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 12:28최종 업데이트 20.10.1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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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시내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놀란 적이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쇼핑몰에서도, 공원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던 그 당시엔 싱가포르도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처럼 전쟁으로 인해 장애인이 많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자주 본 기억이 없었거든요.

싱가포르의 장애인 비율은 대략 3% 수준입니다. 한국이 대략 5% 수준이니까 한국보다 많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싱가포르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한국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에 밖에서 휠체어 탄 사람을 자주 볼 수 없었던 겁니다.

도시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기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불편이 없다고 하는지 저와 함께 싱가포르 시내를 돌아 다니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변두리의 공공아파트지만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용 휠체어가 들어 가는 규격이고, 큰 길까지는 경사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 이봉렬

 
저는 시 외곽에 있는 공공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휠체어가 들어 갈 수 있는 규격으로 만들어졌다는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2층이라고 엘리베이터가 안 서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아파트 경계를 넘어 가는 길도 계단이 아닌 경사로라서 휠체어 사용에 문제가 없습니다.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는 장애인과 노인. 거리에서 휠체어를 보는 건 아주 흔한 일입니다. ⓒ 이봉렬

 
이건 당연한 말이지만 횡단보도로 들어 갈 때 턱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휠체어를 타고 건너 갈 수 있습니다. 대신 횡단보도 시작하는 곳과 끝나는 곳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설치 되어 있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발급받은 카드를 대면 녹색 불이 켜져 있는 시간이 더 길어 집니다. ⓒ 이봉렬

 
걷는 속도가 느린 노인의 경우 횡단보도를 다 건너기도 전에 빨간불로 바뀌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처지에 따라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센서가 횡단보도 신호등마다 설치되어 있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은 별도의 카드를 발급 받는데 그 카드를 센서에 대면 녹색불이 켜져 있는 시간이 두 배로 늘어 납니다. 이런 꼼꼼한 배려, 배우고 싶습니다.
 

개찰구 중 하나는 반드시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 이봉렬

 
이제 지하철을 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하철 개찰구 중 하나는 반드시 휠체어가 지나 갈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휠체어도, 유모차도, 큰 짐도 다 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이봉렬

 
역에 도착하면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지하철 타는 곳까지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이동합니다. 계단 옆에 마련된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별도로 사람을 부르는 경우는 여기에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승강장 한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는 휠체어가 서 있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버스가 저상버스이고 장애인용 공간이 따로 있어서 휠체어를 탄 채로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 이봉렬

 
지하철에서 내려 이번에는 버스로 갈아 타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버스가 저상버스이고 휠체어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채로 버스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정류장에 휠체어가 보이면 버스 기사가 휠체어를 탄 승객을 맨 먼저 태운 후 다른 승객을 태웁니다.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휠체어 자리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이봉렬

 
버스에서 내려 동네 마트에 들어 가 봤습니다. 진열대와 진열대 사이는 쇼핑카트가 지나 다녀야 할 테니까 당연히 휠체어도 지나다닐 수 있습니다. 계산대 역시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계산을 하고 나가는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커피숍에서도 휠체어가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 이봉렬

 
쇼핑을 마치고 근처 커피숍에 들어 갑니다. 휠체어를 탄 손님이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커피숍 안에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는 다른 손님도 보입니다. 별도로 자리를 만들지 않더라도 커피숍에 들어 가고 거기서 쉬다가 나오는데 휠체어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장애인도 운동이 필요합니다. 아니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네요. 싱가포르의 헬스장에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 이봉렬

 
돌아오는 길에 정부에서 만든 공공 헬스장에 한번 가 봤습니다. 헬스장은 2층인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입구는 지하철 개찰구처럼 되어 있는데 회원 카드를 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구조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헬스장 안에는 휠체어를 탄 채 사용할 수 있는 헬스기구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수영장이 내려다 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이 정도면 싱가포르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일상을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나 어린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휠체어를 타고 창덕궁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SK텔레콤의 광고 중 한 장면 ⓒ SK텔레콤 광고 화면 갈무리

 
싱가포르의 장애인 이야기를 꺼낸 건 SK 텔레콤이 최근 공개한 광고 하나 때문입니다. "창덕 Arirang" 이름의 이 광고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장온유군이 나옵니다.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에 놀러간 온유군은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려서 창덕궁 내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친구들이 힘을 모아 휠체어를 옮기려 하지만 쉽지가 않자 온유군은 쓸쓸한 표정으로 "난 안 봐도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이때 SK텔레콤은 5G와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한 "가이드앱"을 소개합니다. 창덕궁에 들어 가지 않아도 들어간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겁니다. SK텔레콤은 "기술은 단 한 명을 위해 오늘도 더 좋은 답을 찾아"간다고 말합니다. 가이드앱으로 창덕궁을 둘러본 아이들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광고는 끝납니다.

그런데 한국의 수많은 온유군에게 필요한 게 과연 가이드앱일까요? 온유군이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에 들어가는 게 "더 좋은 답" 아닐까요? 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휠체어가 넘지 못한 그 턱에 경사판을 설치하고, 올라가지 못할 높은 계단 옆에 이동식 리프트를 설치해서 온유군도 창덕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장애인들의 물리적 접근성을 높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쯤에서 화면을 맨 처음으로 올려서 싱가포르의 사진만 다시 보세요. 버스를 탈 때 운전기사가 경사로를 만들어 보조해주는 걸 제외하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동하고, 쇼핑하고, 식사하고, 운동하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아직 이 수준이 안 된다면 그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가 부족해서입니다.
 

싱가포르 길거리의 흔한 벤치 모습. 벤치 옆에 장애인용 휠체어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어디든 장애인을 위한 공간과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 이봉렬

 
장애인이 바라는 건 간단합니다. 기술의 힘을 빌려 장애인 개개인이 장애를 "극복"할 게 아니라, 이 사회 모든 곳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높여서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닌 사회, 거리에서 공원에서 회사에서 장애인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 구별없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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