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05 16:25최종 업데이트 18.11.05 16:25
 

조선의열단 단원들. <약산 김원봉 평전>에서 발췌 ⓒ 오마이뉴스 심규상




 

의열단이 창단되고 단원들은 맹렬한 훈련과 활동을 개시하였다. 단원들은 모두 다 일당백 (一當百)의 능력있는 청년들이다.

조국해방에 신명을 바치기로 다짐한 그들이었기에 모두 고된 훈련에 열중하였다. 사격장에 가서 권총 사격 연습을 하고, 폭탄 제조 실험에 주력하였다. 반면에 생명을 건 단원들로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의열단 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들처럼 생활했으며, 수영 · 테니스 등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심리 상태를 위해 오락도 즐겼다.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려는 것이었다. (주석 1)
 

님 웨일즈가 쓴 책 표지 님 웨일즈가 쓴 책 표지 ⓒ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의열단 단원들은 일종의 결사대 대원들이었다. 적진에 들어가 적을 죽이거나 기관을 파괴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맡은 소임이었다. 천우신조로 살아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활동이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무척 조심스럽고, 어느 측면에서는 청교도적인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멋진 스포츠형의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아주 깨끗하게 차려 입었다. (주석 2)

그들은 거의 종교적인 열광으로 테러 활동을 숭상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예 용사들로서 오직 모험적인 행동만이 능히 일제의 식민지적 통치를 뒤엎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망국의 치욕을 자기들의 피로써 능히 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여, 그들은 일제의 요인을 암살하고 특무와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것을 그들의 주요한 행동강령으로 삼았으며, 가슴 속에서 불타던 적개심은 그들에게 환락과 아울러 비극을 가져다 주었다. (주석 3)
 

항일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를 조직한 약산 김원봉(1898~1958). 그는 일찍이 의열단을 조직하여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등 여러 차례 무정부주의적 항일투쟁을 전개해 왔다. ⓒ 위키백과




 
김원봉의 활동은 더욱 바빠지고 활동영역도 훨씬 넓어졌다. 지린에 임시 본부를 두고, 베이징 · 텐진 · 난징 · 홍콩을 왕래하면서 단원 모집과 폭탄 입수에 주력하였다. 뜨거운 정열의 소유자인 김원봉은 젊은이들을 감화시키는 비상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와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누면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의열단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김원봉은 만나는 조선청년들에게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럼으로 우리가 선구자가 되어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 고 설득하였다. 그의 온몸에서 우러나오는 충정에 청년들은 감화하여 단원이 되고 죽음도 마다 하지 않았다. 

보기에는 우유부단한 것 같으나, 성질이 극히 사납고 또 치밀하여 김원봉의 말(시국담)에 감복되어 의열투쟁을 벌이게 된 김익상 (金益相) 의사 관련의 자료가 있다.

"오랫동안 초조히 불안한 중에 내탐(內探) 하고 있던 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범인이 곧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경성부근 공덕리 소생으로 어려서 삼호보성학교에 다니다가 빈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교북동 송광순 씨의 경영인 연초회사 광성상회의 고용으로 들어가 봉천지점 기관수로 간 것이 해외 웅비의 제1보였다 한다. 비행학교를 목적하고 광동으로 달려갔으나 남북전쟁으로 비행학교가 폐쇄되어 상해를 거쳐 북경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의 시국담을 듣고 그 부하가 되어 조선 ○○운동에 전력할 뜻을 품고 폭탄 2개를 몸에 가지고 일본 목수의 행색으로 국경을 넘어 경성에 들어와서 그와 같은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주석 4)
 

의열단과 김원봉 단장을 다룬 신문기사.<약산 김원봉 평전> 발췌 ⓒ 오나이뉴스 심규상




 
"보기에는 우유부단한것 같으나, 성질이 극히 사납고 또 치밀하여 오안부적의 기백을 가지고, 행동도 또한 극히 경묘하여 신출귀몰한 특기를 가졌다." 라는 것이 일본 정보기관의 분석이었다. 이에 반해 "김약산은 확실히 구별되는 두 개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친구들에게는 지극히 점잖고 친절하였지만, 또한 지독히 잔일할 수도 있었다." 는 것이 김산(金山)의 평가이다. (주석 5)

일제 경찰과 정보기관이 좋은 시각으로 볼 수 없었을 터인데도, '오안부적의 기백', '신출귀몰한 특기' 등의 기록에서 김원봉의 면모를 찾을 수 있겠다.

부하를 위해 재산을 능히 바치고도 아까와 하지 않으며, 때로 부하가 궁핍을 들으면, 자기가 입은 옷마저 저당잡히는 의백의 도량이야말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개인적인 면모와 더불어 카리스마로 의열단을 이끈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석 6)

주석
1> 한상도, 앞의 책, 27~28쪽.
2> 님 웨일즈 지음, 조우화 옮김, <아리랑>, 97쪽, 동녘, 1983
3> 이정식 · 한흥구, <항전별곡>, 164쪽, 거름, 1986.
4> 김정실, <신동아>, 1933년 12월호.
5> 한상도, 앞의 책, 33~34쪽.
6> 한상도, 앞의 책, 3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