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3 13:24최종 업데이트 20.11.1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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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멕시코 중부 과나후아토 주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 수십 구의 시체가 암매장된 구덩이가 발견됐다. ⓒ 멕시코 방송 Televisa 화면 캡처

 
다시, 암매장 구덩이가 발견됐다.

지난 10월 말 멕시코 중부 과나후아토 주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 59구의 시체가 암매장된 구덩이가 발견됐다. 수사 당국의 발표대로라면 사망한 지 3개월 혹은 6개월 정도 된 상태였고 그 중 10~15구 정도는 여성으로 추정됐다. 발굴된 59구 모두 20대에서 40대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었고, 일부는 10대로 보인다는 소견도 있었다.

충분히 놀랄 만한 뉴스다. 하지만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 멕시코에선, 틀에 박힌 단골 뉴스 중 하나일 뿐이다. 올해만도 이미 수십여 차례 구덩이가 발견된 장소와 구덩이에서 발굴되는 시체의 숫자만 바뀐 채 같은 내용의 뉴스가 발표된 터다. 아직 올해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발견된 암매장 구덩이가 850여 곳에 이르고 그 곳에서 발굴된 시신 수가 1300여 구에 이른다. 그러니 별로 놀라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될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59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단신으로 처리되었다. 이후 수사 진행에 관한 뉴스는 없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용의자를 색출하고 수사를 통해 범인 검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뉴스가 나와야 할 것이나, 현재 멕시코에선 그렇지 않다. 사건에 대한 뉴스만 있을 뿐, 조사나 수사 결과에 대한 뉴스는 흔치 않다.

괴기 영화보다 더 괴기스러운

2019년 한 해 멕시코에서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해되었지만, 그 중 87%는 미제로 남았다. 수사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주에서는 살인사건 미제율이 99%에 이르기도 한다. 사실 암매장 구덩이에서 수십 구의 시체가 쏟아져 나와도 딱히 그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DNA 검사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전 국민 주민등록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멕시코에서는 가족이 직접 찾아 나서지 않는 이상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에 발굴된 시체 59구에 대해서도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 왜 그들이 죽어 묻혔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올해만도 이미 수십여 차례 구덩이가 발견된 장소와 구덩이에서 발굴되는 시체의 숫자만 바뀐 채 같은 내용의 뉴스가 발표된 터다. ⓒ 멕시코 방송 Televisa 화면 캡처

 
다만 이 사건에 대해 삼척동자도 충분히 짐작할 만한 사실이라면 죽여 묻은 자나 죽어 묻힌 자나 마약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란 점이다. 늘 그렇다. 어쩌면 이 사회에 만연한 죽음을 접할 때마다 자동으로 등장하는 모범답안과 같은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하던 동료가 백주에 총에 맞아 죽어도 답은 같다. 동료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보다, 동료가 '어쩌면' 마약 조직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좀 더 놀라울 정도다.

전쟁 중이 아니고 또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출되고 구성된 정부가 운영되고 있는 나라에서 1년에 3만 명 이상이 살해된다는 사실과 그 중 90%는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게다가 여전히 6만 명이 넘는 실종자가 존재하며 수시로 수십 구의 시체가 묻힌 암매장 구덩이가 발견된다.

시체가 온전한 몸의 형태로 발견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당수 암매장 구덩이에서는 몇 명인지 파악이 어려울 만큼 조각난 사체들이나 뼈들이 발굴되기도 한다. 뉴스에서도 '시체 몇 구 외 몇 점'이라는 발표가 일반적이다. 가끔 이곳 멕시코 뉴스가 괴기 영화보다 더 괴기스러운 이유다.

그런데 더 믿기 어려운 일은, 그런 상황 앞에 시민들의 무덤덤한 반응이다. 암매장 구덩이뿐 아니라 대로에 조각난 시체들이 줄을 지어 뿌려지고, 도심 한복판 고가도로에 시체가 내걸려도, 그건 '그들'의 일일 뿐이다. 내가 그들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내 삶과는 무관한 것이란 생각이 전반적이다.

다만 운이 좋지 않아, 혹은 재수가 없어, 내 삶이 어쩌다 그들 세상의 어디쯤과 충돌할 여지는 있다. 시내 어디쯤에서 조직간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와중에 휩쓸리거나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 유탄에 맞는 경우다. 혹은 더 재수가 없다면, 누군가 나를 보복 대상이 된 조직원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는 사고일 뿐, 멕시코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마약에 얽히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은 '그들'의 시·공간과 절대 섞일 일이 없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루에 100명 가까이 살해되는 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기 최면일 수도 있겠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암매장 구덩이가 발견되고 시체들이 도심 고가에 내걸리고 한적한 국도변에 조각난 시체들이 수 킬로미터 줄지어 뿌려질 수 있는 것은 치안과 안전을 담당해야 할 공권력의 무기력함 혹은 열세에 다름 아니다. 물론 부패도 당연히 한 몫 한다. 지난 1년 사이 각각 치안과 국방을 책임지던 두 명의 전직 장관들이 마약 카르텔과 한통속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간의 추측들은 사실에 가까워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내외 언론들은 '실패한 국가' 혹은 '마약 정부'라며 조롱한다.

마약에 화살을 돌리면 끝일까

이쯤 되면 작금 멕시코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마약이다. 가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만행을 다루는 대한민국 언론과 그에 달리는 댓글 상당수 역시 마약에 모든 악행의 책임을 돌린다. 그런데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은 마약이 이토록 참담한 폭력과 숱한 죽음들의 직접적 원인인가 하는 물음이다. 왜냐하면 이 숱한 죽음의 직접 사인이 마약 중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말 멕시코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마약 터널에서 압수된 마약들. 마약의 종류는 마리화나부터, 코카인, 헤로인, 메탐페타민, 펜타닐 등으로 다양했다. 총 3천만 달러 정도의 가치로 환산되었다. ⓒ 미국 연방정부 마약단속국 보도자료

 
게다가 멕시코는 마약 생산국가도, 소비국가도 아니다. 최근 들어 메탐페타민 혹은 펜타닐 같은 화학 마약을 제조하긴 하지만, 고전적 마약에 속하는 코카인이나 헤로인의 경우 생산과 소비로부터 한참 비껴 있었다. 다만 오랜 시간 멕시코가 관여해온 부분이라면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마약을 북쪽 미국으로 운송하는 것 뿐. 한마디로 마약이 거쳐가는 길목이었을 뿐이다.

멕시코를 거쳐 올라가는 마약의 최종 목적지답게, 전 세계적으로 마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코카인과 헤로인이다. 코카와 아편이 주재료다. 보통 그램(g) 단위로 판매되는 이 마약들의 미국 내 소비 총량이 연간 최소 700톤에 달한다. 부피가 큰 마리화나를 포함한다고 해도 도무지 상상키 어려운 양이다. 물론 마약 복용 인구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로 인한 피해 또한 심각하다. 인구의 20%는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고 5% 정도는 심각한 중독 후유증을 경험한 바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2020년 현재 미국에선 자살, 살인, 총기사고, 혹은 교통사고보다 마약에 의한 사망자 숫자가 훨씬 많다. 1년 동안 약 7만 명이 마약 복용으로 인해 사망한다. 기저질환 혹은 합병증 유발로 인한 간접 사인이 아닌, 직접 사인의 경우다.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최근 들어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아편을 기반으로 하는 헤로인이나 최근 급부상하는 신종 마약 펜타닐로 인한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13명을 상회한다. 정작 그 마약이 올라오는 바로 아래 멕시코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0.7명 수준이다.

그러니 미국 정부 입장에선 자국 내 마약 문제 해결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급을 독점하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 2006년 멕시코에서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표면상으론 멕시코 정부가 자국 내 마약 카르텔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격이지만, 그 이면에 미국의 압력이 존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2000년대 초, 콜롬비아 우파 정권과 협공하여 코카인 제조 공급책인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을 초토화시킨 전력이 있었다.

마약과의 전쟁

그러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카르텔의 붕괴는 커녕, 이 시기를 기점으로 멕시코에서는 살인 건수가 치솟았고 미국에서는 마약 소비가 치솟았다. 직·간접적으로 마약 카르텔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두 나라의 분기가 충분히 무색할 만하다.

미국 수사 당국에서는 멕시코 주요 카르텔 우두머리에 역사상 유래 없는 현상금을 걸고 체포 작전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그 현상금에 걸려든 자는 없다. 엄청난 화기를 앞세운 정부군의 작전에 겨우 한두 명 체포하는 전과를 올리긴 하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해당 카르텔들은 붕괴하는 대신 더욱 포악해졌다.

일인자가 제거되자 넘버투, 넘버쓰리들이 넘버원이 되기 위해 피의 전쟁을 벌였고, 새로 넘버원 자리에 오른 젊은 보스들은 과거 정부 혹은 타 조직 간에 암묵적으로 존중해 오던 룰마저 파기하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또한 조직들이 갈리고 신생 조직들이 난무하면서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 수사 당국도 그들과의 대화 창구는 커녕 기본적인 정보 수집에도 애를 먹는 형국이다.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난 14년 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오히려 유래 없는 강세를 보여왔다. 남쪽으로는 과테말라로부터 콜롬비아까지 마약 운송 루트를 장악했고 북쪽으로는 미국 주요 거점 도시 곳곳에 조직을 확장시켰다. 과거 콜롬비아 카르텔에 조력하던 수준에서 콜롬비아 카르텔 장악까지 나선 셈이다. 그 사이 멕시코에는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약 소비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 마약 당국이 최첨단 장비와 무기를 동원하여 마약이 유입될 만한 길목을 차단한 채 작전을 펼치지만 그들이 잡아내는 양은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양의 5%도 미치지 못한다. 마약 운송에 무인항공기와 소형 잠수정이 이용되기도 하지만, 단가가 비싼 마약 즉 헤로인이나 펜타닐 같은 종류들은 조직원들에 의해 직접 유입된다. 마리화나처럼 부피가 큰 마약들은 멕시코와 미국 국경 지하로 정교하게 뚫린 터널을 이용하기도 한다.
  

지난 2019년 12월 2일 월요일 멕시코 비쟈 우니온에서 청소 노동자가 총알 구멍이 난 시청의 외관을 수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무장한 마약조직 카르텔 공격조직과 보안군 사이의 주말 총격전이 벌어져 22명이 숨졌다. ⓒ AP=연합뉴스

 
마약은 미국으로, 무기는 멕시코로

이렇게 계속해서 멕시코로부터 미국으로 마약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은 현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첩보와 무장이 결코 두 나라의 정규군에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군 헬기가 카르텔의 박격포에 맞아 추락하는가 하면, 수도 멕시코시티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청장이 카르텔의 매복 공격을 받기도 한다. 작전을 통해 드러나거나 압수되는 이들 무기의 면면은 전시 국가의 정규군 화력을 능가한다.

이쯤 되면 무기의 출처에 대해 물어야 한다. 마약의 출처는 이미 분명하다. 코카인의 경우 원산지는 콜롬비아와 볼리비아 일부 지역이고 최종 유통업자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다. 그리고 최종 소비지는 미국이다. 헤로인이나 메탐페타민은 최근 멕시코 제조가 우세하고, 가장 심각한 마약으로 분류되는 펜타닐은 중국에서 멕시코로 들어온 후 미국으로 운송된다. 최첨단 장비와 무기를 동원한 멕시코와 미국 두 나라의 감시를 피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보유한 무기와 장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미국이다. 멕시코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1년에 약 20만 건의 무기가 밀수입되는데 그 대부분의 출처는 미국이다. 지난 10년 사이 약 200만 건의 살상무기가 밀수입 된 것으로 확인되며 그 중에는 최신형 대물 저격총부터 대전차 박격포까지 포함된다.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발생한 30만 명 죽음에 대한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죽은 자들은 대부분 카르텔 조직원들이지만, 경찰, 군인, 일반시민도 상당수 포함된다. 불행하게도 갈수록 조직원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는 와중이니, 죽음의 구분으로 조직원과 일반인을 명확히 가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살인 건수의 급격한 증가와 총기에 의한 살인 건수 비중의 증가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불과 15년 전 20%대에 머물던 총기에 의한 살인 비중은 최근 70%를 넘어섰다.
 

2020년 1월 멕시코와 미국 국경지역에서 발견된 마약 운반 터널 내부. ⓒ 미국 관세국경보호청 보도자료

 
공교롭게도 멕시코에서 마약 카르텔의 무장력이 강화됨과 동시에 살인이 만연해진 시점은 미국이 무기 거래 규제를 대폭 완화한 시점과도 맞물린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던 2004년 무기 거래 금지법(Federal Assault Weapons Ban, AWB)이 폐지되면서 무기 거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자국 내 대형 총기사고들을 겪으며 다시 무기 거래 규제에 대한 사회적 청원이 강하게 일었지만 도날드 트럼프 정부에서 철저히 무시되었다.

멕시코로 내려오는 무기 대부분은 미국에서 합법적 혹은 대리 구매된 후 밀수된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터널을 파는 이유 중 하나는 대형 무기를 운반하기 위함이다. 마약이 올라가고, 무기가 내려온다.

2020년 현재 미국에서 유통되는 헤로인의 도매가격은 1킬로그램(kg) 당 5만5000달러를 상회한다. 물론 최종 소매가격은 이보다 훨씬 더 비쌀 수밖에 없어 1그램(g)당 1200달러 정도다. 코카인이나 메탐페타민의 가격은 그보다 낮게 책정되긴 하지만 그램 단위로 판매되는 마약류의 총 소비는 연간 수백 톤 단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마약 소비에 빨려 들어가는지를 대략 계산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미국 내 무기 구매와 멕시코 내 무기 밀수에 빨려 들어가는지에 대한 계산과 다름 아니다.

그 계산속에 현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잔인함과 포악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1년이면 최소 3만 명씩 죽어 나가는 멕시코의 비현실적인 치안 부재가 설명된다. 수십 구의 시체가 쏟아져 나오는 암매장 구덩이가 놀랍지 않은 이유다. 미국으로 더 많은 마약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미국에서 더 많은 무기가 내려올수록, 죽음은 더욱 만연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이 참담한 상황이 누군가에겐 호재임이 분명하다. 마약과 폭력과 죽음을 둘러싸고 돌고 도는 돈이 마지막 머무는 곳이다.

이번에 발견된 암매장 구덩이에서 시체 59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며칠 후 61구로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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