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23 13:56최종 업데이트 17.06.07 11:51
디자인 지식, 없다. 예술적 사고능력, 딱히 모르겠다. 하지만 예쁜 것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즐기고자 하는 덕후기질은 다분하다. 무식하지만 참 성실하게 잘 다닌다. 이번 꿈틀 비행기 7호에 참가했는데 나는 이틀 먼저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해 디자인 여행을 했다.

꿈틀 비행기 견학 동안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작은 나라에서 배출되는 디자이너와 그들이 내놓는 다양한 디자인을 보면서 그들의 특성을 알게 되고 비로소 그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 맘대로 산책한 곳은 미술관, 박물관, 디자인숍, 거리 등이다.


먼저 출발한 이틀을 합쳐 1월 7일부터 17일까지 9일간 이곳저곳을 누비고 느끼며 적은 글이라 다소 길고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디자인에 문외한인 내가 적은 글을 디자인 전문가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덴마크 첫 방문을 앞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다.

혹은 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글 여행을 함께 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럼 지금부터 함께 걸어볼까? - 기자 글

덴마크 디자인 센터(Denmark Design Center)

오자와 료스케의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제목처럼 그들이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사는 이유는 의자를 간단한 가구가 아니라 시간과 돈을 들여 갖춰놓는 '소중한 장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가 마음의 풍요와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우리나라는 왜인지 모르지만, 첫 월급으로 부모님 빨간 내복을 사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의자를 사는구나 하다가도 '의자가 의자지 뭐야'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덴마크에 와보니 어딜 가나 독특한 디자인의 의자가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마침 이곳에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덴마크 의자 디자인전을 열고 있었다.

덴마크 의자 전시회 사진 외에도 110여개의 덴마크 의자와 함께 의자의 발달과 역사를 알 수 있다. ⓒ 김하얀


덴마크에 와서 여러 의자에 앉아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덴마크 의자는 디자인은 물론 앉기도 편하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이 예뻐서 산 의자가 허리에 무리가 간 경험이 있는 나는 예쁜 디자인 의자가 동시에 편안함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는 디자인뿐 아니라 실용성과 안락함을 당연하게 고려해서 의자를 만드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의자는 그들에게 앉는 도구만이 아닌 하나의 안락한 공간이었다. 디자인 센터 관람 중간에 쉴 수 있는 의자가 있는데 모두 다른 색과 디자인의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 앉아보았다.

그 안락함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책 내용이 이해되었다. 위 책으로 다시 돌아와 저자에 따르면 '인생'은 바꿔 말하면 '시간'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야말로 그 사람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의자는 내가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이는 의자라는 공간을 포함한 개인이 사는 전체 공간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꾸미면서 작은 기쁨이 쌓여 개인 생활의 질을 높이고 또 거기서 풍요로운 마음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아름답게 꾸민 공간은 창문을 통해 타인과 공유하면서 나 같은 여행자마저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참고로 내부에 위치한 뮤지엄숍에선 디자인 서적, 디자인 소품, 디자인 그릇 등을 판매한다. 여러 박물관 뮤지엄숍을 다녀봤지만 이 곳의 제품 디자인은 수준급이다. 뮤지엄숍을 구경하는 것도 마치 박물관 전시를 관람하는 것만큼 흥미롭다.

혹시 드로잉에 관심있다면 드로잉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책을 이곳에서 판매하니 꼭 사보길 바란다. 이후에도 일정이 있어 일단은 찜해놓고 여행 마지막날에 사야지 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니 통탄할 만큼 아쉽다. 역시 결심했을 때 사야 후회가 없다.

루이지애나 미술관

부끄럽지만 나는 덴마크에 오기 전 안데르센이 덴마크 사람인 줄 몰랐다. 덴마크에 대해 아는 바가 '북유럽이다' 말고는 별로 없어 찾아보던 도중에 내 눈에 딱 들어온 사진이 있었다. 바로 이 미술관 전경 사진이다. 이 사진이 '이건 가야 해!'라는 굳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고 소개된 이곳은 현대미술관이라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경만 보아도 본전치기라고 했던 곳이다. 그런데 웬걸, 상설전시인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들이 꽤 볼 만 했다.

작품 대부분이 아버지에 대한 상처, 어머니에 대한 연민, 그리움 등으로 엉켜 탄생하였다. 작가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영향으로 그의 자아관 역시 상처와 아픔으로 굉장히 뒤틀려 있어서 그런지 어느 작품 하나 마음 편하게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며 그녀의 삶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나의 유년시절과 엄마를 떠올리니 가슴이 저려왔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얼핏 보면 꿈 많은 소녀를 표현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소녀의 오른쪽 다리는 접힌 게 아니라 다리가 없다. 대신 그의 오른쪽 어깨에 목발이 있다. 그것을 통해 균형을 잡고 있다. ⓒ 김하얀


특히 작품 '거미'는 들어갈 때 보고 나오는 길에도 여러 번 작품 주변을 돌아보다 나왔다. 미술관의 압도적인 전경에 이끌려 이곳에 온 덕분에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작품을 만나게 되어 참 좋았다. 그래서 더는 미술관 전경이 예쁘지 않아도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 아름다운 바다와 야외 조형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반겨주기까지 하니 참으로 꿩 먹고 알 먹는 산책 아닌가. 하지만 멋진 조망에 휘둘려 그녀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난다면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의 작품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 정서인 '한'과 맞닿아 있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한을 승화하고 몇 십 년에 걸쳐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에서 멋진 예술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40분 넘도록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훔레백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에 펼쳐지는 건축물의 향연을 빼놓을 수 없다. 전원 풍경에 조그마한 집이 스머프 마을처럼 이어지다가 또 어느 순간 현대식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희한한 건 그런 신·구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건축양식으로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조화롭다. 그래서 가는 내내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한 궁금증은 나를 건축센터로 이끌게 했다.

덴마크 건축센터(Denmark Architecture Center)

덴마크의 신·구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이유가 뭘까? 센터가 여는 시간에 맞춰 찾아간 건축센터 자체 외관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덴마크인들이 추구하는 건축철학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곳에선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어떠한 기준이나 철학에 따라 건물을 짓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건축센터는 상설전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간별로 특별전시를 했다. 내가 간 기간엔 'Our Urban living Room'이란 주제로 코펜하겐이 산업 도시에서 '도시의 거실'로 진화하는 과정과 노력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 자체가 커다란 목재 책장형식으로 만들어져 그 사이사이에 코펜하겐에서 중점을 두어 지은 건물들에 대해 소개를 했다. 마치 커다란 도시 자체가 집안의 책장 같은 느낌을 주어 독특했다. 그들은 한 건물을 지을 때 항상 그 주변 건물과의 조화, 사회적 적합성을 생각하고 짓는다고 한다.

덴마크디자인센터 내부 도시 전체가 커다란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주었던 특별전시 ⓒ 김하얀


갑자기 진주성 옆에 어울리지 않게 떡하니 지어진 기다랗고 흉물스러운 모양의 모텔건물들이 생각이 났다. 아름다운 진주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포기하고 남강쪽으로만 찍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건물을 지을 때 진주성과의 조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이러한 건물간의 부조화는 우리나라에 무수히도 많다. 크고 작은 성냥갑 같은 주택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거리에 모든 일조량을 덮고도 남을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비슷한 예다.

문화재나 내 이웃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만 이익이 된다면 사회적인 조화나 배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건축적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거리라는 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산, 들과 바다는 아름답지만 건물 간의 조화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남아 있던 경주의 기와 마을은 지진으로 기와가 와르르 떨어졌다. 기존 기와값이 비싸 함석지붕, 양철 기와 등으로 기와를 대신해 얹어서 옛집의 품격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옆 건물과의 조화,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다면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그런 뉴스만 접하다 이 건축센터에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보니 부러운 생각만 든다.

* 산책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