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 07:37최종 업데이트 20.10.06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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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오마이뉴스 해외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경험한 케이팝 현상을 소개합니다. 또한, 2020 케이팝 열풍의 명암을 조명합니다.[편집자말]
"중간고사 끝나면 주말에 뭐 할까?"
"영화보고 싶어! <요와무시 페달>!"
"와! 나도 나도!"


큰 시험, 이를테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주말은 항상 뭔가를 한다. 중학교 3학년인 큰 딸 미우가 영화 <요와무시 페달(弱虫ペダル)>을 보러가자고 하자 중1인 둘째 딸 유나가 찬성한다. 이리 되면 무조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로드레이스 자전거 경주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500만 부 이상이 팔린 히트작이다. 소년만화가 원작인 일본영화는 솔직히 너무 뻔한 스토리라 손발이 오그라든다. 하지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함께 보라고 하고 나는 그 시간대의 다른 영화를 보면 되니까.

무사히 시험을 잘 치렀고, 일요일이 됐다. 둘 다 <요와무시 페달>을 볼 생각에 아침부터 들떴다. 미우는 어느 극장을 갈지 고른다며 태블릿을 켰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그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 다 내렸어! 9월 24일에 다 상영종료래!"

물론 상영이 끝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런데 너무 멀다. 도쿄 서쪽인 고가네이 집에서 도쿄 동쪽 끝인 유락초, 심바시까지 갈 순 없는 노릇이다. 다치가와나 후추, 멀어봤자 신주쿠까지를 상정했는데 이 반경 내에선 <요와무시 페달>을 상영하는 곳이 없다. 실망한 두 아이는 아무 영화라도 보겠다며 열심히 개봉작을 훑어보지만 연령 제한에 걸린다. 둘째가 아직 만12살이라 전 연령대 영화만 봐야 하는데 그렇다면 만화영화밖에 없다.
 

북오프 무사시사카이점에 마련된 K-POP 코너. ⓒ 박철현

 
'북오프'에서 발견한 보물

순식간에 식어버린 그들을 데리고 중고서적과 중고음악CD 등을 파는 '북오프'(Book off)를 가기로 했다. 영화 상영료만큼 원하는 것들을 사주겠다고 했다. 셋이서 자전거를 나눠 타고 5킬로 정도 페달을 밟았다. 북오프 무사시사카이 체인점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매우 익숙하다는 듯 2층 CD/DVD 코너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순간 비명소리, 이번엔 즐거운 환호성에 가까운 것이 들려왔다.

"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귀한 게 있지? 트와이스와 러브라이브의 컬래버레이션!!"
"와 진짜네. 이거 정말 잘 안 나오는 건데 어떻게 나왔지?"


유나가 들고 있는 CD는 걸그룹 트와이스의 'Candy Pop'이었다. '러브라이브'는 또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10대 소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의 교코쿠 다카히코(京極尚彦) 감독이 2018년 2월에 나온 'Candy Pop'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이었다. 트와이스 '정연'과 러브라이브 '요짱'의 광팬인 유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합이다.

신나하는 그들 앞의 단을 보니 한국 그룹들 CD 수백 장이 꽂혀 있다. 신품이라면 몰라도 중고만 파는 가게인데 따로 K-POP 이라고 표시를 했다. 사는 사람이 많다기보다 일단 재고를 항상 확보해주는, 즉 중고를 팔러오는 고객이 그만큼 있다는 말이다. 마침 주임 명찰을 달고 있는 종업원이 근처에서 책장을 정리하고 있기에 그에게 슬쩍 "K-POP 코너 언제 생긴 거냐?"고 물었다.

"아, K-POP 코너는 재작년인가, 아니 3-4년은 된 거 같은데요. 제가 여기 취직한 게 2016년이니까 그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땐 몇 개 없었고, 한 단에 50개 정도? 지금은 8단 전체를 다 쓰고 있네요. 그리고 그 옆단도 아마 K-POP 코너가 될 겁니다."

내친 김에 "찾는 사람 많냐?"고 물어 보니까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요. 지금 가장 잘 팔리는 코너 중 하나 입니다. 학생들로 한정하면 가장 잘 팔릴 걸요, 아마?"
 

K-POP 코너. 약 600여장의 중고 CD/DVD가 판매되고 있었다. ⓒ 박철현

 
유나는 앨범과 이누야샤 만화책 몇 권, 미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몇 권을 샀다. 1층 휴게실에서 잠시 쉬는 도중에 유나에게 물었다.

"아까 북오프 점원이 K-POP이 학생들한테 인기 짱이라고 하던데, 진짜 그래?"

그러자 유나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요즘엔 K-POP 모르면 바보 취급당해. 아빠, 니쥬 알지? 니쥬. 박진영이 오디션해서 만든 그룹. 멤버가 전부 일본인인데 K-POP이야. 웃기지? 깔깔깔."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일본에서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는 트와이스나 BTS 뿐만이 아니다. 블랙핑크, 마마무, 레드벨벳은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고 보이그룹에 이르러선 몬스타엑스나 스트레이키즈 같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그룹 이름도 나왔다.

한국인인 나 때문에?

그런데 미우와 유나는 내 탓도 조금은 있다고 한다. 아빠가 한국인이다 보니 당연히 질문 공세를 숱하게 받는 것도 있고, 어려서 한국어를 좀 배워둔 덕분에 아직 일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아이돌 그룹의 원석을 찾는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와이스로 가득찬 둘째 유나의 방 ⓒ 박철현

 
유나는 트와이스에만 몰두하고 싶은데, 친구들이 다른 그룹들의 노래를 들고 와 이 가사는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어쩔 수 없이(?) 찾아봐야 한다. 생각해보면 이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아내 역시 남편이 한국인인 덕분에 학부모 모임에 가면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 속에 묘사되는 갖가지 한국 남자나 한국 사회의 특징 등을 질문 받는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불시착>을 귀찮아서 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내 현빈에 빠져버리게 되고…. 아무튼 며칠 동안 내가 너무 힘들었다. 참고로 지금은 <도깨비>를 보고 있는데 현빈이 공유로 이동했을 뿐이고, 여전히 나는 힘들다.

K-POP과 한국드라마(한드), 한국음식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 열풍은 지금까지 몇 차례나 있었다. <겨울연가>가 최초였고, 보아와 동방신기가 두 번째였다. 그 후 조금 잠잠하다가 소녀시대와 카라를 기점으로 세 번째 열풍이 불다가, 트와이스와 BTS로 터졌다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 이 모든 현상을 경험한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불고 있는 속칭 제3차 한류 붐은 '한류'나 '붐' 두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일본 주류사회의 트렌드가 '혐한'이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혐한과 한류붐 사이에서

일종의 괴리감이다. 예를 들어 <문예춘추> 10월호에 실린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의 인터뷰가 그렇다. 기존의 아베 내각에 이어 스가 내각에서도 외무상 직책을 수행하게 된, 차기 총리후보로까지 꼽히고 있는 모테기씨는 이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외교방침을 고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폈다.

그런데 인터뷰 말미에 갑자기 "한국 드라마는 웬만한 건 다 봤다"며 최근에 봤다는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스>를 분석한다. 일본 국내 상황이 그야말로 격변기였던 올해 초중반에, 게다가 전후 최악의 관계라는 평을 듣고 있는 한일관계를 꼬이게 만든 당사자 중 한 명인 외무성 대신이 한국 드라마를 수십 시간이나 짬을 내 다 봤다고 하는 것에서 오는 이 괴리감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싶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포스터 ⓒ tvN

 
이는 곧 지금 펼쳐지고 있는 K-컬처 현상이 단순한 한류 붐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 현상은 또한 복합적이다. 한두 가지 콘텐츠가 반짝해 그것들이 하드캐리했던 시절과 다르다. 지금은 드라마, 음악뿐만 아니라 코스메틱(화장품), 음식, 만화, 웹툰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기반 자체가 탄탄하다.

이건 신주쿠 오쿠보 일대의 코리아타운 영향이 크다. 원래 오쿠보 일대는 가부키초(환락가)와 연결된 측면도 있어 일본인들이 잘 가지 않은 무서운 거리였고, 오쿠보 도로와 쇼쿠안 도로를 잇는 미로형의 골목길은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불법 매매춘 거리였다. 그러했던 곳이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정화되기 시작했고, 85년 이후 건너온 이른바 1세대 뉴커머(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에 건너가 정착한 대한민국 국적자)들이 식당과 화장품 전문점을 내는 등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처음만 하더라도 시류의 영향이 컸다. <겨울연가> 붐으로 어마어마하게 벌었다가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독도 방문으로 일거에 빈 점포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재특회의 헤이트스피치(혐한 발언) 때문에 가게를 접고 한국으로 아예 건너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쿠보 거리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일관계 좋아지면 좋은 거고, 나빠지면 뭐 좋진 않지. 그런데 손님은 코로나 때문에 주춤했을 뿐이지 지금은 다 돌아왔으니까 확실히 예전하고 달라."(오쿠보 한국식당 A대표)

"긴급사태선언 때 두어 달 고생했는데, 지금 뭐 일본이 코로나 무서워하나? 손님은 많아. 작년과 비교해서 90% 수준? 거의 다 돌아왔지. 혐한 그런 거 방송에서나 떠들지 그런 건 아무 영향 없고 실제론 코로나가 좀 무섭지. 그런데 요즘 젊은 일본친구들 한국 좋아하는 거 보면 마치 예전에 우리가 일본가수 해적판으로 몰래 사서 듣던 시절 생각나."(오쿠보 한국화장품 가게 B대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지만, 결국엔 이들이 지난 이십여 년 간 숱한 평지풍파 속에서도 코리아타운을 지켜왔기 때문에 일시적 붐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측면도 있다. '거기에 가면 한국을 느낄 수 있다'가 주는 이미지의 위력은 상상보다 훨씬 세다.

혐한 압도... 문화로 정착한 K-컬처

마지막으로 10대들의 절대적인 지지다. 그리고 이 지지를 이끌어낸, 유튜브로 대표되는 플랫폼의 비약적 발달이 K-컬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K-POP은 한 마디로 '멋지다(かっこいい)'의 결정체다. 전 세대를 통틀어 아마 가장 '멋짐'을 갈구하는 세대의 심장을 쏴버린 셈이다.

여자 아이들이 여성 아이돌 그룹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적인 존재감, 당당함, 걸크러시적 요소는 물론 귀여움, 세련됨, 아름다움 등등의 소녀적 갈망도 동시에 체험케 한다. 유나가 트와이스 정연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그의 당당함과 다른 멤버들을 포용하고 챙기는 자세에 있다. 유나는 나아가 자기도 정연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정연을 아무리 좋아해도 찾아서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집에 돌아와 정해진 시간에 태블릿을 켜고 유튜브에 접속만 하면 매일같이 다른 정연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기술적 환경의 축복 속에서 K-POP의 당당함에 매료된 10대 아이들에게 공중파 TV 안의,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름살 가득한 노년의 코멘테이터(평론가)가 내뱉는 혐한 발언이 과연 어떻게 다가가겠는가.
 

이들이 어른이 되면 과연 한국과 일본은 어떤 사이가 되어 있을까. ⓒ 박철현

 
'북오프'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근처 공원에 들렀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유나가 웃으며 말한다.

"트와이스 '캔디팝'만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입수했어. 빨리 가서 보고 싶어. <요와무시 페달> 극장에서 내려서 천만다행이야. 깔깔깔."

이들이 주축이 될 미래의 일본사회는 과연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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