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 17:08최종 업데이트 20.08.0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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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MBC사생결담76회 출연했을 때의 모습 ⓒ 안동MBC


2020년 3월, 경북 안동의 게스트하우스, 링커파티하우스(아래 '링커')가 망했다. 세계적인 여행 숙박 플랫폼 '부킹닷컴'에서 3년 연속 평점 9.2점을 받았던 우수 게스트하우스도 코로나19 앞에서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겐 얼마 되지 않을 비용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짓누르는 건물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2015년, 경북 안동의 정체 모를 청년들 몇몇이 안동역 앞 횡단보도까지 140m 거리에 있던 도심의 허름한 건물을 직접 개조하고 꾸몄다. 청년들의 노동으로 2016년 2월에 재탄생한 링커는 게스트하우스이면서, 주거·놀이·노동·학습의 자립을 꿈꿨던 청년자립공동체 바름협동조합의 아지트였다. 지역에서 재미나게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했던 청춘들은 링커를 드나들며, 이름 그대로 '연결(link)'됐다. 세대를 넘어 지역의 많은 선배들도 응원해줬고, 전국 곳곳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양한 이들과 풍성한 교류 활동을 벌였다.

2015년부터 노동자 협동조합을 내걸며 생계를 함께했던 바름의 실험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를 겪으며 현재 느슨한 공동체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바름협동조합에서 2016년 동네에서 공부하자는 '동네대학'을 담당했고, 링커 1층은 동네대학 배움터였다. '정치야 놀자'와 '사회적 경제' 두 가지 주제를 함께 공부한 청년들은, 유쾌하게 사회 불만과 애증의 지역사회 이야기를 털어놨다.

꿈을 가로막는 '먹고사니즘'

한편, 활동을 하면서 바름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은 '생계' 걱정이었다. 사익을 추구했지만 활동의 공익적인 성격으로, 임금 노동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사회불만세력(?)들의 협동조합은 개인이 하고 싶은 일과 공동의 가치를 실천할 '돈'의 문제를 매번 마주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 쉽게 말해서 돈이 되지 않는 일들에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지역사회 분위기 속에서 각자도생하면서 청년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사회를 바꾸는 활동을 병행하긴 쉽지 않았다.

행정과 중간 지원 조직의 지원 사업도 일시적이었다. 지속 가능한 활동 구조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한편 나는 바름 활동과 녹색당 일을 병행하면서, 생계 부담을 별도로 하고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이어갔다. 느슨한 결합이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18명 중 1명의 다른 목소리"를 내걸며 안동시의원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다.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열풍이 불었지만, 내가 출마한 지역구에 1번은 없었다. 자유한국당(2인), 바른미래당, 무소속, 녹색당이 경쟁했고, 결국 낙선했다. 낙선했지만 지역 청년들과 함께 나눈 고민을 과감히 내세운 선거였다.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의 시작
 

2018년 지방선거 허승규후보 선거운동 ⓒ 2018허승규선거캠프

 
선거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까. 2019년 5월, 아름다운재단의 협력으로,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를 시작했다. '주어진 대로 살기보다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은 우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와 지역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공익단체다.

주어진 대로 살기만을 강요하는, 조금은 다르게 사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 지역사회에서 유쾌한 저항, 행복한 변화를 꿈꾼다. 조금은 다르게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거창한 이상이 아닌, 지금 당장 생존의 문제다.

인간은 삼시 세끼만 충족된다고 살 수는 없다. 내가 바라는 최소한의 가치, 비전, 희망이 없다면 사람답게 살아가기 어렵다. 좋게 말해서 보수적인, 거칠게 말해서 수구적인 지역사회, 전통이란 이름에 가려진 기득권의 논리는 지방 소멸 시대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청년 세대를 몰아내고, 수적 다수지만 질적 소수인 다수 시민들의 삶을 짓누른다.

정치적 다양성을 드러내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역사회의 시계는 1980년대 초중반에 멈춰있다. 2020년의 한국인으로, 2020년의 세계시민으로, 2020년 경북 안동(경북 북부)에서 살아가고픈 지역사회의 수많은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열어가고 있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변화를 만드는 중이다.
 
올해 안동시 살림살이를 살펴보며 시민들의 시정 참여를 모색하는 안동시민예산학교, 지역 청년들의 공론장 아무말대잔치, 청년문화교실 원데이클래스, 채식문화가 생소한 청년들의 채식모임, 상주와 안동의 낙동강 모니터링 활동, 10년 역사의 상주의정참여단, 텃밭도 가꾸고 책도 읽는 그린리더스, 그동안 마이크가 적었던 멋진 언니들을 만나는 지역 여성들의 수다 공간 동네언니 등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과 시민사회를 연결한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활동은 위축됐지만, 소모임 위주로 내실 있게 활동 중이다. 하반기에도 '소규모 모임의 다각화'로 활동할 예정이다. 오히려 소규모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다. 코로나로 피해가 컸던 대구경북 지역의 단체인 만큼, 코로나19 이후의 달라진 일상을 더욱 절감한다. 위기에서 희망을 마주하는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하반기를 맞이하고자 한다.
 
위기에서 희망을 마주하다
 

안동시민예산학교 활동사진 ⓒ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경북 안동의 슬로건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 보면 볼수록 아리송한 '정신문화'도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다. 2020년, 한국의 정신문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지역사회 정신문화가 한국 사회의 표준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신라·고려·조선인가? 신라·고려·조선 시대, 과거의 영광은 화려했을지언정, 2020년 한국 정신문화의 비전을 지역사회가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정신문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넘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변화를 지역사회에서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표준(뉴노멀)을 요구받는 시대다. 기후위기를 겪으며 생태와 순환의 지속 가능한 비전을 요구받는 시대다. 조상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이다.

안동의 다른 슬로건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역사, 독립운동의 정신문화는 패권적 민족주의가 아닌, 보편적 평화주의로 연결된다. 보편적 평화주의는 가장 아래에서, 가장 낮은 곳의 관점에서 전체를 보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획일주의, 연령주의, 문중정치, 성장주의, 정치독점, 가부장제의 편향적인 흐름을 비틀어서 봐야 한다.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이 전통의 계승이라면, 과감한 혁신과 개혁이 가장 안동다운 전통의 모습이 아닐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이래서 되겠니껴?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은 우리들 모여 보소! 이제 바꿔야 되니더. 그게 안동 정신이시더. 함께 하시더!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허승규님은 청년정치와글와글 편집위원, 안동지역 청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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