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 08:22최종 업데이트 20.08.0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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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한국의 종이신문 구독이 크게 떨어졌다는 여러 지표를 소개했다. 종이신문을 직접 보는 열독률이 한때 10명 가운데 8명꼴이었는데, 지금은 열 명 가운데 한 명 남짓 꼴이다. 종이신문을 읽는 시간은 하루 평균 4분 정도. 특히 19-29세 젊은 세대의 열독 시간은 하루 평균 36초, 종이신문을 거의 안 본다는 얘기다.

뉴스를 접하는 경로 조사를 보면 종이신문을 통한다는 비율은 1.8%에 불과하다. 이러하니 종이신문의 광고효과가 어떤지 광고주들은 잘 안다. 여기에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일반 제품으로 비유하면 상품의 생명인 신뢰도가 바닥인 불량 제품이 여러 요인으로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외면을 당하고 있어서 그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망하는 신문사 없이, 셀프 인증한 뻥튀기의 '공식' 발행 부수와 유가 부수를 자랑하면서, 기이한 방식으로 여전히 많은 광고와 협찬을 할당받아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그 생존의 비법은 무엇일까.
 
보는 사람은 없는데

먼저 '막강한' 숫자를 자랑하는 '공식' 발행 부수, 유가 부수라는 신기루를 들여다보자. 한때 발행 부수, 유가 부수는 신문사의 세력을 보여주는 증좌로,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광고 단가 책정의 주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숫자를 늘리기 위해 1년 무료 구독, 자전거 경품, 현금 살포 등 무한 경쟁을 벌였다. 그 경쟁이 극에 달해 경쟁사들 사이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판매 전쟁을 치르기까지 했다.
 
1990년대 말 중앙일보 경기도의 한 지국 직원들이 신문 판매를 둘러싸고 조선일보 지국 보급소 직원들과 시비를 하던 중 칼부림이 일어나 조선일보 보급소 직원이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이런 살벌한 판매 경쟁으로 엄청나게 부풀린 것이 신문사의 발행 부수, 유가 부수였다.

그러다가 독자들이 뉴스를 접하는 방식이 종이 신문에서 디지털로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정해진 구독료를 받는 정확한 유가 부수와 뻥튀기 발행 부수 사이에 어마어마한 간극이 생기게 되고, 그 간극만큼의 거품은 신문 경영에 큰 부담이 되었다. 한때 발행 부수 2백만을 넘는다고 자랑하던 신문사들의 지금 부수가 3분의 1 언저리로 뚝 떨어진 배경이다.
 
그런데 지금도 거품은 여전하다. 조중동은 1등 신문 경쟁을 하면서 발행 부수, 유가 부수를 부풀리고, 다른 신문사들은 자존심과 생존의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그 수치를 부풀리고 있다. 어떻게 부풀리고 있는가.
 
계란판으로 직행
 

지국에서 새 신문을 가져가는 폐지 수거업자 ⓒ KBS

 
그 거품의 생생하고 충격적인 현장을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저리톡)가 지난해 6월 9일 방송에서 보여주었다.
 
지난 4월 19일 새벽 4시 취재진이 찾은 신문 지국에선 배달된 새 신문들이 포장이 뜯기지도 않은 채 폐지 수거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트럭을 뒤쫓아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계란판 제조공장이었다.
 
폐지 수거 트럭들이 줄지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마당에는 새 신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신문들은 계란판이 돼 나왔다. 전국 최대 규모의 계란판 제조 공장에서 새 신문들은 계란판의 원재료로 쓰이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 신문은 컨테이너에 실려 해외로 수출되기도 한다.
 
'뉴스는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나?'라는 제목의 저리톡 방송을 소개한 KBS 관련 기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포장도 뜯지 않은, 산처럼 쌓여 있는 새 신문들은 계란판 원료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었다.

KBS 취재진이 만난 폐지 수거업자는 "돼지 사료에도 들어가고, 계란판에도 들어가고, 수출도 하고, 중국·베트남·파키스탄·아프카니스탄 같은 데는 (열대 과일 포장지로)...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오늘 컨테이너 1대다 2대다 그러면 그만큼 갖다 줘요. 계란판 공장에는 한 달에 몇 백 톤씩 넣어 달라고 하면 그 몇 백 톤 맞춰줘야 하구요"라고 말했다. 
 

계란판 공장에 쌓인 새 신문 더미 ⓒ KBS

  

새 신문으로 만들어진 계란판 ⓒ KBS


짜고 치는 고스톱

종이신문 부수 공인기구라고 하는 한국 ABC 협회는 해마다 발행 부수, 유가 부수를 발표한다. 그런데 조사대상인 신문사들이 회원이고, 이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되는 이 협회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조사 시기를  미리 신문사에 통보해주고 신문사 쪽 준비가 끝나면 가서 조사를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조사 과정을 들여다 보면, 이 기구에서 발표하는 공인 부수라는 게 얼마나 허수인지 잘 드러난다.
 
위에 언급한 KBS의 관련 기사에는 부수 인증 조사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부수 부풀리기를 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신문사 지국 직원들과 한국 ABC 협회 전 직원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나왔다.
 
이 기사에 따르면 우선 ABC 협회의 전체 직원은 22명, 이 가운데 실제 조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16명이다. 1주일 전 신문사에 표본으로 산출한 지국 30곳의 명단을 전달하고 그 지국을 찾아가 실사를 한다. 실사라고 해봐야 해당 신문사 본사에서 협회에 제출한 부수 보고 자료와 현장의 구독자 장부와 지로 영수증을 대조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신문사 판매국 쪽에서는 표본 산출된 30곳 지국에 미리 '작업'을 다 해놓는다. 저리톡 기사에 나오는 지국장의 증언이다.
 
신문사 본사에 지국 담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ABC 협회 조사 기간이 되면  2~3개월 동안은 우리와 (평상의) 업무를 안 해요. 대신 ABC 공사 대상 지국으로 선정된 곳에 가서 작업을 하는 거죠. 3~4일 전에 미리 어느 지국 가서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다 조작하란 이야기 아니겠어요?(한상진/○○일보 지국장)
 
실제 지국에는 (유가 부수가) 50개뿐이 안 살아 있는데 70개를 만들어 놓는다는 얘기죠. 70개 또는 80개를 만들어 놓는데, 그 부수를 본사에서 전산으로 조작해서 유료 독자로 만들어 놓습니다. (박재동/○○일보 지국장)

조작할 시간 줄게 

ABC협회 전 직원의 증언도 구체적이다.
 
말하자면 부수 인증이 (신문사) 셀프로 이뤄지는 거거든요. 신문사들이 자기네들 얼마 판매한다고 주장을 하는 건데, 그걸 신문사들이 말을 하면 믿어주질 않으니까 중간에 ABC협회를 끼워서 '아, 믿어 달라' 이런 식이 아니냐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증언들에 대해 ABC 협회는 어떻게 생각을 할까. KBS 저리톡 기사가 인용한 'ABC 협회 관계자'의 말은 이러했다. 그는 협회는 '을'이고, (협회의 회원인) 신문사는 '갑'이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갑자기 조사를 하면 반발이 생깁니다. 그래서 1주일 전에 통보를 해줍니다. 신문사들이 공사를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는 불쑥불쑥 가면 제일 좋지만 그렇게 해서는 저희가 못 견딥니다. 신문사가 우리의 고객입니다. 신문사가 내는 회비로 우린 살아가고, 정부 지원은 없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어려워요. 1년 예산이 20억밖에 안되는 작은 비영리 법인입니다.

공인 발행 부수, 공인 유가 부수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광고주들도 믿지 않는 셀프 부수의 실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뻥튀기의 셀프 발행 부수, 유가 부수 숫자에다, 종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급격하게 줄어가고 있는 이 엄혹한 현실에서 종이 신문의 명줄을 쥐고 있는 광고와 협찬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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