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7 09:06최종 업데이트 20.03.1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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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틀비행기 15호는...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밀을 찾아 2020년 1월 13~18일 외드세레즈 애프터스콜레, 로스킬데 직업학교, 스웨덴 말뫼 시립도서관 등을 방문했습니다. 2020년 7월 29일에는 꿈틀비행기 16호가 출발합니다. http://trip.ohmynews.com/[편집자말]
 

지난 1월 15일 덴마크 교육탐방 프로그램 '꿈틀비행기' 15호 참가자들이 외드세레즈 국제 에프터스콜레 학생들을 만났다. ⓒ 권우성

 
열여섯. 랭보는 첫 시를 세상에 내놨고,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변화를 위한 학교 파업을 주도했다. 유관순은 태극기를 흔들었고, 정국은 BTS로 무대에 섰다. 열여섯은 그렇게 많은 가능성을 품은 나이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열여섯'들은 정국이나 유관순 같지 않다. 대입 레이스에 본격 발을 들인 그들은 학교-학원을 정신없이 오가고, 시간을 아끼느라 편의점 등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한다. 미세먼지 잔뜩 낀 하늘이라도 잠시 올려다볼 여유는 사치다.

'행복한 나라'의 열여섯들은 어떨까. 덴마크는 UN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늘 선두권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 행복의 비결로 학생의 자유를 강조하는 교육제도를 꼽는다.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매번 '무엇을 원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존중은 책임으로 이어진다.
 

덴마크 외드세레즈 국제 에프터스콜레. ⓒ 권우성

  

덴마크 외드세레즈 국제 에프터스콜레. ⓒ 권우성

 
'행복한 나라'에선 이런 게 고민이더라

"내가 하는 선택이 옳은지, 내게 좋은 선택인지가 고민이에요."


지난 1월 15일(현지시각) <오마이뉴스> 덴마크 교육탐방 프로그램 '꿈틀비행기' 15호 참가자 23명과 만난 오거스트(16)가 말했다. 오거스트는 의무교육 과정 9년을 마친 뒤 '옆을 볼 자유'를 선택, 고교 진학 전 1년 동안 에프터스콜레(Efterskole)에 다니기로 했다.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 학생 25%가량이 선택하는 교육과정으로, 학교마다 특색 있다. 오거스트는 그 중에서도 국제관계에 방점을 찍은 외드세레즈 에프터스콜레(Odsherreds Efterskole) 소속이다.

1907년 세워진 외드세레즈는 현재 학생 165명, 교사 20명이다.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입학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집 만들기"다. 톰 헤이도운(Tom Haegedorn) 교장은 "전교생이 가족이, 학교가 집이 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편안함만 강조한다는 뜻은 아니다. 헤이도운 교장은 "165명이 지내며 계속 대화하고 때론 갈등을 겪는다"며 "이 과정 전체가 나는 누구이고 내 가치관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배우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외드세레즈 국제 에프터스콜레 강당에서 톰 헤이도운 교장이 꿈틀비행기 참가자들에게 학교 교육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집 만들기'를 위해 입학 직후인 9월, 전교생은 스웨덴 숲으로 일주일간 야영을 떠난다. 엘린(16)은 "이때 멤버들끼리 텐트를 짓거나 음식을 만들었다"며 "이 과정에서 각자의 관점을 발전시키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거스트도 "엘린과 같은 그룹이었는데, 우린 너무 달랐다"며 "상대방을 받아들이면, 서로 생각이 달라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달라도 괜찮아

에프터스콜레의 교과과정은 크게 필수/자유교과로 나뉘며 외드세레즈의 경우 자유교과가 국제문제 중심이다. 과정은 국제(International), 경영(Business), 대응(Response) 세 가지다. 국제반은 대만, 싱가포르 등 자매학교와 교류하며 경험을 쌓고 세계 이슈를 공부하며, 경영반은 아프리카에서 스타트업을 해보거나 소셜 펀딩 등을 기획한다. 대응반은 수단 등 분쟁지역이나 난민캠프를 직접 방문해 국제인권 문제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외드세레즈 에프터스콜레 경영반 학생들이 아프리카에서 구상하는 스타트업이나 소셜 펀딩 등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외드세레즈 에프터스콜레 국제반 학생들이 외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 권우성

   
15일 경영반 학생들은 2~3월 우간다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진행할 인턴십 프로그램을 정리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국제반은 2월에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과 자매학교를 방문한 다음 우간다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이날 열린 세계시민의식(Global citizenship) 수업에서 학생들은 해외 탐방시 ▲ 홈스테이가정에서 체벌을 목격하면 어떻게 할지 ▲ 덴마크와 문화 차이 때문에 거절해야 할 때 정중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외드세레즈 학생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저마다의 길을 찾는 사람(Path finder)으로 거듭난다. 매그너스는 "파일럿(비행기 조종사)이 되고 싶어서 이 학교를 선택했다"며 "글로벌한 관점을 배우면, 파일럿으로 세계를 돌아다닐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거스트는 "기후문제에 가장 관심 있다"며 "다음달에 (이 문제 등을 탐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을 다녀오면 앞으로 이 분야에 인생을 헌신할 수 있는지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스런 질문, 덴마크스런 답변
 

꿈틀비행기 참가단의 '한국'스러운' 질문을 받은 로스킬데 직업학교 학생 마티아스(오른쪽). ⓒ 권우성

 

직업학교 학생들이 덴마크 주택에 설치되는 지붕 만드는 과정을 배우고 있다. ⓒ 권우성

   
덴마크 '열여섯'들의 선택지는 더 있다. 한국 특성화고와 비슷한 직업학교도 그 중 하나다. 마티아스(16)는 에너지효율 전문가가 되고 싶어 로스킬데 직업학교(Roskilde Tekniske Skole)를 선택했다. 성적이 나빠서 아니면 부모님 때문에 진학한 건 아닐까? 너무나 '한국스러운' 한국인들의 질문에 마티아스는 의아한 듯 웃으며 "중학교 성적은 괜찮은 편이고, 직업학교 진학은 혼자 정했다"고 답했다.

덴마크 직업학교는 실습형 직업훈련에 초점이 맞춰진 EUD, 대학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는 EUX,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HTX으로 나뉜다. EUD에 해당하는 로스킬데 직업학교는 4년 동안 6개 과정을 진행하는데 학교에만 있는 기간은 약 6개월 정도다. 꿈틀비행기 15호가 방문한 1월 17일, 마티아스는 친구들과 파이프로 라디에이터, 싱크대 배수관, 지붕을 만드는 법을 실습하고 있었다.

이후 20주간 심화과정을 밟으며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알맞은 인턴 자리를 알아본다. 이후 3년 반 정도 실습과 학업을 병행하는데, 일정 수준의 급여도 받는다. 한국 특성화고교생은 불안한 지위로 인권 침해를 당할 때도 있지만, 덴마크 직업학교 실습생은 원하면 노조 가입까지 가능하다. 마티아스는 "예전에 일주일 실습한 곳은 제가 학생신분이라 당연히 아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전제로 일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이 회사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기도 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고민한다면, 일반 고등학교 수업도 들을 수 있다. 니콜라이(18)는 "진로를 정하지 않은 상태라 직업학교 3일, 고등학교 3일씩 다니고 있다"며 "일반 고교에 진학했으면 6~7년 더 공부만 해야 하는데 좀더 천천히 가고 싶어서 로스킬데 직업학교를 택했다"고 말했다.

여기 정말 학교 맞나요
 

식품조리, 도축, 정육, 요양보호 등 분야를 청소년부터 60세까지 배울 수 있는 직업학교 ZBC. ⓒ 권우성

  

식품조리, 도축, 정육, 요양보호 등 분야를 청소년부터 60세까지 배울 수 있는 직업학교 ZBC. 학생들이 직접 손질한 육류를 판매하기도 한다. ⓒ 권우성

 
로스킬데 직업학교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또 다른 직업학교, ZBC(ZBC Roskilde-Denmark Slaughterhouese School)가 나온다. 청소년부터 60세까지 다닐 수 있고, 교육과정도 경영, 요양보호, 식품조리 등 다양한 곳이다. 학생들은 3~4년 정도 교육을 받은 뒤 졸업시험과 실습평가를 거친다. 다른 직업학교와 마찬가지로 ZBC 역시 졸업장이 곧 자격증이다.

ZBC만의 특징도 있다. 이곳은 덴마크 직업학교 중 유일하게 도축과 정육 과목이 있어 교내에 도축시설과 정육점까지 갖췄다. 정육점에선 도축·정육반 학생들이 작업한 고기와 햄류를 와인 등 다른 식품들과 판매한다. 매장 관리는 경영·유통반 학생 몫이다. 또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음식은 식품조리반에서 제조하는 식으로 교과 교육과 실습과정이 자연스레 이어져 있다.

꿈틀비행기 참가자들이 참관한 요양보호 수업도 실제 상황처럼 진행됐다. 이날은 3인 1조로 노인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졌을 때 대처하는 법 등을 실습 중이었다. 교실 안에는 모형 샤워기와 변기, 침대, 소파 등이 갖춰져 있었다. 환자역할을 맡은 학생은 가발을 쓰고 말투까지 바꿔가며 집중했고, 요양보호사 담당 학생은 가운을 입은 채 실제 상황처럼 움직였다. 나머지 조원은 두 사람을 지켜본 뒤 의견을 냈다.

그들이 부러운 이유... "학교가 재밌네"

덴마크 '열여섯'들의 삶을 엿본 한국 청소년들은 "학교 다니는 게 재밌겠다"고 입을 모았다.

특성화고 2학년에 올라가는 이현빈 학생은 "제 친구들만 해도 특성화고 다니는 걸 감추려고 하는데, 덴마크 직업학교 학생들은 소속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또 "한국은 컴퓨터 교육이면 선생님이 내준 과제대로 (컴퓨터에) 입력하고 검사 받으면 끝"이라며 "(직업교육도) 덴마크 방식이면 졸업 후 실제 일을 할 때 더 문제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월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김서진 학생은 "여기는 상급학교 진학이 경쟁이 아닌 선택이라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중2 때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한국 교육은 결과만 중요시하잖아요. 덴마크처럼 과정에서 뭔가를 배우는, 배워서 성공해서 좋은 게 아니라 배워서 실패하더라도 배우니까 좋은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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