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08:27최종 업데이트 20.08.12 09:46
  • 본문듣기
'광복절부터 사흘 연휴' 

알려진 대로, 누리꾼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낳은 표현이다. 사흘은 세 날 즉 3일을 뜻하는데, 숫자 '4'를 연상하게 하는 '사'가 포함되어 사흘을 4일로 착각한 일부는 오보라며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사흘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며 혀를 찼지만, 또 한편에서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영역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언어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서로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 소통이 힘겨워지는 사례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접촉을 뜻하는 '언택트'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많이 쓰이고,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늘어나며 '보이스피싱', '스미싱', '그루밍' 등의 외국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누군가는 보이스피싱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언택트의 뜻을 몰라 뉴스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말로 좀더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어문화원연합회회장 김미형 상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만나 우리말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규, 리플릿, 이첩, MOU... 국민들은 모른다"
   

'드라이브 스루'와 '승차 구매'를 같이 적어놓은 공공기관 안내문. ⓒ 경기도

   
- 언택트, 블랙컨슈머, 드라이브 스루 등 정부와 언론이 많이 쓰는 말 중에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부터 '언택트'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비대면'이라고 했는데 어느새 이 말이 많이 쓰여요. 언택트 시대, 언택트 면접 등. 저는 왜 굳이 언택트라는 말을 쓸까 생각했어요. 이 단어는 영어에는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 국립대학의 한 연구팀이 만들어 냈다고 하네요. 안 그래도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어 때문에 국민들이 피곤한데, 왜 굳이 외국어 새 말을 만들고자 했을까요. 비대면이라는 적절한 표현이 있는데도 말이죠.

또, '블랙컨슈머'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데,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인 인권 비하의 뜻이 담긴 말에다 잘못된 사용이라고 하니 쓰면 안되겠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같은 경우에는 차타고검사, 차타고진료, 차타고물건사기, 차타고팬사인회, 차타고장사, 차타고관람 등으로 쓰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국민이 위험에 처하거나 재난을 당하지 않게 잘 전달해야 하는 단어들이 있어요. 아이스블랙, 보이스피싱, 스미싱, 그루밍 등 참 많죠. 이런 단어들은 특히나 적절한 우리말로 바꿔써야 합니다."
 
- 어떤 단어가 국민 대부분이 아는 단어고, 어떤 단어가 그렇지 않은 단어인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작년 11월에 중앙행정기관의 보도자료와 정부업무보고 자료에 쓰인 공공언어이해도조사를 했어요. 공무원은 아는데 국민이 모른다고 답한 예가 '예규', '리플릿', '이첩', 'MOU' 등이었어요. 공무원들조차 모르겠다고 답한 용어도 참 많았어요. 조사한 140개 단어 중 50% 이상을 모른다고 답한 거예요."
 
김미형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국어문화원연합회는 국민의 국어능력을 높이고 국어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기관인 국어문화원을 묶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국민의 국어능력향상교육, 국어상담, 지역별 국어책임관연수회, 한글과 한국어 관련문화행사, 우리말가꿈이활동지도 등을 진행한다.

특히 우리 사회의 국어환경을 개선하고 국어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부서와 언론사를 상대로 공공언어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미형 교수가 공공언어가 반드시 국민을 배려하는 언어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국어문화원연합회회장 김미형 상명대 교수

 - 국어문화원연합회 활동과는 별개로 공공언어개선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머니와 주변 어른들의 쓸쓸한 사정을 보면서부터에요. 누구보다도 뉴스 보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언제부터인가 소외감을 심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알 수 없는 단어가 이리도 많구나, 꼭 저렇게 어려운 말을 써야 하니?'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단지 몇 개 외국어 단어 섞여 있을 뿐이지만, 그 어려운 단어 하나의 위력은 대단했어요. 통으로 그 기사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점차 어머니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바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하셨고, 무슨 문제에 부딪쳤을 때 판단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조바심 내며 저에게 의지하셨어요. 또 어떤 판단을 한 번 하게 되면 그것이 선입견인데도 쉽게 생각을 바꾸지 못하시더라고요.

우리 사회에 어머니 연령의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부분 분들이 아마 이런 사정일 거라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이 바빠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볼 기회가 없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국민을 배려하는 공공언어쓰기 주장이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취급받게 되는 거 같아요. 사적인 자리에서는 자기 취향대로 외국어를 즐겨 써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재치있는 언어 유희도 즐길 수 있고, 서로 알아듣는다면 어려운 말로 소통해도 되죠. 하지만 버젓이 전국민이 봐야 할 공공언어 부분에서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 공공 언어를 배려해서 쓰지 않는 것이 단순히 취향을 드러내거나 재치있는 언어유희를 즐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얘기네요. 그럼 외국어나 어려운 말이 남용된 공공언어가 문제가 되는 건 우리말이 오염되기 때문일까요?

"언어의 오염이라는 개념에 대해 먼저 짚어보고 싶어요. 공공언어운동가들이 국어 어휘가 순수해야 한다는 뜻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서, 오염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주저하게 됩니다. 언어순수주의나 언어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게 결코 아니거든요. 언어는 자연발생적이며 대중의 소통에 의해 언어문화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공공언어에 대해 개입하며 올바르게 쓰기를 주장하는가. 그것이 공공성을 지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용은 곧 국민 배려의 문제이며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국민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은 말을 정부의 중요정책이나 언론 기사에 마구 사용한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기 때문이죠. 공공언어 사용자는 국민 앞에서 국민을 향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므로, 마치 우리가 부모님께 말씀드릴 때 언어 예절을 지키듯이, 아기에게 말할 때 눈을 맞추며 아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몸짓과 표정을 짓듯이, 국민 눈높이에 맞춘 국어 표현을 하자는 것입니다."
 
김미형 교수의 말대로 요즘의 언어 변화를 쉽게 '오염되고 있다'라고 단언하긴 어려울 듯하다. 다만 공공언어의 목적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의사소통하기 위한 것이라면, 공공언어만큼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이견을 덧대기 어려웠다.
 
"영국에선 어려운 단어 때문에 노부부가 동사한 사건도"
 

2009년 서울시에서 실시한 맘프러너 사업. '맘프러너'는 취미 활동을 전문화한 주부 사업가를 이르는 말이다.


- 쉬운 말이 있는데도 왜 공공기관에서는 굳이 어려운 말을 쓰는 걸까요?

"외래어든 외국어든 뭔가 낯선 표현을 할 때 사람들이 주목하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이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고, 이해하는 방법을 몰라 그대로 모르면서 지내게 되는 사람 또한 많다는 것을 꼭 고려해야 합니다. 서울시에서 만들었던 복지제도 '맘프러너'는 이름을 이해하기 어려워 신청 대상자들에게는 깜깜이 정보가 되었었죠.

영국에서 노부부가 겨울에 동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거예요. 이 사건이 실마리가 되어 영국에서는 쉬운 영어 쓰기 운동이 확산되었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복지국가, 인권국가에서 쉬운 공공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요."

- 공공언어영역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등장하는 사례가 예전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요즈음 공공언어영역에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등장하고 그 단어의 남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세상 문물의 변화가 극심해졌기 때문이죠. 어려운 외국어의 남용을 되도록 막으면서 이를 적절히 표현할 우리 말을 애써 찾으며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국민에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일부 기관과 일부 사람들만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마치 바윗돌에 계란 던지기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공공언어 문제를 더욱 부각시켜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지금이 정보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분량의 정보가 국민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알아듣지 못하는 표현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전달됩니다. 즉, 공공언어 영역에서 쓰이는 어려운 단어가 빈번하게 드러나는 정보화 환경에서는 어려운 공공언어는 야수와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 과거에는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되고 물 흐르듯 흐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언어정책이라고 생각했지만, 현대의 정보 환경은 그런 자연스러움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언어는 소통과 친화의 도구인데 요즘에는 자기 주장과 타인비방의 도구로 쓰이고 있어요. 언어를 소유한 인간의 소명은 함께 소통하며 이성적으로 갈등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국어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이런 걸 해라, 하지 말아라, 또는 정답을 맞추어라는 식의 지시적, 권위적 교육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적 기능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면 좋겠습니다. 즉,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며 소통을 통해 협력하며 친하게 지내는 데 쓰이는 매개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로 임하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