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8 07:59최종 업데이트 20.08.1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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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형사고소 60만여 건, 민·형사 소송 6백만여 건. 대한민국에서 송사는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최근엔 정치, 경제, 문화적 주요 이슈들도 법정에서 판가름 나기 일쑤입니다. 작게는 수십만 원의 절도부터, 크게는 수천억 원대의 횡령, 대통령 탄핵까지 법적 분쟁이 되는 세상입니다.

현직 법원공무원이자 법조칼럼니스트 김용국이 자신의 일터 법원에서 겪은 일을 직접 들려드립니다. 그는 20년 넘게 민사, 형사, 이혼 법정에서 수많은 당사자들과 변호사들을 만났고, 판사들의 고뇌를 직접 목격하고 법정에서 조서를 기록해 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생생한 재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법원의 속살을 보여드립니다.[편집자말]

2017년 9월 1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어느 대법원장도, 어느 대법관도 인정하지 않았던 전관예우를 현실적으로 제가 인정하고 대처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 ytn 화면 캡처

 
전관예우. 역대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중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던 법조계의 병폐.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 전관예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비단 법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건의 최종 판단인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로서는 공정성이 의심되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검찰이나 변호사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거칠게 얘기해서, 수사기관이 무고한 사람을 잘못 기소했거나, 변호사가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혹은 청탁이나 외압이 있더라도, 판사가 판결로 제대로 걸러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 법원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최초로 '전관예우' 인정
 
신임 대법원장의 선언에 대해 법원 안에서는 내색은 안 했지만 달가워 할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 그렇다고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법원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마당에, 대놓고 반발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김 대법원장은 전관예우 근절방안을 시급한 사법개혁과제로 판단하고 후속작업을 지시했다. 대법원 산하 '국민과 함께 하는 사법발전위원회'는 2018년 5월 15일 전관예우 실태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의함으로써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그 일환으로 위원회는 광범위한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일반 국민뿐 아니라 판검사 등 법조계 종사자까지 모두 포함했으며, 대상자들에게 전관예우의 존재, 심각성, 원인 등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설문결과는 의외였다. 예상과 달리, 일반인들보다 법조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전관예우는 있다'고 답변한 비율이 더 높았다. 직종마다 편차는 있었다. 법조계 종사자라고 해도 법원, 검찰, 법률사무소에 따라 답변이 달랐고, 같은 기관이라도 판검사와 공무원들도 차이가 있었다. 그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한다.
 
(참고로, 이 설문조사에는 일반 성인 남녀 1014명, 판사 271명, 법원 직원 292명, 검사 63명, 검찰 직원 170명, 변호사 438명, 사무원 153명을 포함, 총 2439명이 응하였다. 일반국민의 경우 신뢰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08% 포인트, 법조계 종사자의 경우 신뢰수준 95%에서 표본오차 ±2.60% 포인트이다. 자세한 결과는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관예우 있느냐"는 설문에 법조인들은?
 
'전관예우'란 말 그대로 풀이하면 전직 관리에 대한 예우이다. 한 직장에 오래 몸 담고 퇴직한 사람을 후배들이 선배로서 존중하고 예우해주는 일이라면 그게 무슨 잘못인가. 문제는, 퇴직자가 나가서도 현직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혜택를 받는 관행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관들이 수사단계나 재판에서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특혜, 아니 불법이다.
 
대법원은 설문을 시작하면서 전관예우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법절차(경찰,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에서 판사, 검사, 헌법재판관, 경찰관 등이 퇴직하여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변호사(전관변호사)로 선임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사나 재판의 결과에 있어서 부당한 특혜를 받거나, 절차상의 혜택을 받는 현상.
 
쉽게 말해서 재판, 수사의 '결과' 뿐 아니라 '절차'의 혜택도 전관예우에 포함됨을 전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먼저, 전관예우가 실제 존재하는지 물었다. 일반국민과 법조계 종사자 절반 정도가 "전관예우가 있다"고 답변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국민(41.9%)보다 법조계 종사자(55.1%)가 전관예우 존재를 인정한 비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또한 일반국민의 64.0%, 법조계 종사자 69.7%가 전관예우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반대로, 전관예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일반국민 33.9%, 법조계 종사자 25.4%로 나타났다.
  

 
법조계 종사자 소속별로 보면, 변호사 업계(변호사와 사무원)는 무려 70% 이상이 전관예우를 인정했고, 그 다음이 검찰, 법원 순이었다. 직업별로 세분화해 보면 또 다른 유의미한 결과가 보인다. '전관예우가 있다'는 답변은 판사(23.2%) < 법원직원(37.7%) < 검사(42.9%) < 검찰직원(66.5%) < 변호사(75.8%) < 법률사무원(79.1%) 순으로 높았다. 전관예우가 '없다'는 답변은 꼭 그 역순이었는데, 판사(54.2%)들만이 유일하게 절반 넘게 전관예우를 부정했다.
 
판사는 "없다", 변호사는 "있다" 압도적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반 국민 10명 중 4명, 법조계 종사자 10명 중 5명 이상이 '전관예우가 있다'고 답변했고 과반이 전관예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판사는 10명 중 2명, 검사는 10명 중 4명만이 전관예우의 실체를 인정, 평균을 훨씬 밑돌았다. 심지어 판사들은 절반 이상이 '전관예우가 없다'고 답변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판사와 검사는 실제로 거의 전관예우를 하지 않는데,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이나 일반 국민이 과도하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설문결과를 조금만 더 보자.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한 근거에 관해, 일반국민은 '뉴스에서 보았다'(41.2%), '영화, 드라마, 풍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39.3%) 등의 순으로 답변을 했다. 반면 법조계 종사자의 경우 '실제 사건 처리과정에서 경험해 보았다'(51.6%), '주변에서 경험한 사실을 직접 들었다'(39.2%) 순으로 응답하여 직·간접 경험을 통해 전관예우 존재를 인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향후 전망에 대한 질문에는 일반국민과 법조계 모두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전관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들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는 응답이 각각 40.6%, 50.0%로 가장 높았다.
 
설문결과, 일반국민과 법조계 종사자 모두 전관변호사 혹은 연고관계 변호사를 선임할 의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이용하여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과 '최소한 더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란 답변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 중 판사와 검사의 답변은 결이 조금 달랐다. 판사는 '(전관이) 실력이 좋으므로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57.6%), 검사는 '최소한 절차상 편의를 배려해줄 것이라는 생각'(39.7%)이라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전관 변호사 수임제한, 처벌강화 등 대책 나왔지만
 
이러한 내용은 2019년 6월 법원 소속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주최한 <사법신뢰의 회복방안>이라는 심포지엄에서 발표되었다. 발표자로 나선 김제완(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관예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① 전관변호사의 배출 금지 또는 억제 ② 정보불균형 해소를 위한 변호사 중개제도의 도입 ③ 국민참여재판 등 국민의 재판 관여 확대를 제시했다. 단기적인 안으로는 ① 법조비리에 대한 엄중한 징계·처벌과 사전 감시·억제 ② 수임 내역 공개 ③ 수임 제한 확대 ④ 부당변론 금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날 또 다른 발표자였던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차성안 판사는 5단계 규제형 대책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전관예우 규제 강화 방안으로 ① 개업 제한 등 사전 봉쇄 ② 소송대리 제한 ③ 기피·회피·재배당의 활성화 ④ 비정상적 변론활동에 대한 신고의무 부과 ⑤ 정보제공(수임·사건처리 내역의 공개 등)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도 전관예우 근절방안에 관하여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건의하였다. ▲ 재판부 및 소송대리인의 연고관계 진술의무 도입 ▲ 정원 외 원로법관 제도 도입 ▲ 수임제한 사건의 범위와 수임제한 기간, 수임자료 제출 범위 확대 ▲ 수임제한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과징금 부과 도입 ▲ 전관예우비리 신고센터 및 법조브로커 신고센터 각 설치, 운영 ▲ 법조윤리협의회의 독립성 강화 등이 그것이다.
 
공통적인 의견은, 전관변호사의 개업과 수임을 최대한 제한하고, 처벌과 신고의무를 강화하면 전관예우가 촘촘한 그물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의견들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정비만으로 전관예우가 사라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좀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뒷거래'는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재의 판검사가 미래의 유망한 변호사로 인식되는 현행 사법체계 아래서 법조계가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전관예우 실체 인정에서 출발하자
 
그나마 현재의 대법원이 해결의지라도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까. 대법원의 설문을 통해 우리는 의미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인은 물론, 판검사를 포함하여 수사나 재판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조차 전관예우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재판의 최종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전관예우를 부정하는 비율이 다른 직종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반면 재판을 실제 경험한 변호사는 인정하는 비율이 절대적이다. 재판을 기준으로 보면 판사는 갑이고, 변호사는 을이다. 갑과 을의 답변이 상반된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지어는 갑의 식구들(법원직원)조차 전관예우가 '있다'는 답변이 '없다'는 것보다 높은데. 그것이 판사들의 진심일까? 익명으로 쓴 어느 판사의 글을 보자.  
 
전에는 전관예우가 뭐 얼마나 있겠어, 있어봤자 결론을 바꾸겠어? 세간의 오해 아니겠어?라는 정도만 치부했는데요. 항상 제가 빠지는 함정이지요. 남들(다른 판사들 - 기자주)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중략) 그리고 새로이 느끼는 것은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많은 판사님들이 법원에 계시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예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장래의 수혜자들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각의 단초는 법원을 나가신 분이 돈을 왜 그렇게 많이 벌까? 왜 형사사건에 쏠릴까? 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개업하고 1, 2년 안에 특히나… 전관은 왜 돈을 많이 벌까요.

객관성의 외피를 쓴 설문조사 결과 말고, 판사들의 속내, 전관예우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생각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거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듯싶다.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 <생활법률상식사전>(위즈덤하우스) <판결vs판결>(개마고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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