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4 08:22최종 업데이트 20.10.1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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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특히 신문은 1960년대 이래 권력과의 유착 관계, 일체 관계 속에서 독과점 기업으로 성장한 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무한 경쟁을 통해 소유집중과 세습경영을 구조화했다. 이른바 '황제 경영'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어느덧 권력화한 일부 언론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넘어 적대 관계에까지 나아갔다. 이제 한국의 언론(신문)은 정권 위에서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성향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언론의 권력기구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2002년에 발간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구서 '편집권의 독립, 반세기의 고민' 194쪽에 나오는 글이다.
 
권-언 유착으로 고속 성장... 조·중·동 독과점 굳혀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이 연구서가 나온 당시는 신문이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조·중·동의 독과점이 강력하여 여론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으며, '조선일보 없는 세상'을 꿈꾸던 '안티 조선' 운동도 활발했다.
 
조·중·동은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여러 가지 특혜를 바탕으로 고속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후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약탈적 판매전을 치르며 크게 성장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조·중·동은 여론시장을 압도했다.
 
박정희·전두환 군부 정권은 언론 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에게는 해직과 같은 채찍을 휘두르는 반면, 언론사 사주들에게는 커다란 당근을 주었다. 그러잖아도 태생적으로 권력에 굴종해온 사주들은 이런 당근으로 군부 권력에 더욱 밀착하게 되었다.
 
박정희 권력이 신문사 사주들에게 베푼 대표적인 특혜 사례로는 신문사의 외국 차관 도입을 허용한 것이다. 당시 국내 금리는 연 26%였는데 외국 차관은 7~8%에 불과했다. 박정희 권력의 허락 없이는 차관 도입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차관을 허용받는다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특혜였다. 아래 표는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전후한 시기에 이뤄진 주요 신문사들의 차관 도입 현황이다.
                                          

ⓒ 고정미

 
전두환 정권에서 폭발적 성장
 

중앙일보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겼다. 사진은 중앙일보 상암 사옥. ⓒ 중앙일보


전두환 정권에서 언론사들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은 한편으로 대규모 언론인 숙청과 언론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아 있는 기자들과 언론사에 대해서는 여러 특혜를 베풀었다. 기자들에게는 자녀 학자금 지원, 주택 자금, 생활 안정 기금을 융자해주고 해외 연수, 해외 시찰의 기회도 크게 늘렸다.
 
이 기간 동안 기자들의 월급도 엄청나게 올랐다. 1979년 11월 기자협회에서 조사한 기자들의 임금수준은 대기업의 50%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80년 중반부터는 대기업을 훨씬 웃도는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러한 높은 급료와 여러 가지 사회적 혜택은 기자들의 현실 안주와 보수화를 촉진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기자들뿐 아니라 통폐합에서 살아남은 언론사들도 각종 특혜 속에 비대해져 갔다. 경기 호황 국면에 힘입어 광고 물량은 4배나 늘었지만 통폐합으로 언론사가 줄어드는 바람에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 <한국언론 바로보기>(2000, 다섯수레) 524~525쪽
 
전두환 정권 때 3저 현상(낮은 금리, 낮은 유가, 낮은 환율)과 함께 온 경제 호황에 신문사들은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을 하면서 몰려오는 광고를 싣기에 바빴고 이에 맞춰 윤전기 도입도 서둘렀다. 전두환 정권은 신문사의 윤전기 도입 때 관세를 20%에서 4%로 크게 인하해주는 특혜도 잊지 않았다. (위의 책 525쪽)
 
언론 통폐합으로 경쟁 언론사의 숫자는 줄어든데다 특혜와 호황이 함께 오면서 언론사들은 고속 성장의 페달을 밟았다. 특히 조·중·동의 성장은 눈부셨다. 1980~1987년 사이에 조·중·동의 매출액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조선일보의 매출액은 1980년의 161억 원에서 1987년 690억 원으로 428%, 같은 기간 중앙일보는 214억 원에서 830억 원으로 387%, 동아일보는 265억 원에서 710억 원으로 267%의 고도성장을 보였다.
 
과거 언론개혁의 핵심은 조중동 독과점 해체
 

서울 종로구 서린동 동아일보사. ⓒ 권우성

 
이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이후 신문 시장에서 약탈적인 판매전까지 치르면서 조·중·동은 여론시장에서 막강한 독과점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와 이후 상당 기간 이 땅 언론개혁의 핵심 과제는 어떻게 하면 조·중·동이 장악한 여론의 독과점 카르텔을 해체하고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신문 고시, 정기적인 언론사 세무조사 등이 시도되기도 했다.
 
조·중·동 카르텔의 행적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듯, 철저하게 기득권 중심, 강자 중심, 자본 중심의 논리에 따르며, 민족의 화해·협력보다는 대립과 증오, 냉전의 논리가 압도해왔다. 그래서 기득권과 강자, 자본, 냉전의 논리를 지키려는 군부 독재와 수구 정권에 대해서는 친화적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민주개혁 세력이 집권한 정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그런 행태는 조·중·동의 세습 구조와 세습 사주가 갖는 절대 권력의 생리와 이들 자본의 속성을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조·중·동 셋이 1면 기사와 편집에서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사설과 칼럼 등에서도 같은 논리를 펴온 것도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다. 일란성 세 쌍둥이여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때로는 동아·중앙이 조선의 아류가 되어 열심히 따라가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만약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그래서 인터넷, 유튜브, 팟캐스트, SNS 같은 뉴 미디어 없는 세상이었다면, 거대 자본 없이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그래서 조·중·동과 그 아류들의 철옹성 세계는 마냥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만든 의제와 프레임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우리 공동체 삶의 토양은 지금보다 더 심하게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디지털 혁명도 그 뒤에는 빛과 그림자, 우리 공동체에 선한 작용과 나쁜 작용을 함께 가져왔다. 조·중·동에 집중되어 있는 언론권력을 분산시키면서 조·중·동 카르텔을 무너트리고, 기성 언론의 일방적 권력 행위에 타격은 입혔는데, 가짜뉴스와 악플, 증오와 저주, 절제와 품격 잃은 언어들이 난무하는 터전이 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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