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08:01최종 업데이트 20.08.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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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놀렌도르프플라츠역. 동성애자들의 성지로 꼽히는 이곳에는 늘 무지개 깃발이 나부낀다 ⓒ 이유진

 
베를린 놀렌도르프 지역은 게이구역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열리는 게이축제 CSD는 독일을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독일 주요 정당과 종교, 시민단체는 물론 독일 대기업 모두 무지개 색 로고를 휘날리며 축제에 참가한다.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는 이곳에서 최근 한 한식당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식당 이름은 '익투스(IXTHYS)'. 그리스어로 물고기라는 뜻으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여겨진 단어라고 한다. 이름뿐만이 아니다. 가게 내부 전체를 성경 문구로 덮어놓았다.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꽤 유명해진 식당이다.   
 

한식당 익투스 내부. 성경 문구가 빼곡히 적혀있다 ⓒ 이유진

 
올해 초, 이곳 창가에 새로운 성경 문구가 걸렸다. 
 
"Und einem Mann sollst Du nicht beiliegen, wie man einem Weib beiliegt; Greuel ist dies."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 3. Mose 18,22)

기독교계에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근거로 삼는 부분이다. 이곳에 거주하거나 오가는 많은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에? 독일의 대표적인 동성애자 구역에? 독일 레즈비언게이협회(LSVD)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역사무소에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에도 보도된 이후에는 민원이 더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식당 창가에 걸린 동성애 혐오 문구. 창가에 보란듯이 걸려 있어서 더욱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이유진

  
논란의 중심에 선 한식당

LSVD는 대응에 나섰다. 지난 6월 말 식당에 편지를 보내 "우리 협회의 많은 이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정체성과 믿음 간의 모순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맥락을 벗어난 개별 성경 문구가 성정체성과 파트너십이라는 주제를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인식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서 창가에 걸린 혐오 메시지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7월 24일 열린 CSD 예배에 초대했다. 식당은 반응하지 않았다. 성경 문구는 여전히 창가에 걸려있다.

식당 주인 박영애씨는 단호했다. 이런 논란을 다 예상했다고 한다. 박씨는 7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저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때까지 반감을 줄까봐 그 문구를 걸어놓지 못했는데, 주님의 마음을 듣고 욕먹을 것을 생각하고 걸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성애자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천국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를린 지역 언론 < B.Z >는 지난 7월 10일 해당 소식을 전하며 "성경 전문가들은 역사적인 맥락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춘 여성을 화형에 처하거나 신을 모독하는 자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성경에 나와 있더라도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LSVD의 사무소에서 만난 요르그 슈타이네어트(Jörg Steinert) 대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인내를 가지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슈타이네어트 대표와의 일문일답.    
 

독일 레즈비언게이협회(LSVD) 베를린 브란덴부르크지부장 요르그 슈타이네어트(Jorg Steinert) ⓒ 이유진

 
- 관련 문구에 대해서 언제 인지했나.
"이전에는 없었는데 올 초부터 문구가 걸린 것으로 안다. 식당 내부가 아닌 창가에 보란 듯이 걸렸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 자극했다. 이곳은 동성애자들도 많이 살고 있고, 신앙을 가진 이들도 많다. 문구를 보는 친구들이 공격 받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에게 많이 이야기를 했다."

- 연락한 이들은 얼마나 되나. 어떤 요청을 했나.
"처음에는 10여 명 정도가 연락이 왔었는데, 기사가 나간 이후로는 더 많이 연락이 온다.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고소를 하자, 다 같이 가서 데모를 하자, 이런 격한 의견도 있었다."

- 공식적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예배에도 초대했다. 이유는?
"성경 문구이고 (한식당 사장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CSD 예배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난 7월 열린 예배의 주제는 '사랑은 영혼을 이롭게 한다!'였다. 적절한 테마라고 생각했다. 식당 반응은 없었다."

- 문구를 걸어놓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렇다. 만약 식당이 동성애자에게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명백한 불법이다. 일반평등대우법(AGG)에 따라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식당이 서비스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해당 문구를 모욕적으로 느낀다면 고소를 할 수도 있다. 고소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고소를 한다고 해도 성경 문구를 그대로 걸어놓은 것뿐이기에 법적인 해결은 어려움이 있다. 식당 주인도 그 경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LSVD "기다리겠다"

- 이런 사례가 또 있었나?
"근처 한 교회에서 동성애 '치료'에 관련한 세미나를 연다고 홍보를 했다.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동성애 전환치료는 불법이 됐다. 명백한 불법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항의했고, 행사가 취소됐다."
 
- 그 외 어떤 일을 또 하는가.
"베를린에서도 여전히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심하다. 매일 모욕당하고, 폭행당한다. 그런 사안에 대응하는 게 더 큰 일이다. 강제결혼 문제도 심각한데, 가족들로부터 도망친 이들을 돕는다. 대부분 종교적인 가정에서 발생한다."

- 한국은 보수 기독교에서 동성애 혐오가 심하다. 독일에도 동성애 혐오가 퍼져있는 특정한 그룹이 있는가.
"매우 다양하다. 같은 기독교라도 지역마다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 남쪽 지역은 보수 가톨릭이 강하고, 동쪽 기독교는 매우 보수적인 편이다. 다행히 베를린은 기독교가 매우 자유주의적(liberal)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종교단체도 계속 많아지고 있다. 무슬림계와도 대화를 시도했는데 지금은 포기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 한식당 건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하나.
"우리는 자극적이거나 시끄럽게 대응하고 싶지 않다. 식당을 홍보해줄 필요는 없다.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기다린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문구를 내리라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바꿔준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일 레즈비엔게이협회 베를린-브란덴부르크지부 사무실. ⓒ 이유진

 
독일 레즈비언게이협회는 130여 개 지부를 둔 독일 최대 규모의 단체다. 30년 전 구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작은 조직으로 시작했다. 슈타이네어트씨는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일한다. 베를린 CSD 예배도 아주 작게 시작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면서 "투쟁적으로 운동하는 '경쟁' 단체가 있었는데 결국 해체됐다. 우리 단체가 독일 최대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내 전략이 유효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규모의 게이축제가 열리는 독일에서도 동성애자들의 권리 투쟁은 끈질기고 묵묵하게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2006년 8월 일반평등대우법(AGG)을 제정해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했다. 이후에도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루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렸다. 지난 5월에는 미성년자의 소위 '동성애 전환치료'가 금지됐고, 6월에는 베를린시가 차별금지법(LADG)을 제정, 공공기관의 차별 금지를 명시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보호 장치에도 혐오는 끊이지 않는다.

한국 기독교 사회에서 보던 동성애 혐오를 독일 베를린, 심지어 자유와 다양성의 상징인 이 지역에서 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식당의 단호한 입장을 들어보면 협회의 요구가 관철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협회도 이미 알고 있다. 혐오를 맞닥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터. 차분하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는 협회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독일 언론에 보도된 이후 한식당에도 익명으로 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봉투에는 혐오스러운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혐오가 혐오를 낳은 셈이다.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혐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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