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01 18:22최종 업데이트 17.06.07 11:10
취소할까? 취소하면 취소수수료가 엄청날 텐데.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덴마크 견학여행 프로그램인 <꿈틀비행기 5호>에 탑승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담당자의 마지막 공지를 보고 "오홋~ 가자!"라고 마음을 굳혔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바쁜데 이거 괜히 신청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로 취소의 유혹이 솟아올랐는데 수수료 부담이 유혹을 간신히 누르고 있던 터였다. 담당자의 공지는 이른바 열린 감옥으로 불리는 수비수거드(Søbysøgård) 주립 교도소(열린 감옥) 탐방이 추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독서토론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 자랑을 했다.

"애들아~, 나 열린 감옥 보러 간다. 토론했던 책,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에서 나오는 열린 감옥에 대한 내용과 실제 모습은 어떻게 다른지도 확인해 볼게. 다녀와서 함께 이야기해보자."

심장이 다시 파닥파닥 뛰었다.

작년에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를 읽고 격리와 처벌, 그리고 인간다움의 회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공인 무기수 '래리'가 바깥세상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감옥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모순을 그 책은 담고 있었다. 그 모순을 현실사회에서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으니 심장이 뛸 수밖에.

열린 감옥이라니, 단어 조합부터 '틀렸'잖은가. 감옥은 닫혀야지. 감옥이란 그래야지. 수감자들이 탈출을, 또는 자유를 갈망하도록 닫혀야 감옥이지.

12년형 받은 범죄자, 교도관 동행 없이 홀로 마을에 나간다

남덴마크 오덴세로부터 남쪽으로 1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의 입구. ⓒ 안홍기


꿈틀비행기 5호의 25명이 7박9일 일정(7월25일~8월2일)으로 덴마크의 각급 학교와 정부기관, 사회시설 등을 둘러보았다. 일정 중 열린 감옥 방문이 가장 기대되었다. 7월 29일 오전, 우리를 태운 버스는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 근처에 있는, 열린 감옥이 있다는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느 건물이 감옥인지 알 수가 없다. 열린 감옥을 찾아왔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철조망 있는 담장과 경비원이 있는 다소 높은 망루를 찾고 있었다.

교도관 복장을 한 이가 담벼락 앞에서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고 있어 이곳이 감옥인가 했다. 같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덩치 큰 남자가 설마 수감자? 일상복을 입고, 문밖에서 교도관과 호탕하게 웃음을 나누고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은 '톰', 수감자가 맞다. 마약밀매로 1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5년째 복역 중이란다.

톰은 교도관과 함께 우리를 안내했다. 수감자의 안내를 받으며 감옥을 돌아볼 줄이야! 톰은 교도관 카리나씨와 번갈아가며 열린 감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질문에 답을 해줬다. 어지간한 대학교 기숙사보다 나아 보이는 시설에 살며, 모든 문은 감시자 없이 열려 있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받는 보수로 어느 정도 경제활동이 가능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고, 더구나 마을로 나가는 것 또한 자유롭단다(교도관 동행 없이). 감옥에서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 말고도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을로 나가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열린 감옥이라는 이름값에 걸맞다 싶어서 약간 신기한 정도였다.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의 열린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 있는 톰. 열린교도소 내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 안홍기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의 교도관 카리나 페더슨씨. ⓒ 안홍기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자기 마을에 일반적인 감옥이 아니라 '열린' 감옥이 들어선다는데, 그리고 그곳의 수감자들이 교도관의 동행 없이 마을을 자유롭게 다니며 자신들과 같이 수업도 듣는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카리나 교도관은 마을 사람들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답했다. 가능하다고 그게? 도대체 덴마크 사회는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기에, 어느 정도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우리가 말하는 '혐오시설'에 조차 이토록 긍정적인 거지? 마을에 시설을 들이는 것이야 정부가 강행하면 어쩔 수 없다 해도, 자신들 생활권에 수감자들이 들어와서 함께 하는 것까지 받아들이다니, 놀라웠다.

톰에게 질문했다. "당신들이 감옥 밖을 나섰을 때 마을 사람들이 약간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가?" 아니란다. 이어지는 톰의 말이 이 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싶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감수할 것이다."

자신은 죄를 지었으며 그로 인한 불편한 시선은 감수하는 것이 맞다는 대답에서 톰의 높은 자존감을 읽을 수 있었다. 열린 감옥에서 지내면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온전하게 수용된 경험을 했기에,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길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이 제도의 실제적 효과 같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옥

열린 감옥을 둘러보면서 래리를 생각했다.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의 실제 주인공인 래리는 겨우 17살에 살인 혐의를 인정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지옥과 같은 독방에서 보낸다. 그러던 중 지역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로라 베이츠가 마련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10년 동안 그 수업을 받는다.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 겉표지 ⓒ 덴스토리


10년 만에 독방에서 풀려난 래리는 스스로 '자유롭다'라고 말한다. 석방되거나 형량이 줄거나 하는 외부적인 변화는 없지만 삶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 것이다. 실제로 이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교도소 내의 폭력이 상당히 줄었으며 재소자들의 변화가 크게 있었다 한다.

로라 베이츠는 수감자들이 사회로 돌아갈 때 덜 폭력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래리의 변화를 보며, 좀 더 일찍 이런 만남을 가졌더라면 교도소에 수감자가 1명이라도 줄었을지 모르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피해자가 1명이라도 더 살아있을지 모를 일이라고 책에 썼다. 사회에서 받는 교육과 관심이 예비 수감자를 줄인다면, 감옥에서 경험한 인간적인 만남이 예비 사회 구성원을 좀 더 나은 인간이도록 하는 것이다.

톰과 래리는 특별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맞이한 사례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래리가 한 교수의 개인적 노력으로 정신적 자유를 경험하고 남은 삶을 긍정했다면, 톰은 덴마크 사회의 합의된 가치와 안정적인 제도 속에서 현실적인 자유까지 경험하며 새로운 삶을 다시 구상하고 있었다.

사회적 합의는 개인의 헌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톰이 일상복을 입고 비교적 일상적인 삶을 '감옥'안에서 살고 있는 것은 덴마크 사회가 톰에게 주홍글씨를 새기지 않기로 합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죄 값만큼의 책임을 물을 뿐, 그 이후는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능할까 싶은 이상적인 제도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도 이런 모델, 가능하지 않을까?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 열린교도소 생활관에 있는 재소자 톰의 방. 서울의 고시원보다 넓은 방에 책상, 냉장고, 수납장, 세면대가 갖춰져 있고, 노트북PC와 캡슐커피기계 등이 갖춰져 있다. ⓒ 안홍기


교도관 카리나씨에 따르면, 덴마크의 주립 감옥 16개중 9개가 열린 감옥이며 전체 수감자의 약 절반가량이 열린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한단다. 열린 감옥에서의 재소자 규정위반율은 3%이며 도주율은 0.1~0.3%로 매우 낮고, 출소자들의 재범률도 전통적인 감옥 출소자들보다 현저히 낮다고 한다.

귀국하고 나서 바로 이틀 뒤에 예정된 독서토론동아리 수업을 했다. 졸리고 피곤하여 연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했다. 열린 감옥 이야기를 어서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고등학교 2학년인 이 아이들은 보충수업을 마치고 지칠 만도 한데 한껏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정말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질문이 쏟아진다. 아는 대로 답하고 내가 물었다. 아는 대로 답하고 내가 물었다. "재범률이 낮은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던 학생들이 말을 한다. 사회가 편견 없이 대해 줘서 자연스럽게 인간성 회복이 되었을 거라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으므로 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의 변화가 생겼을 거라고. 이어서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는 평소 갖고 있던 범죄자에 대한 당연한 불편함이 이해로 바뀌었다면 '열린 감옥 탐방기'를 듣고서는 사회로 나올 '그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분명해졌다고 말을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다. 암, 그렇지.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 열린교도소 생활관 중앙복도에 걸린 알림판. 재소자들끼리 설거지 당번, 케이크 굽기 당번 순서를 공지해놨다. ⓒ 안홍기


나와 동아리의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그게 가능해? 어떻게?' 의 답이 만들어졌다. 기본적인 물음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철학에 구성원 모두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 여겨졌다. 이런 기본적인 철학에 합의를 했으므로 교육, 복지, 경제 등 여러 분야의 제도를 마련할 때 자본논리나 이념논리에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동아리수업에 참가한 학생이 소감을 밝혔다. 부럽긴 한데, 그 사회에서 가능하다면 한국사회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이상'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지 참 다행이지?

'이상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 '이상'을 확인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어른들이 앞서서 꿈틀대며 길을 닦고 있을 테니 너희들이 이상을 실현해주렴.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의 열린교도소 생활관 내 거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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