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8 11:55최종 업데이트 20.04.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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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랑스 어린이가 1일(현지시간) 코로나19 여파로 텅 빈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AP


3월 17일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시작된 통행 제한이 한 달을 넘겼다.

초유의 상황을 겪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 지난 한 달 동안 언론과 SNS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분노, 무능, 무용함, 감사, 감동, 연대, 위기, 기회, 전환 등이었다. 앞의 세 단어는 주로 마크롱 정부와 유럽연합을 향했고, 뒤의 단어들은 최전방에서 헌신하는 의료진을 향했으며, 마지막 세 단어는 이 보건 위기를 지렛대 삼아 전환의 계기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바이러스가 점령한 세상엔 감염학자, 의사들뿐 아니라, 철학자, 사상가, 사회학자, 작가들이 현상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함께 혼돈의 세상을 덮은 안개 속에서 빛을 밝히고자 했다. 노동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그들을 더 힘차게 짓밟는 자본가들을 상대로 싸웠다.

5월 11일, 초중고 개학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5월 11일까지 외출통제를 연장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외출통제기간의 연장은 모두 예견했던 바다.

오히려 놀라웠던 점은 5월 11일 이후 유치원부터 초중고교의 개학을 단행하면서 점진적으로 사회를 재가동 시킨다는 발표였다. 레스토랑, 까페, 영화관, 공연장 등의 영업은 여전히 금지한다는 것을 보면, 정부 역시 현재의 위험이 불과 한 달 뒤에 사라질 리 없음을 모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개학 단행 결정에 대해 대통령은 "휴교 기간 동안 학생들 간의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기 때문" 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휴교 기간 동안, 수업은 인터넷을 통해 부분적으로 이뤄져 왔다. 4월 초부터 2주간 방학으로 중단되었지만, 다시 20일 이후 개학이 되면 인터넷수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아이들은 스카이프를 통해 수업에 참여하거나, 인트라넷을 통해 교사들이 내주는 과제들을 수행하고 제출해왔다.

물론 아이들이 균일한 주거환경에 있지 못하고, 재택 수업 방식에선 부모의 개입 여부가 학습 성과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하루 사이 코로나19 확진자가 6천여 명이 발생(하고, 사망자 수가 1만7천 명을 넘어섰으며 매일 수백 명씩 사망자가 추가되는 상황에서 한 달 후 개학은 "너무 빠르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17일 기준 확진자 14만7091명, 사망자 1만9315명). 교육부는 5월 11일 이후 일률적인 개교가 아니라 "점진적" 수업 재개가 이뤄질 것이라며 성난 여론을 진화하기도 했다.

추가적 경제지원 145조... 의무 저버린 기업엔 회초리

외출통제가 한 달 더 연장됨에 따라 자영업자들(영업을 할 수 없거나, 매출이 50% 이하로 줄어든 1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긴급생계지원(1500유로, 한화 약200만 원)도 한 달 더 이어지고, 일시적 실업에 놓인 노동자들에겐 임금의 82%가 추가로 주어진다. 약 870만의 노동자가 이 일시적 실업급여의 수혜자로 집계되고 있다. 그 밖에 평소 정부로부터 생계보조금(75만~200만 원)을 수령하는 4백만 저소득층 가구에 1조3천억 원 가량의 지원금을 추가로 제공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환자 밀집 지역 의료진에겐 1500유로(약 200만 원), 기타 지역엔 500유로의 상여금과 일률적인 추가근무 수당 50% 인상이 결정된 바 있다. 대통령 자신이 "전쟁 상황"이라 명명하고도 최전선에 선 의료진에게 그 어떤 배려도 표하지 않았던 지난번 발표 때와는 달라진 대목이었다.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코로나 시기에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사람들은 택배사 직원들이었을 것이다. 배달 물량이 몰렸고, 직원들의 노동조건은 더 악화되었다. 저녁 주문, 새벽 배송이 가능한 한국상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프랑스에서도 외출통제 기간중 인터넷 쇼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은 비슷했다. 아마존 프랑스 노조가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자신들을 가동하는 기업을 잠시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지난 14일 프랑스 낭테르 법원은 아마존 프랑스에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그들의 상업활동을 최소화(의약품과 식료품으로 판매품목을 제한)할 것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업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필요한 설비를 갖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마존 프랑스는 이에 따라 정규직 6500명과 계약직 노동자 3600명을 고용하고,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영업을 중지하고, 전국 6개 지역에 있는 물류창고를 청소하고 코로나19의 위협에 대비한 안전 장치를 확보했다.

지난달부터 아마존 프랑스 노조는 자신들이 지나치게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한다며 문제를 제기해왔고 여기에 노동감독관이 개입하면서, 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내게 된 것. 법원은 사측이 노동자 안전에 대한 의무를 져버렸다고 판단하며, 노조 대표 입회 하에 작업환경을 개선할 것을 명했다.

그 기간 동안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은 100% 지급되어야 하고, 작업장 개선이 이뤄지지 않거나 지연될 때에는 1일 1백만 유로(약 13억 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 같은 법원의 결정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기업들에 따끔한 경종을 울렸고, 노동자들에겐 투쟁의 근육을 단력토록 자극했다.

많아진 시간, 축소된 소비, 전환되는 생각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홍보하는 프랑스 파리 곰 인형 ⓒ 연합뉴스/AP


개인적으론 파리에서 2주를 보낸 뒤, 기차를 타고 부르고뉴 지방의 시골에 와서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통행 제한 기간 동안 시골에서 보내기는 파리시민의 17%가 한 선택이다. 하루 10번씩 운행되던 파리-오세르간 기차가 한 번으로 줄었건만, 내가 탄 객차에 승객은 나 한 사람 뿐이었다. 지난 시간, 그 무슨 필연적 이유가 있기에, 우린 이 거대한 기차를 하루에도 열 번씩 가득 채웠던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난히 청아한 자태로 빛나는 자연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텃밭을 일구는 데로 생각이 미끄러져 갔다. 모종을 사러 가니, 전에 없이 긴 줄이 2미터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인 듯, 사람들은 저마다 씨와 모종을 정성껏 고른다. 마을 공터마다 1주일에 한두 번씩 열리던 장이 코로나19 때문에 금지된 후엔 농민들과 소비자들의 직거래가 늘었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농부의 집에 가 바구니 가득 농산물을 사오거나 농부가 주민들의 주문을 받아 동네를 한바퀴 돈다.

걸핏하면, 모자라는 무엇을 사러 마트에 들르곤 하던 습관을 버리고, 1주일에 한 번만 읍내에 나가 필요한 것들을 수입한다. 밀착되어 있던 소비의 습관이 떨어져 나가고, 자연에 눈길을 두는 시간이 늘어났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소비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중독된 소비라는 습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진정한 쓸모가 없는 상품들에 대한 중독을 끊어내고, 양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던 삶을 질적인 삶으로 전환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통행제한'의 경험은 우리의 독에 찌든 생활 방식을 해독하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이 통행제한 조치 직후 했던 말이다. 그 말 그대로 나와 내 이웃들은 행하고 있었다.

철학자이자 중국학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중국어로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위기는 유리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위험의 시간으로 다가오죠. 처음엔 눈에 띄지 않는 긍정적인 면을 감지하여 그것이 꽃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중략) 우린 이 시기에 '진정한 삶'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은 통찰력에서 얻어지죠(중략) 개인적, 집단적으로 건너가야만 하는 부정적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이런 상황은 전대미문의 가능성을 튀어나오게도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통행 제한이 실시된 프랑스에서 한 테너가 자택 공연을 펼치는 모습. ⓒ 연합뉴스/EPA

 
코로나19로 통행이 제한되면서 미세먼지가 감소한 중국에서 두 달 동안 7만7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시뮬레이션 연구결과가 있었다. 이는 현재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 사망자(17일 기준 4632명)보다 약 15배 많은 숫자다.

혹시 비슷한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진 않을까? 프랑스 보험회사 MAIF는 지난 한 달 간 교통사고가 예년에 비해 80% 가량 줄어, 1억2700 유로(약 1318억 원)의 수익이 창출되었기에 그 수익을 보험가입자들에게 나눠준다고 알렸다. 가입자들은 그 돈을 현금으로 받거나, 구호기관이나 병원에 기부할 수 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2020년 3월 한 달 프랑스 전체의 사망자 숫자는 5만7441명이었다. 2019년 5만2011명 보단 많고, 2018년 5만8641명 보단 적다. 코로나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결과적으론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도로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갔다는 사실이 현실을 다른 각도로 자각하게 한다.

아직 비극의 종말은 오지 않았으나, 그 비극이 새롭게 허락해준 시간과 공간에서 이후를 상상하고, 다른 시대를 열어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 이미 다른 세상으로 홀로 건너간 사람들이 부쩍 늘어간다. 예를 들면 150명의 시민들과 함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시민 협약' 50개 과제를 만들어 정부에 제시하고(4월 9일), 여론몰이중인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튜버 시릴 디옹(Cyril Dion)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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