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8 08:09최종 업데이트 20.08.1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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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낭독하는 배달노동자 12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3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기자회견에서 라이더유니온 김용훈 조합원이 전태일 평전을 낭독하고 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는 열사 50주기인 11월 13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을 릴레이로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30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노조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3일 안에 노조설립필증을 교부하는 게 맞지만, 필증 대신 고용노동부의 전화를 받았다. 관할부서인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서 조사받으러 출석하라고 했다. 경찰조사나 검찰조사도 아니고, 노조설립신고 했다고 조사를 받으라는 건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배달노동자와 비슷한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지난 7월 17일 노조설립필증을 받는 데는 1000일이 걸렸다.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1항에는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제4조 라 항목에는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근로자가 아닌 사장이 노동조합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쟁점은 배달노동자, 방과 후 강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가 이 법에서 정한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다. 덕분에 폭우와 폭염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배달노동자가 사장님인지 일하는 사람인지를 국가가 조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조합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8월 13일 쿠팡이츠, 배민라이더스, 배민커넥트, 맥도날드, 동네배달대행사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일하는 8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고용노동부에 출두했다. 하필 이날 모인 두 명의 조합원의 왼쪽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긴 장마기간 빗길에 젖은 도로위에서 배달하다 넘어져 다친 조합원들이다. 우리의 존재가 노조가 필요한 노동자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4시간에 걸친 근로감독관의 조사

3시를 조금 넘어서 시작된 근로감독관의 질문과 조합원들의 답변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플랫폼노동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값진 대화였다. 배달 라이더가 자신들이 받는 배달수수료를 결정할 수 있습니까? 제3자에게 본인들이 하는 배달 일을 위탁할 수 있습니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배달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사장이라면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하면서 배달료를 결정하고, 근로자를 고용해서 배달업무를 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조합원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근로감독관에게 되물었다. '아니 그게 가능하다 생각하십니까?'

업무형태를 묻는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배달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나요?', '출퇴근은 자유롭나요?', '계약의 체결과 해지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배달구역은 정해져있나요?'. 배달 일을 시작할 때 라이더들은 위치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한다. GPS를 켜지 않으면 앱에 접속자체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동선은 모두 감시당하며,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 어디갔냐는 전화가 온다.

쿠팡이츠는 알고리즘이 배정한 배달 일을 반복적으로 거절하면, 앱 접속이 막힌다. 고객의 평점이 낮아도 앱접속이 막힌다. 배민라이더스는 알고리즘이 배정한 배달을 거절하면 이후 배차가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동네배달대행사에서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퇴근하거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쉬면 전화와 카톡방에서 욕을 먹는다. 사장에게 찍히면 배달 콜이 1~2초 정도 늦게 보일 수도 있고, 배달 콜이 안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조사하던 근로감독관도 놀라워했고, 답변하는 우리도 새삼 노조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에 이런 사장이 어디있겠는가.

이런 질문과 답변이 무려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조합원들은 고용노동부가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배달 산업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가 이미 실태파악을 하고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자신이 일하면서 당했던 갑질들을 근로감독관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보다 못한 내가 이분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아니시니 해결하기 힘든 일이라 중재했지만, 노동자가 국가에 거는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못내 아쉬웠다. 조사는 퇴근시간이 훌쩍 넘긴 저녁 7시 30분쯤 끝났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녹초가 됐다. 배고픔에 곧장 식당으로 달려갔는데, 생각해보면 근로감독관은 무슨 죄일까 싶었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를 조사해야

근로감독관은 사업주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면 달라고 했다. 조합원들은 황당해하면서, 고용노동부가 기업에 연락해서 알아내야지 왜 우리보고 달라고 하냐 되물었다. 사업주들은 협조를 잘 안 하기도 하고, ARS로 하면 연결도 잘 안 된다는 답변을 했다. 실무자의 고충이 이해가 가면서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쉽게 오라 가라하고, 사업주들은 조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고용노동부로부터 들어야 하는가.

4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사업주들이다. 라이더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면 안 된다고 믿는 기업이 있다면, 그들이 라이더가 근로자가 아닌 사장이라고 입증해야 한다. 왜 우리가 생계를 포기하면서 긴 시간 산업구조를 설명해주고,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가?

이는 노동자들의 떼쓰기가 아니라 헌법이자 대통령의 공약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노동3권이 적혀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신고만 하면 된다. 이를 고용노동부가 조사하고 심사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다.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국제적 약속의 문제이기도 하다. EU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서 대한민국이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을 보장하는 ILO핵심협약비준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왜 무역협정에서 노조문제가 쟁점이 됐을까? 기업 간의 경쟁에서 EU 기업들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비롯한 일하는 사람들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고 한국 기업은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면, EU 기업입장에서는 손해다. EU의 입장에서는 한국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적인 상식을 따르지 않는 후진적이고 반칙을 저지르는 국가라는 의미다. 이는 국제적 망신이다.
 
낡은 노동법 바꾸려면 노조 할 권리부터

요즘,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 N잡러 시대, 플랫폼노동 등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낡은 법과 제도를 고치자고 한다. 추상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혁신을 외치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여기 뜯어고쳐야 할 낡은 노동법이 있다. 노조법 2조 개정과 ILO핵심협약 비준에 함께 힘을 보태자. 참고로 2020년에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ILO핵심협약 87호와 98호는 각각 1948년, 1949년에 ILO에서 체결한 내용이다. 우리의 노동은 70년 동안 제자리다. 조합원들은 조사 내내 항의의 표시로 '노동3권 보장하라', 'ILO핵심협약 비준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헌법과 국제적인 상식을 굳이 요구해야 하는 시대를 종식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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