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 20:02최종 업데이트 20.05.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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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질의서를 전달하는 신지혜후보 신지혜후보는 선거 당시 선관위에게 방송토론회 참여보장과 지방의원의 부당한 선거참여를 금지하는 질의 항의방문을 하였다. ⓒ 민병래

 
"후보토론회에 참여할 수 없대요." 신지혜는 전화를 끊으며 이혜정 사무장에게 말했다. 혹시나 했지만 쓸데없는 기대였다. 누가 거부했대요, 미통당 김현아? 민주당 이용우? 대변인 준호가 재촉하듯 물었다. 글쎄. 선관위에서 그것은 확인해줄 수 없대. 신지혜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의 사무실은 창고 용도로 쓰는 2평 남짓 되는 방. 아마 21대 총선 출마자를 통틀어 가장 작을 것이다. 창문이 없어 늘 답답했는데 선관위로부터 '참석 불가' 통지까지 받으니 머리가 아프다. "코로나로 주민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 방송토론회까지 막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푸념하며 신지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년 정치인 신지혜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기본소득당 신지혜는 의석수와 지지율이 못 미쳐 후보초청토론회 참가 자격이 안 된다. 다만 초청 대상이 되는 다른 후보들이 모두 동의하면 참여할 수 있지만 민주당과 미통당은 이를 거부했다.
 
30대 초반, LH 임대주택에 사는 신지혜로서는 후보기탁금 1500만원을 비롯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탁금은 기본소득당 중앙당에서 지원했지만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현행 선거법은 출마자에게 기탁금을 비롯 의무는 똑같이 지우면서 방송토론과 같은 중요한 기회는 강한 자에게 보장하고 약한 자에게는 문턱을 높이 쌓아놓고 있다.
 
명함 배부도 마찬가지다. 기혼 출마자는 배우자나 자녀가 후보와 별개로 명함을 돌리며 홍보할 수 있지만 청년 후보들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으니 이 또한 불리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위안을 삼기엔 50대 이상 장년 후보에게 유리한 실정이다.
 
신지혜는 "누나 힘내요, 예상했던 일이잖아요!" 대변인이 말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묵묵히 참아내는 사무장과 대변인, 회사 휴가까지 써가며 자원봉사하고 있는 운동원들을 생각하면 의연해야 하는데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캠프 밖으로 나와보니 퇴근 무렵이어서 차량도 늘고 행인도 많아졌다. 봄바람에 외벽 캠프 현수막이 날아갈 듯 펄럭인다. "기본소득으로 평등한 세상 열어가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방금 들어온 가로동 불빛에 번쩍 빛난다.
 
올해 32살, 젊은 나이지만 청년 정치인 신지혜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2014년에 광역의회에, 2016년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2012년에 고양시에 정착했고 지역 청년모임인 '고양청년네트워크 파티'에 들어갔다. 2016년에는 이 단체에서 305명을 설문조사하고 13명을 심층인터뷰하면서 '고양시 청년실태조사' 작업을 했다.
 
그 결과 "84%가 계층이동을 어려워 하고 34%가 주거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며 60%가 비정규직임"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고양시청년조례' 초안을 만들었고 이의 제정과 '청년정책위원제' 신설을 제안했다.
 
다행히 시에서는 2017년에 조례제정을 수용했고 청년정책위원제도 받아들였다. 고양청년네트워크 파티 회원들은 고무되어 정책위원에 응모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압력단체로 찍혀 응모했던 모든 사람들이 떨어졌다.
 
너무나 기막혀 항의 기자회견을 하려니 고양시청은 셔터 출입문마저 봉쇄하며 저지했다. 3개월 이상을 발로 뛰고 없는 돈 써가며 정책과 제도를 마련했건만... 하도 서러워서 청원은 이제 그만하고 정치의 주역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이때 결심으로 2016년에 이어 2020년에도 출마했다.
 
"제가 우리 아빠에게 언니 찍어주라고 했어요." 캠프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던 신지혜에게 아까부터 주변에서 맴돌던 여자아이가 머뭇머뭇 다가오면서 말한다.
"아니, 왜요?" 신지혜는 깜짝 놀라 물었다.
"여자가 정치하면 멋있잖아요." 아이는 대답하며 활짝 웃는다.
 
신지혜는 갑자기 뭉클했다. 선관위는 제도로서 배척하고 양대 정당은 기득권으로 차별하는데 "이 아이가 나를 안아주는구나" 생각하니 힘이 솟았다. 
 

유세하고 있는 신지혜 신지혜는 32살 당당한 청년정치인이다, ⓒ 민병래

 
경남 통영여중시절,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언니가 귀밑 3cm 제한을 없애겠다, 두발자유화를 하겠다고 운동장에서 연설했다. 그 당당한 모습이 멋있고 부러웠다. 지금 자신도 이 아이 앞에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니 갑자기 힘이 났다. 신지혜는 자신을 격려해 준 여자아이를 꼭 안아주고 2층 캠프로 서둘러 올라갔다.
      
주엽역에서 유세차가 충돌하다 

4월 14일 선거운동 마지막날, 신지혜는 저녁 7시 30분경 집중유세를 위해 주엽역으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김현아 후보 선거차량이 먼저 와 있었다. 유세팀장이 협조요청을 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1시간 가량 연설을 계속했다.
 
선거 기간 동안 유세차량이나 운동원들의 동선은 물론 공약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미통당 김현아 후보측과는 특히 심했다. 선거 마지막 주말인 4월12일, 신지혜가 대화동 하나로 마트 앞에 자리를 잡고 유세를 시작할 즈음, 김현아 후보 측이 들어왔고 이들은 불과 50m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먼저 와 있던 기본소득당에게 어떤 양해도 없이 연설을 시작했다. 그때도 1시간 가량이었다. 문제는 태도만이 아니었다. 그의 얘기는 '집값'에서 시작해서 '집값'으로 끝났다.
 
며칠 전에는 탄현역에서 김현아 측 운동원들이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막겠다"고 서슴없이 떠들었다. 옆에서 명함을 돌리던 신지혜는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차별과 배제'를 거리낌없이 외칠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웠다.
 

신지혜후보의 유세차량 신지혜는 중앙당의 지원과 후원회모금을 통해 저렴하게 어렵게 선거를 치뤄냈다. ⓒ 민병래

   
신지혜는 초등시절 다섯 번 전학 끝에 부산을 떠나 통영으로 이사했다. 아빠는 장애가 있었고 엄마는 이사 후 직장이 없었다. 그래서 무료급식 대상이었는데 점심시간에는 교무실에서 밥을 받아와야 했다. 친구들의 묘한 눈길을 받으며 다녀와야 하는 길! 학교는 마치 가난을 부끄러워하라며 어린 마음에 낙인을 찍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2020년 4월 국회의원선거현장에서 '국민임대주택거주민'이 낙인이 되고 차별대상이 될지 몰랐다. 무려 16번의 이사 끝에 안착한 'LH'였다. 신지혜가 입주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한턱 내라고 아우성이었다. 청년들은 국민주택 입주를 열망하는데 그 간절함을 막아서고 집값을 부추키는 선거운동을 하다니 달려가 싸우고 싶었지만 겨우 참아냈다.

밤 8시 20분이 되어서야 김현아 후보 차량은 주엽역에서 떠났다. 그제야 겨우 신지혜는 "1987년 민주화대투쟁이 일어난 해에 저는 태어났습니다"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퇴근 무렵이어서 8차선 도로에는 차가 넘쳐났고 유세차 앞은 건널목이어서 오가는 사람도 많았다. 신지혜의 연설이 조금씩 고조되니 연설차량 뒤로 빛나는 상가 불빛과 그 옆 가로등은 무대조명인 듯 신지혜를 비춰줬다.
 
"당신이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당신이 누구든 국가가 버리지 않는 사회 만들겠습니다"라고 외치니 빠앙하는 자동차 경적 소리, 우웅하는 엔진소리가 청아한 신지혜의 목소리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카카오뱅크 전 대표였던 민주당 후보는 기업들의 인수합병을 이끌었다 자랑합니다. 그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부동산 전문가라는 미통당 후보는 창릉신도시 계획을 폐기, 일산 집값 하락을 막고 탄현 공공택지 계획도 막겠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후보들이 청년과 서민을 대변할 수 있습니까?"
 
가슴 속 꾹꾹 눌러뒀던 얘기를 신지혜는 토해내듯 쏟아냈다. 봄바람을 타고 그 목소리는 높이 올라가 주역엽을 에워싸고, 한 갈래는 대화역으로 한 갈래는 탄현역으로 퍼져나갔다.
 
신지혜가 마지막으로 "집 없는 사람, 가난한 청년들이 쫓겨날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일산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소리치자 보랏빛 운동원들은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8번 신지혜! 8번 신지혜!"를 연호했다. 지나던 시민들도 멈춰서서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유세 차량 옆에 떡볶이 사장님이 "애썼으니 배불리 먹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신지혜는 그날 마지막 일정인 대화역으로 향했다.
 

선거 끝나고 떡볶이집 사장님과 함께 신지혜와 운동원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신 분이다, ⓒ 신지혜제공

 
낙선인사를 하며

4월 16일 신지혜는 낙선인사 현수막에 "시대에 필요한 정치,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주엽역으로 향했다. 득표율 1.2% 2,058표! 최종 성적표였다. 민주당은 180석에 환호했고 세상은 '코돌이' 탄생으로 떠들썩한데 정의당을 비롯 기본소득당 같은 진보정당의 성적은 초라했다. 사전투표에서 "신지혜를 찍었다"는 얘기도 많았고 막바지에는 손잡아주는 사람도 많아져 기대도 컸건만... 그래도 총선 기간에 기본소득이 쟁점으로 된 것을 위안삼기로 했다.
 
돌아보면 정신없이 달려왔다. 신지혜는 용혜인, 신민주와 함께 2019년 1월 노동당대표단이 되었다. 그 후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당 중심노선으로 이끌고자 했지만 당내 합의가 쉽지 않았다. 신지혜를 비롯 셋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당 대표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퇴를 해."
"우리가 기본소득당을 만들려면 당원 5000명은 있어야 해."


그렇게 푸념과 답답함을 늘어놓았다. 그런 얘기가 오갈 때면 어느새 불판에서 삼겹살이 탄내를 풍겼고 소주병은 쌓여갔다. "까짓것 밑져야 본전이지 한번 해보자"며 신지혜와 동료들이 서로 다독일 때 커피 잔은 바닥을 드러냈고 '기본 소득이 시대정신이야, 국토세, 탄소세로 충분히 가능해"하며 열띠게 얘기하다 보면 새벽 여명이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부딪히고 고민하면서 "당신이 누구든 월 60만원 기본소득"을 표어로 세웠다. 그리고 2019년 9월 발기인대회, 2020년 1월 중앙당과 경기도당 창당, 이어서 출마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낙선 현수막을 달고 자세를 취한 신지혜후보 시대에 필요한 정치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 신지혜제공

 
낙선 현수막을 주엽역에 달고 떡복이집 사장님에게도 인사를 드리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야옹이 '지오'랑 놀아야 한다. 매일 늦게 들어가니 요즘 지오가 눈을 흘기며 쌀쌀맞게 대했다.

신지혜는 2006년 대학에 들어가 발달장애인을 돕는 인연맺기학교 교사를 했다. 2007년 4월20일 생애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했고 '장애인차별 철폐'를 외쳤다. 대운하 건설, 광우병 수입반대 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진압은 늘 시민들이 없는 새벽에 시작되고 물대포가 시민을 향해 직접 발사된다는 것을 알았다.

2011년 6월 12일 포이동재건마을에서 화재가 났다. 그곳에도 인연맺기 공부방 아이들이 있어 신지혜는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때 알았다. 판잣집이 타들어가 눈물짓는 아이들을 향해 기자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진 찍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 참에 재건마을을 통째로 철거하려는 강남구청과 맞서서 하얗게 새운 6월이 추운 계절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파하고 흔들리면서 진보정당운동에 한 걸음씩 다가갔고 '고양시 청년정책조례'를 만들 때 다짐했던 대로 청년 정치인으로 달려왔다. 물론 통영에 계신 엄마의 한숨은 해마다 깊어졌지만...
 
지오 생각을 하며 주엽공원에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니 문득 황매화가 눈에 들어온다. 연녹색 잎 사이로 샛노란 꽃망울이 노랑나비처럼 춤추고 있었다. 옆에는 철쭉이 연분홍색을 뽐내며 봄볕에 긴 하품을 하고 있었다. 고개 들어보니 목련은 이미 투두둑 지고 있었고... 신지혜는 순간 "어머 봄이구나" 하고 손뼉을 쳤다.
 
못다 한 이야기
① 신지혜 후보는 선거비용을 4천 9백만원 정도 썼습니다. 기탁금 1,500만원, 공보물 약 1,000만 원, 유세차량 800만원 등이 큰 지출항목이었습니다. 중앙당에서 총선을 치르기 위해 모금한 후원금을 기탁금으로 지원해주었고, 원회를 통해 모금한 돈으로 선거를 치러 다행히 빚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거법상 10% 이상 득표하면 10%를 보전받고, 15% 이상 득표하면 절반을 받지만 신지혜 후보는 한푼도 보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②신지혜의 더 많은 이야기는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beyoursoul2?epa=SEARCH_BOX 그리고 <<당 만드는 여자들>>(신민주, 신지혜, 용혜인/ 지식의풍경/ 2020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럿타' 경제전문심층팟캐스트에 '코알라'라는 이름으로 패널 참여하고 있습니다.
 
③ 공직선거법 제60조3은 명함을 직접 주거나 출마자(예비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배우자가 없는 경우 예비후보자가 지정한 1명)와 직계존비속' 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거사무원 등도 명함을 교부할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부모와 자녀가 있으면 당연히 운동원 수가 더 늘어나게 됩니다. 결혼 안 한 청년 후보에게 불리한 규정입니다.
 
④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관위 초청 방송토론회에 나가려면 '국회의원 5인 이상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거나 '직전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총수의 3% 이상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또는 '언론기관이 실시해 공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평균한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여야 합니다. 신지혜의 기본소득당은 2019년 9월 발기인대회를 열었고 2020년 1월 공식 창당해서 이 요건을 갖출 수 없다. 신생정당에게 불리한 규정입니다.
 
⑤ 기본소득이 의제화된 것은 2007년부터다. 금민씨가 한국사회당 후보로 대선에서 나가면서 국민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후 2016년 녹색당이 "월 40만원 기본소득 단계적 지급 (농어민, 장애인, 청년, 누진세, 생태세)"을 내걸었다. 2016년 노동당이 "월 30만원을 전국민에게"라고 내걸었고 2020년에 기본소득당이 이를 전면화했습니다.
 

<신지혜를 만든 시간들>
 

2011년 봉은사에서 겨울나기 후원금을 받고 2011년 겨울 포이동 인연공부방 담당하고 있을 때 봉은사에서 겨울나기 후원금을 줬다. 수여식 다녀와서 찍은 사진 ⓒ 신지혜제공

   

2012년 여름 밀양 초록농활을 갔었던 사진입니다. 송전탑이 지어질 부지를 주민들과 지켰던 당시 모습 ⓒ 신지혜제공

  

2020년 4월 선거현장에서 양다혜 수행팀장이 찍어줬던 사진. 신지혜가 제일 좋아하는 컷 ⓒ 양다혜

   
프로필
1987년 10월 2일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출생
1999년 12월 부산에서 통영으로 이사
2000년 3월 통영여자중고
2006년 3월 이화여자대학교 입학, 바람개비 인연맺기학교 자원교사 활동 시작함.
2008년 5월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참석 시작함.
2011년 1월 자원활동 했던 단체 (사)평화캠프에서 상근. 서울남부 자원활동팀을 담당
2011년 6월 12일 담당했던 포이동 인연공부방이 있는 마을, 포이동 재건마을에 화재가 발생함. 마을의 96가구 중 75가구가 전소됨. 공부방 학생 중 10명이 집을 잃음. 마을회관 3층에서 집을 잃은 공부방 학생 10명과 함께 공동생활.
2012년 6월 밀양 송전탑 건설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을로 초록농활을 감.
2012년 9월 서울 마포구 대흥동 비새는 집에서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으로 이사 함
2013년 1월 노동당 청년학생위원회 대의원으로 출마함.
2013년 8월 평화캠프 서울지부에서 고양지부 소속으로 바꾸며, 고양지부를 만들기로 함
2013년 10월 노동당 고양당협 사무국장으로 당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함.
2014년 2월 난생처음 공직선거에 출마하기로 기자회견 함. 광역의원 존재를 처음 알게 됨. 경기도의원 후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한달동안 화정역 광장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진행함. 하루종일 화정역 광장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시민들 만나고 추모메시지 쓰는 일 등을 안내하고, 저녁에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함.
2014년 6월 경기도의원 후보 낙선함
2014년 7월 고양시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성인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 <세상길들이기> 활동시작
2014년 8월 화정1동 주민자치위원이 됨. 고양시 최연소 주민자치위원 이었음.
2014년 11월(?) 고양신문 기자 로켓단의 소개로 고양시에 사는 청년들을 알게 됨
2015년 1월 노동당 고양파주당협 위원장으로 당선 됨.
2015년 3월 강남구청의 횡포가 다시 시작되어 <포이동 재건마을 지킴이> 활동 만듦.
2016년 2월 고양시갑 국회의원 후보 출마선언 함
2016년 2월 고양청년네트워크파티 결성 함께 함
2016년 4월 낙선
2016년 6월 고양시 청년실태조사 연구 시작 함
2016년 10월 고양시 청년실태조사 결과 보고
2017년 2월 고양시 청년기본조례 제정 공청회
2017년 7월 고양시 청년정책위원회 블랙리스트 항의하는 기자회견 함
2018년 2월 노동당 고양파주당협 위원장 재선함
2018년 6월 광역의원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함
2018년 12월 7년간 다닌 직장 평화캠프를 그만두고, 노동당 대표단 선거 일반명부 대표로 출마함.
2019년 1월 노동당 대표 당선
2019년 6월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자원활동가들의 경험을 담은 책 <좋은 일 하는 거 아닙니다> 발간, 북토크
2019년 7월 노동당 대표 사퇴 (한달후 기본소득당 창당하기로 함)
2019년 9월 경기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장
2019년 12월 경기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으로 선출 됨
2020년 1월 19일 기본소득당 창당대회, 기본소득당 국회의원후보로 선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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