름'

물론 해킹으로 인한 대부분의 내부 정보 유출 사례에서 그렇듯 이렇게 세간에 알려진 정보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하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유출된 자료에 직접 접근해야 하는데 그건 위법 행위에 동참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자료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저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저 지침이 진짜냐 아니냐는 적어도 이 글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의 관심은 유출된 것이라 알려진 가이드라인을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에 있었다. 가령 남초 성향이 강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한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캡콤마저 PC를 추구하냐'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해킹된 자료에 따르면 캡콤은 성별에 따른 편차가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이야기의 흐름상 필요한 경우에만 등장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자 남초 현상이 강한 한 게임 커뮤니티에 '캡콤마저 PC를 추구하냐'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올라왔다. ⓒ pixabay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는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요근래 아주 뜨거운 개념이었다. 누군가는 게임 회사들이 시대의 흐름에 발을 맞춘다고 환영했지만, 한편에서 어떤 사람들은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가 게임의 재미를 망친다고 반발했다.

이런 식의 반발은 여성 캐릭터들이 노출이 전무한 의상을 입고 게임에 등장하거나 혹은 인기 슈팅 게임의 군인 캐릭터가 동성애자라는 설정이 공개되었을 때 나타났는데, 사실 수긍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오지를 뛰고 구르는 게임의 주인공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있었다면 오히려 더 집중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헤치지 않는 이상 주인공의 성적지향이 어떻든 게임의 재미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는 걸까.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이 이상한 이유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이 저런 식의 발언을 너무도 쉽게 한다는 것에 놀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로 재미가 사라졌다'는 말은 너무도 위험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평가 받는 가치는 아무리 철저하게 추구되어도 '과도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예를들어 한국 사회는 수차례 집회를 통해 권력자를 끌어내린 경험이 있지만, 이를 두고 '과도한 민주주의 추구'라고 말한 이가 있는가. 하지만 유독 성평등·인종차별 반대와 같은 가치에만 '적정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소수자에 대한 어느정도의 차별과 혐오는 필요하다'는 말이나 다름 없게 된다.

'재미가 사라졌다'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적 올바름'이 누군가의 '재미'를 앗아갔다는 말은 그 사람이 지금껏 소수자에게 유해한 요소들에서 재미를 느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치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무지와 게으름이라고도 한다. 점차 가시화 되는 소수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새롭게 부상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편향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습득하는데 아주 성실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득시킬 근거가 없다면 새롭게 가공하는 데에도 열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결국 무엇일까 늘 고민했다. 조심스럽게 답을 내려보자면 그건 '현실부정'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 발맞추어 움직이는 게임 업계

물론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차별과 배제가 만연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양한 삶의 형태와 소수자의 존재를 깔끔하게 지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여성', '최초의 비백인'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성별이나 인종이라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많아졌고, 그런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다른 국가로 시선을 돌린다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고 정치나 행정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힘이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존재하기만 했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에 사건의 중심에 섰던 소수자들의 존재는 찾기가 그리 힘들지도 않다. 가령 2007년 미군이 바그다드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던 사실을 폭로해 이라크전을 둘러싼 여론을 뒤흔들었던 첼시 매닝은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이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트랜스젠더 여성인 리베카 앤 하이네만이다. ⓒ 넷플릭스

 
말하자면 게임 회사가 다양한 성별 정체성·인종·체형·성적지향을 지닌 캐릭터들을 게임에 등장시키고, 이들에게 편견을 넘어서 다양한 성격과 삶을 부여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뒤늦은 현실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들의 존재와 묘사가 현실성이 떨어지고 뜬금 없고 어색해서 결국 '재미를 해친다'는 말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어쩌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게임에 반영되는 것을 막고 오직 특정한 성별만을 위했던 가상의 세계를 보수적으로 방어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의 세계 조차도 결코 특정 성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E스포츠'가 활성화 되기 오래 전인 1980년, 최초로 열린 대규모 비디오 게임 대회였던 '스페이스 인베이더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트랜스젠더 여성인 리베카 앤 하이네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후로도 계속 게임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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