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 19:18최종 업데이트 20.11.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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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비앙코(Monte Bianco)'는 '흰 산'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몽블랑(Mont Blanc)'의 이탈리아어식 표기입니다. 만년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또 한 자루쯤 소장하길 원하는 필기구 브랜드가 바로 몽블랑입니다.

1906년 탄생해 1, 2차 세계대전과 미국 세계대공황 시기를 그저 버텨내기만 한 게 아니라, 되레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필기구계 명품 브랜드의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이미 선발주자인 워터맨과 파카가 있었지만, 몽블랑이란 이름의 독일 전차 포구에서 쏟아내는 막강 화력을 바탕으로 고지를 탈환했습니다.

몽블랑이 독일 브랜드니 당연히 몽블랑산도 독일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실제론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이 바로 몽블랑입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사상 최대의 세계 대공황이 전 세계에 어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일단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소비될 것을 믿고 넘치게 만들어 냈으나, 어려워진 살림살이로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고, 물건이 판매되지 않으니 회사가 도산하게 되고, 그게 실업률로 이어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는 1939년까지 이어지며, 같은 해 발발해 1945년까지 지속된 2차 세계대전에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암울했던 시기 동안 만년필이란 꽃은 성장을 거듭하며 화려하게 자라나 여러 형태의 열매를 맺기에 이르니, 통상 1920~1940년대를 만년필의 황금기라 부릅니다.
 
세계적 대재난시대와 맞물려 만년필 시장이 점점 성장하던 그 시절, 대한민국은 수렁에 빠진 형국이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치욕이라 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라 불리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됩니다. 이 불공정 조약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기 전까지 34년 11개월 보름 동안 일제강점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19년 3.1운동과 이듬해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로 저항의 몸짓을 이어갔습니다. 세계적 대공황 시기에 우리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견뎌내며, 1931년 '조선어 학회(朝鮮語 學會)'를 출범해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왔습니다. 말이 모여 글이 되고, 글이 모여 책이 되며, 책이 모여 한 시대의 정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필기구 제조사 '모나미(mon ami)'는 '나의 친구'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입니다. 모나미는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60년대는 범세계적으론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성장을 거듭하는 때였으며, 우리나라엔 '굴곡의 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세대가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1963년 두말이 필요 없는 불세출의 명작 '모나미 153' 볼펜이 탄생했고, 보급형 만년필 '올리카'를 2016년 출시하게 됩니다. 최초의 만년필 생산업체인 워터맨에 비하면 133년이나 뒤진 출발이지만, 있는 힘껏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필기구 시장이 성장하는 것에 발맞춰 만년필 사용자도 함께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수입품인데, 국내 업체가 뒤늦게나마 합류해주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모나미(mon ami) 로고 ⓒ 김덕래

 
지금의 만년필 시장은 막강한 독일 1강 체제 아래, 이탈리아와 미국 출신, 일본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삼각뿔 형태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 바위 틈새를 대만이나 중국 등 기타 그 외 나라들이 조약돌처럼 메우고 있습니다.

모나미는 현재 보급형 기종만 내놓고 있지만, 상품성을 강화해 다른 만년필 브랜드와 견줄 만한 상위 모델들도 출시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종국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력한 만년필 제조사가 되기를, 발음마저 어딘가 닮아있는 몽블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그날을 고대합니다.

그 옛날 우리 윗세대가 조선어 학회를 통해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냈던 것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종 브랜드로서의 자존감을 지켜주길 소원합니다.
 

모나미 라인(REIN) 만년필 EF촉 ⓒ 김덕래

 
특별한 수학여행에서 손편지를 쓴 아이들

10월의 끝자락에 아주 특별한 수학여행을 함께하고 왔습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 물길을 헤쳐가면 도초도라는 섬이 나옵니다. 수천 개에 이르는 국내 섬 중 13번째로 큰 섬인 도초도엔 신안군 유일의 인문계 고교, 도초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국내 모든 고등학생들이 2학년이 되면 수학여행을 갑니다만 예상 못한 질병 재난으로 인해 어디에도 갈수 없는 게 현실이고, 이 섬마을 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섬을 벗어날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수학여행 프로젝트를 섬마을인생학교에서 기획해, 2박 3일간 60명의 학생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람도 잠시 쉬어가는 도초도 시목해변. ⓒ 김덕래


외부에서 온 강사진들과 섬마을 고등학생들의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걸 감안해 매 프로그램마다 소독제로 손을 씻고, 마스크를 계속 쓴 채 소규모 그룹으로만 진행했습니다.

얼굴이 가려져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맨얼굴을 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안전과 맞바꿀 만한 가치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한 명 한 명 다 금쪽같은 아이들.. 어쩔~! ⓒ 김덕래

  
둘째 날, 한 남학생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암송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되는 시를 낮은 저음으로 한 줄 한 줄 읊조릴 때마다 좌중은 점점 더 깊은 가을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성인 체격에 육박할 정도로 참 잘 큰 아이들이, 잠시 시인이 된 동급생의 정서에 어느새 함께 젖었습니다.

시인 친구가 말하는 지금의 현재를 같이 공감하고, 미래를 함께 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강사진의 방문에 세상 둘도 없는 환대를 해준 그 남학생으로 인해 시 한 편이 누군가에게는 진심을 담은 배려가 되고, 소박하나 진정이 담긴 위로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참 고맙게도, 이 시대에도 아직 시는 죽지 않았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 김덕래

 
게임에 걸려 벌칙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자, 부끄럼 많던 한 여학생은 생각도 못한,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산토끼'를 불러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참고 동요를 부르는 것도 그랬지만, 더 놀라운 건 다음이었습니다. 같은 반 학생들이 야유를 보내는 게 아니라 웃으며 같이 부르는, 이른바 '떼창'을 했기 때문입니다.

호응에 용기를 얻은 여학생은 있는지도 몰랐던 산토끼 2절까지 다 불렀고, 우리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1분의 시간을 함께 나눠 가졌습니다. 학교 폭력이 너무 흔해 더는 놀랍지도 않은 이 세상에, 아직도 이런 순수함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는 것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여러 프로그램 중 한 꼭지로 '손글씨의 즐거움'이란 부제를 단 만년필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고, 강연 후반에 만년필로 손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까지 같이 준비해 실제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고 받는, 낯설어 더 오래 기억될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자신에게 쓰는 편지도 의미가 있을 테고,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만년필로 써 보내는 편지라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겠냐 했더니, 다들 눈을 반짝이며 한 줄 한 줄 써내려 갔습니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발표하고 싶은 학생이 있는지 물었더니, 호기롭게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같은 반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는데, 처음엔 서로 어색했지만 가깝게 되니 배울게 많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수학교사가 되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학생들에게 수학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지금의 선생님이 나의 선생님이어서 참 행복하다'는 의미가 담긴 내용이습니다.

그걸 듣던 여학생 몇과 선생님의 눈이 점점 빨개지더니 결국 눈물을 뚝뚝 떨궜습니다. 교권이 땅에 떨어진 요즘이라 말합니다. 스승의 그림자를 일부러 밟는 걸 넘어서, 그림자의 주체에 대놓고 해코지하는 경우도 심심찮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게 대한민국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년필 강의의 시작... 더 배우는 자리 
 
작년 모 여대 교수님이 만년필에 대한 인문학 특강을 요청했을 때 일입니다. '고작 블로그에 쓴 수리기를 보고 어떻게 강연 의뢰를 하셨냐, 나는 그런 일을 해본 경험이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데, 혹여 내가 말문이 막혀 강연을 망치면 당신의 면이 상할 수도 있지 않겠나, 좋게 봐줘 참 고맙지만, 내가 수락하기엔 너무 위험 부담이 큰 제안이라 받기 힘들다'며 정중히 사양을 했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다 그렇듯, 제가 다니는 학교도 아침에 한 손엔 노트북, 다른 손엔 핸드폰 하나만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차장님. 언제부터인가 살인을 비롯한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범죄가 넘쳐나, 어지간한 사건 사고는 더 이상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하루 한 줄이라도, 연필이나 볼펜, 샤프나 수성펜 등 아무 필기도구로든 하루 한 줄이라도 손글씨를 쓰는 게 일반화된 세상이었더라도 똑같았을까요? 혹시... 아니진 않았을까요?"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사전적인 지식을 전달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걸 원했다면 혹시나 차장님이 강연 도중 머릿속이 하얘져 망치면 어쩌나... 걱정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저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도 구시대 유물이라 생각하는 만년필을 쓰는 사람들이 있고, 고장난 그 펜을 어떻게든 살려내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그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자극이 될 거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혹여 내 얼굴이 깎이면 어쩌나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 교수님의 말에 저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고, 그 첫 강연이 다음 강연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기 섬마을까지 왔습니다. 2박 3일간의 일정은 참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어떤 프로그램도 평생의 한 번뿐인 수학여행을 대체하긴 힘들 거란 제 예상은 참 다행히도 틀렸습니다. 처음보다 확연히 커진 아이들의 목소리 톤에서, 형형히 빛나던 눈빛에서, 마스크를 통과해 비춰지는 표정에서, 거침없던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특별한, 마치 선물 같은 수학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무언가 나눠주려 갔는데, 되려 잔뜩 받아 왔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섬과 섬 사이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빈틈없이 손에 손을 잡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 반가운 얼굴들을 언제고 다시 볼 날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20년 10월 끝자락, 아주 특별한 수학여행. ⓒ 김덕래

 
* 모나미(mon ami)
-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창립자 송삼석 회장에 의해 출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작 중의 명작 모나미 153 볼펜을 만들어낸 토종 필기구 브랜드. 1974년 '모나미'로 상호를 변경 후 여전히 성장 중인 국민 문구 제조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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