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 13:00최종 업데이트 20.08.0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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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설거지와 샤워를 마친 후 '경건하게' TV 앞에 앉는다. 팬데믹이 선포된 후 집에 있으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밤 8시 통행금지가 내려지면서 시작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일상, '한. 드 시간'이다. <나의 아저씨> <멜로가 체질> <열혈 사제> <디어 마이 프렌즈>를 끝냈고 지난주부터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시작했다.

오늘은 한국 시각 지난달 26일 일요일에 방영된 12회가 기다리고 있다. 고문영 작가의 엄마가 누구인지, 문강태는 행복에 한 발 짝 다가간 건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플레이 버튼을 꾹. 12회에서 나는 엉뚱한 곳에서 전율을 느꼈다. 드라마 배경인 '괜찮은 (정신) 병원'의 환자인 착한 동네 아저씨. 그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원인이 밝혀지는 장면에서였다. 

간디 아저씨의 트라우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극중 간필옹은 버스 안에서 귀를 막으며 중얼거린다. "저놈의 소리, 저놈의 소리..."? ⓒ tvn

 
자기도 환자면서 다른 환자들을 도우며 나름의 사정들을 이해하는 간필옹 환자. 오지랖이 넓어 병원서 일어나는 일에 다 참견하는 사람, 평화주의자 간디란 별명처럼 더 아프고 곤란한 동료 환자들을 돕는 그냥 조연이다. 마음 착한 동네 아저씨 같은 그가 어떻게 이 병원에 오게 됐는지 12화는 보여준다.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로 스무 살 때 베트남전에 파병돼 민간인을 학살했던 참전 '용사'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이는 심성이지만 반짝반짝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들을 학살했단다. 평생 그 죄책감에 옥죄어 공황장애를 앓아왔던 것. 그래서 공사장의 드릴 소리에 발작을 한다. 버스 안에서 귀를 막으며 중얼거린다.

"저놈의 소리, 저놈의 소리...." 

드릴 소리는 전쟁터 다연발 총소리와 똑같다. 다행히 승객들의 도움으로 다시 병원에 실려온 그는 빨리 죽고 싶다고 원장에게 절규한다. 스무 살 트라우마에 괴로워한 늙은이에게 젊은 동료 환자가 말한다. 

"그거 위에서 시켜서 했던 거잖아." 
"시켜서 한다고 다 하면 그건 동물이지." 

드라마는 평범해 보이는 우리 모두가 사이코라고 말한다. 교통사고로 죽은 딸이 준 숄을 걸치고 다니는 여자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도, 술만 보면 참지 못하는 소방관도 모두 그렇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왜곡된 사랑 속에 자란 이도 그렇다. 그런 그들이 서로 이해하며 새로운 가족이 되어간다. 그 모습이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간디 아저씨의 정신병이 어떻게 치유될지 궁금하다. 그로 대표되는 전쟁과 약육강식 속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극복해 나갈지 말이다. 그 아저씨의 회복이 이 드라마를 같이 보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 시청자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미국 땅에서 스트리밍으로 보는 한국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보던 느낌과는 매우 다르다. 다음 날 동료들과의 수다 거리에 포털 검색어를 체크하고 댓글을 보는 맛은 느낄 수 없다. 대신 복선과 뉘앙스까지 100% 대사를 이해하며 순간 이동으로 동해 도로를 달리고 해변의 병원 벤치에 앉아있는 대리 행복감을 맛본다. 멋지고 아름다운 이들의 맛깔난 대사만으로도 즐거운데 거기에 간필옹 환자의 사연 같은 묵직한 플롯까지 얹혀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내가 보는 서비스를 통해 베트남에서도 미국에 사는 나처럼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흥분된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스트리밍 서비스하고 있는 넷플릭스에 의하면 7월 현재 이 드라마는 한국,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1위란다. 이들 동남아시아 국가는 물론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칠레 등의 남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대륙의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많은 지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 대신 앉아서 한국 속으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네는 미군을 따라온 거잖아"
 

김서경김운성 작가는 2016~2016년 베트남 평화기행을 갔다가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무명의 아기 위령비를 보고 베트남피에타상을 구상했다. ⓒ 김운성

 
정확히 10년 전 베트남을 여행했다. 기차를 타고 남쪽 호찌민에서 나짱, 호이안, 다낭, 후에, 하롱베이, 하노이 그리고 사파까지 올라가는 종주였다. 아름다운 자연과 천혜의 환경 그리고 1000년 넘은 국립대학을 보면서 수준 높은 문화의 나라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아끼바리'나 쌀국수밖에 몰랐는데 그 외에도 맛있고 다양하고 신선한 다른 음식도 매일 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존심 강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의 나라여서 좋았다. 세계 최강 미국과 중국과 일본을 무찌른 그들의 저력을 보며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여행이었다. 

그때 하노이 기차에서 만난 25살 청년도 이 드라마를 보았길 바란다. 하노이 공대 졸업반이던 청년은 앞 세대에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의 외가도 다른 무고한 양민들처럼 여럿이 숨졌다고 했다. 대화 도중 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한국군이 전쟁 중 베트남 사람들을 죽인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청년의 반응은 의외였다.

"한국군은 미군을 따라온 거일 뿐이잖아. 너네 잘못이 아니야. 사과는 미국이 해야지." 

그의 대답이 고마웠지만 그래도 베트남 특수로 한국의 경부고속도로가 깔리고 경제 발전이 이뤄진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더 미안했다. 이젠 결혼해서 아이도 있을 그도 아내와 이 드라마를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K-컬처의 힘
 

20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1만9천석 규모의 유세장에는 관중이 3분의 2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2020.6.20 ⓒ AP/연합뉴스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최근 팬데믹을 맞아 폭발적으로 늘어난 모양새다. 직전인 지난 2월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개 부문을 수상한 것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 촉매제가 됐다.

7월 22일 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라쿠텐비키라는 스트리밍 회사는 구독자가 1년 전보다 50% 증가한 1500만 명이 됐다. 이 회사는 넷플릭스, 훌루, 아마존 프라임, 유튜브 등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한국어 시리즈 10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한국어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최근 66%가 증가했고 그 중 몇 개는 K-팝 아이돌이 출연하는 드라마다. 한국어 콘텐츠에는 130개 이상의 언어로 된 자막이 가능한데 사용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기부로 생성된다. 

기사에 따르면 약 5년 전 한국 콘텐츠를 확장하기 시작한 넷플릭스처럼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NBC 유니버설의 피콕(Peacock)은 한국의 웨이브(Wavve) 콘텐츠와 계약해 제작과 투자를 시도하고 있다.  

중부 테네시 시골 마을로 이사한 주부는 방탄소년단(BTS)이 고맙다. 딸이 전학 간 중학교는 아시안이 없는 곳이었는데 한국인인 딸에게 반 친구들이 BTS에 대해 질문하면서 학교의 '인싸'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한글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던 캐나다 토론토의 아빠는 트와이스 덕분에 고민을 덜었다. 어느 날 전 세계 트와이스 동호회 토론토 지부장이 된 딸이 회원들을 위해 노래 가사를 번역하면서 한글에 정통해졌기 때문이다. 

노스다코타주 파고에서 나고 자란 제니의 한국어 교과서는 드라마 <대장금>이었다. 엄마랑 같이 드라마를 보며 모르는 단어를 묻고 찾아보는 사이 유창한 한국어 구사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이코라도 괜찮아>를 보며 베트남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 50년 전 당신 나라의 전쟁에 갔던 우리의 가난하고 어린 청년들의 모습을 얘기하고 싶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고 내 나라로 돌아왔지만 그 트라우마는 평생 개인을 사회를 나라를 억누르고 있었다고. 우린 여전히 미안하다고. 그래서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누구보다 함께하자고 말이다. 

K-팝 팬들은 연예만이 아닌 경제와 정치, 사회 부문에서도 그 이름을 올린다. 가장 최근엔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 대선 연설장에서 그들의 힘을 보여줬다(관련기사: 그 시작은 '틱톡 할머니'... K팝 노쇼시위 막전막후 http://omn.kr/1nzyt). 지금 미국의 역사를 바꾸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에도 그들의 움직임이 기사화된다. 그들은 단순한 문화 소비자에서 적극적인 사회 참여 그룹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여기에 지금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처럼 콘텐츠 속의 이야기로 세계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내 마음속의 미안함이 한류라는 거대한 물결을 타고 베트남 땅에 전달되고 있음이 신기하다. 그래서 이번 주도 그 드라마를 기다린다. 한글로 만들어진 콘텐츠뿐 아니라 그 건강한 생각과 정치와 사회적인 자부심, 그리고 연대와 화해의 메시지까지 우리말로 된 멋진 콘텐츠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타고 전 세계에 지금처럼 계속 전달되길 바란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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