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3 08:15최종 업데이트 20.09.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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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오마이뉴스 해외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경험한 케이팝 현상을 소개합니다. 또한, 2020 케이팝 열풍의 명암을 조명합니다.[편집자말]
 

BTS 싱가포르 콘서트를 보려고 국립경기장 앞을 가득 메운 인파 ⓒ 이봉렬

 
싱가포르의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아재 인증부터 해야겠습니다. 전 한국의 아이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방탄소년단과 엑소의 멤버들을 모아 놓고 팀별로 나누라고 하면 못 나눕니다. 레드벨벳과 블랙핑크는 두 그룹의 사진을 같이 주고 팀명을 맞히라고 해도 못 맞힙니다. 아이돌과 관련해서는 딱 그만큼의 구세대입니다.

그래도 한국 아이돌의 이름은 자주 듣고 있습니다. 다음은 최근에 나온 싱가포르 대표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rs)의 기사 제목 몇 개입니다.

- 케이팝 거인 BTS가 그래미를 노리고 있다
- 케이팝 가수 현아의 싱글, 실신 재발로 인해 연기
- 작년 말의 무대 사고를 극복하고 귀환하는 레드벨벳의 웬디로 인해 케이팝 팬들이 흥분하고 있다

이처럼 싱가포르 언론들이 한국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전 아이돌의 이름을 그들의 노래가 아니라 싱가포르 뉴스를 통해 만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유명한 방탄소년단(이하 BTS)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도 2018년 BTS의 싱가포르 콘서트 티켓 5만 6천 장이 발매 4시간 만에 매진됐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58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 국가이기 때문에 공연장인 국립경기장을 관중으로 모두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인근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표를 구하려고 하는 바람에 현장 판매를 하는 곳에 발매 5일 전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싱가포르 경찰 "BTS 암표 사지 마라"
 

싱가포르 경찰이 페이스북에 방탄소년단 콘서트 암표 거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 경찰 페이스북 갈무리

 
그렇게 매진된 표는 중고장터나 SNS를 통해 암표로 거래가 됐는데 30만 원 정도 하는 표가 천만 원이 넘게 거래가 되면서 사회 문제가 됐습니다. 급기야 싱가포르 경찰은 암표를 거래하지 말고 공식 판매소만 이용하라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BTS 외에도 2019년에는 엑소, 아이유 등 많은 한국 가수들이 싱가포르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고, 2019년 11월에는 슈퍼주니어, 여자친구, NCT 127, 모모랜드 등 한국 아이돌만으로 대규모 케이팝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취소가 되기는 했지만 올해 소녀시대의 태연, 위너 등이 싱가포르에서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을 정도로 싱가포르에서 케이팝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싱가포르 지하철역에 걸린 방탄소년단 사진. 팬클럽인 아미가 내 건 광고입니다. ⓒ 이봉렬

 
뉴스를 통해서 말고 BTS의 사진을 본 것은 지난해 싱가포르 지하철역에 게시된 광고에서였는데, 전 처음에 싱가포르에 알리려고 BTS가 만든 광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Love From Singapore Army"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싱가포르 '육군'(Army)이 왜 BTS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딸이 아미는 육군이 아니라 BTS의 팬클럽 이름이라는 걸 알려주기까지는 "방탄"조끼와 무슨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국인 아재인 저만 모르고 있었을 뿐 싱가포르의 젊은이들이 BTS뿐만 아니라 케이팝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겨 듣는 건 꽤 오래된 일입니다. 15년 전에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거리에 나가면 상점이나 카페에서 주로 미국과 영국의 팝송 아니면 중국노래가 주로 흘러나왔고, 일본의 영향이 큰 쇼핑몰에서는 일본 노래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류 붐이 일기 시작한 2010년 이후부터는 케이팝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택시를 탈 때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케이팝이 흘러나오는 건 이제 예사로 있는 일입니다. 지점이 열 개가 넘는 한 대형 댄스학원 체인의 경우 2017년 이후로 케이팝에 맞춘 댄스만 하는 걸로 학원의 콘셉트를 바꿀 정도로 케이팝에 대한 관심은 뜨겁습니다.

상위 10곡 중 4곡이 케이팝
 

공터에 모여 단체로 춤을 추는 사람들. 여기서도 케이팝을 제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에서는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학원 강사가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댄스를 가르치기도 하고, 댄스 동호회에서 회원들끼리 모여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 중 둘에 하나는 케이팝을 틀어 놓고 춤을 춥니다. 퇴근길에 케이팝에 맞춰 수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흥이 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가 집계한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이 듣는 노래 50곡. 10위 안에 4곡이 케이팝입니다. ⓒ 스포티파이 순위표 화면 갈무리

 
케이팝의 인기는 차트로도 확인이 됩니다. 세계적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에서는 실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노래 순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의 순위를 함께 집계 합니다. 9월 12일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노래는 카디 비(Cardi B)의 'WAP'이지만,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1위입니다.

2위는 '아이스크림', 5위는 '하우 유 라이크 댓'으로 모두 블랙핑크의 노래입니다. ITZY(있지)의 '낫 샤이' 가 10위에 올라와 있어서 10위 안에만 케이팝이 4곡이나 됩니다. 글로벌 10위 안에 케이팝이 2곡인 것과 비교해도 싱가포르에서 케이팝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의회에 소환된 BTS와 블랙핑크'라는 제목의 기사. 의원들이 한국의 케이팝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즈 화면 갈무리

 
케이팝은 최근 싱가포르 의회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9월 3일 싱가포르 의회의 한 의원이 대정부 질의 중에 BTS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BTS가 지난 6월 온라인 콘서트를 개최하여 107개 국가 및 지역에서 75만 6천 명의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한 사실을 언급하며, 싱가포르에서도 그와 같은 혁신적인 방법이 나올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발언을 이어간 다른 의원은 자신이 BTS보다는 블랙핑크의 팬이라는 걸 굳이 밝히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아이돌의 팬이라고 하는 게 싱가포르에서는 이른바 '펀쿨섹'한 정치인 소리를 듣는 방법입니다.

싱가포르는 경제 규모와 비교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문화콘텐츠가 빈약합니다. 그래서 외국의 문화콘텐츠에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 주는데, 지금 싱가포르의 젊은 세대들은 케이팝에 푹 빠져 있고, 싱가포르의 정치권에서는 케이팝을 성공적인 문화산업의 사례로 인식하고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대장금 열풍 이후 싱가포르에서는 한국 하면 음식이 떠오르고, 그 이후 싱가포르에 한국 음식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케이팝 때문에 한국 하면 뭔가 세련된 듯한 느낌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안에서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환영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케이팝, 이 정도면 어느 외교관보다 더 큰 일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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