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25 10:59최종 업데이트 17.06.07 11:53
디자인 지식, 없다. 예술적 사고능력, 딱히 모르겠다. 하지만 예쁜 것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즐기고자 하는 덕후기질은 다분하다. 무식하지만 참 성실하게 잘 다닌다. 이번 꿈틀 비행기 7호에 참가했는데 나는 이틀 먼저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해 디자인 여행을 했다.

꿈틀 비행기 견학 동안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작은 나라에서 배출되는 디자이너와 그들이 내놓는 다양한 디자인을 보면서 그들의 특성을 알게 되고 비로소 그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 맘대로 산책한 곳은 미술관, 박물관, 디자인숍, 거리 등이다.


먼저 출발한 이틀을 합쳐 1월 7일부터 17일까지 9일간 이곳저곳을 누비고 느끼며 적은 글이라 다소 길고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디자인에 문외한인 내가 적은 글을 디자인 전문가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덴마크 첫 방문을 앞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다.

혹은 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글 여행을 함께 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럼 지금부터 함께 걸어볼까? - 기자 말

아르켄 근현대미술관(Arken Museum of Modern Art)

아르켄미술관 전경 버스에서 내려서 미술관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발길을 멈췄다. 너무나 아름다워 이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 김하얀


ARKEN 현대 미술관은 코펜하겐 남서쪽에 있는 인공 해변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ishol 해변에 있는 미술관이라 그런지 멀리서 보면 마치 정박해 있는 선박 같다. 그리고 미술관 내부 뮤지엄숍 뒤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는 좁고 긴 공간은 마치 선실 내부 통로를 통과하는 것 같았다. 즉 내부 공간까지 배를 형상화했다. 건축센터에서도 느꼈듯이 건물 하나를 지을 때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섬세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르켄 미술관 주변 마을 바다와 잔잔하게 어우러진 마을. 그저 바라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 김하얀


덴마크는 나라 전체에 높은 산과 같은 곳이 없고 낮은 건물과 나무들만 죽 이어진다. ishol 해변 역시 한쪽은 수평선이, 그 반대는 지평선 같은 작은 마을이 키를 맞춰 펼쳐져 있다. 버스에서 내려 보면 자칫 심심한 마을에 휑하니 떠 있는 배 한 척 같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 모든 게 매력적이어서 미술관 건물 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마을에 자꾸 눈길이 간다. 덕분에 주변 경관에 취해 그곳을 걷느라 미술관에 들어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나처럼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루이지애나 미술관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꼭 와보기를 추천한다.

아르켄 미술관 주차장 옆 공원 미술관을 나와서 이곳을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발길이 갔다. 벤치에 앉아 마을 풍경을 바라보던 노부부는 이곳만큼이나 평화로워보였다. ⓒ 김하얀


미술관 내부에는 덴마크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작품이 액자 내부에만 있어야 한다는 틀을 깨고 액자를 튀어나온 작품, 작품은 벽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틀을 깨고 바닥까지 이어진 작품, 고정되어 감상하는 틀을 깨고 360도로 시계방향이나 팽이처럼 돌아가는 작품을 관람객이 같이 움직여 가며 감상하는 작품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작품 수도 400점 이상 되고 그 대부분이 눈길을 붙잡으므로 반나절이나 한나절 이상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안에 위치한 카페도 환상적인 전망을 자랑하나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대기할 정도로 인기가 많으므로 아침에 와서 커피 한잔하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르켄미술관 카페 내부 모습 아침이라 아직 한산하다. 모던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보는 외부 전경 역시 너무나 멋지다. ⓒ 김하얀


거리, 집 그리고 걷기

덴마크 뿐 아니라 유럽 거리를 걷다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 무시무시하고도 무식한 창살이 없다. 둘, 창문 앞에 식물이나 작은 인테리어 소품을 놓아둔다. 셋, 밖에서 내부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중 세 번째 특징은 유독 덴마크에서 도드라져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마치 '자, 보세요~' 하는 것처럼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 자기네 집 안으로 잡아당긴다.

애프터스콜레의 식당 안 풍경 학생 식당의 유리창에도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스투키가 놓여져 있다. ⓒ 김하얀


그 시선 끝에 보이는 것은 먼저 예쁜 창틀과 깔끔한 유리창, 그리고 그 창틀과 어울리는 식물들과 창 너머로 보이는 따스한 노란빛 조명 아래 소박하게 걸려 있는 그림 한두 점, 책상, 단순하지만 멋진 디자인의 스탠드, 휘게(hygge)를 느낄 수 있는 의자 등이다.

애프터스콜레의 교무실 학생과 교사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교무실이다. 우리나라의 딱딱한 사무실같은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따뜻한 노란 조명과 편안한 의자, 창가의 식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 김하얀


루이지애나미술관에서 작품과 경관에 이끌려 주말 폐관시간인 오후 6시가 다 되어 나왔다. 겨울이면 3시 30분 정도면 조금씩 어둑해지는 이곳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기차역에 가기 위해 한밤중 같은 거리를 지나가야 했다. 처음엔 깜깜한 곳을 혼자 걸어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는데 이내 그 마음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기차역까지 가는 길 양옆에 줄지어 있는 집안 모습들이 가로등보다 더 밝고 따스했기 때문이다. 6시를 막 넘긴 주말이라 다들 저녁 준비를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책을 읽거나 가족과 TV를 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동화같이 꾸며놓은 집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니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여행 첫날 이곳을 방문했다가 이러한 경험을 했는데 그때부터 그들의 밝고 환하며 커튼이 없는 창문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꿈틀 비행기 견학을 하며 덴마크인의 특질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길 다들 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행인이 그 순간을 찍는 게 쉽지 않았다.그렇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 김하얀


먼저 그들의 창문에 커튼이 없는 이유는 우선 일년 중 맑은 날이 50일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햇빛이 귀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햇빛을 충분히 느끼기 위함도 있겠지만, 공동체 의식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아파트 문화가 없었던 예전에는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왕래가 잦았었고, 딱히 대문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아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낯선 남자가 같이 있으면 도무지 무서워 같이 타지 않고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집에 들어간다.

집안 곳곳에도 층을 가리지 않고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암막커튼까지 달게 되었다. 남을 믿지 못해 쇠창살, 블라인드에 암막 커튼까지... 개인의 사생활도 중요하지만 참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되었을까?

부끄럽지만 나 역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열 평 남짓한 원룸에 살면서도 블라인드와 암막 커튼을 달고 살고 있음을 고백한다. 혼자 살게 되면서 그걸 남이 알게 되는 게 무서워서 이사 오자마자 달게 되었다. 내 사례만 봐도 내가 사는 곳을 가리게 되는 커튼이 공동체와도 관련이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노란 조명과 헤이하우스 노란 빛은 따뜻하고 아늑하다. ⓒ 김하얀


그리고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바로 노란 조명이다. 우리나라는 모르긴 몰라도 90% 이상이 주 전등으로 주광색 조명을 쓰고 있다. 너무 희다 못해 푸르게까지 보이는 조명을 쓰는데 여기서 나오는 빛의 느낌은 노란 조명의 그것에 비해 차갑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촛불집회에서 흰 LED 촛불보다 노란 빛이 나는 실제 촛불을 밝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도 모르게 노란 조명이 주는 따뜻한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덴마크 가정의 조명 조명은 마치 촛불을 켠 색과 비슷하다. 이런 따뜻한 조명이 따뜻한 감성을 낳고 나아가 공동체적 의식까지 생겨나게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한마음으로 염원하는 일에 촛불을 드는 것처럼 말이다.

아르켄 미술관 태피스트리 중 일부 먼 나라에서 작품을 보다 우리나라 생각이 간절했던 순간이다. ⓒ 김하얀


불현듯 철사 원숭이와 솜털 원숭이 실험이 떠오른다. 철사로 된 원숭이 인형에게만 젖을 달아주고, 솜털 원숭이 인형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실제 원숭이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느끼게 했을 때 그들은 차가운 철사 원숭이 인형의 젖을 찾는 대신 따뜻한 솜털 원숭이 인형의 품에 안겼다.

이것은 생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선 배고픔을 채우는 게 아닌 따뜻함과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꿔 말하면 개인이 따뜻한 환경에서 생활할 때 받는 정서적 만족감은 단순히 식욕을 충족할 때의 그것보다 훨씬 더 충만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사회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가정이라는 안락한 공간을 통해 충분히 치유 받는다면 전체적인 사회의 모습 역시 안정적일 것이다. TV만 틀면 먹방 일색인 지금, 우리에겐 맛있는 음식이 아닌 정서적 허기를 채울 따뜻한 공간이 필요하다.

덴마크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그저 단순하고 예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고, 내 가족과 사랑하며 살아갈 공간을 꾸미는 과정이고 그것을 타인과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적 의식에 바탕을 둔 디자인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닌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게 창살과 커튼으로 꽁꽁 닫고, 내부 공간보단 내 개인을 치장하기 위해 바쁘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여행의 출발은 그들의 예쁘고 부럽기만 한 북유럽 디자인 산책이었는데 그것의 본질은 사람, 사회, 공동체, 내면의 행복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어쩌면 그곳의 맛만 본 것일지도 모를 테지만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덴마크에 있거나 덴마크에 다녀왔다면 그곳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었나 궁금해진다.

혹 덴마크 여행을 앞두고 설렘을 갖고 이 글을 접한 사람이라면 내 생각대로 덴마크를 느끼기보단 이 글을 정보 삼아 더 풍요롭게 덴마크를 접하고 오길 바란다. 이제 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삶과 공간의 디자인에 대해 고민해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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