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24 15:42최종 업데이트 17.06.07 11:28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해서 만난 화창한 하늘. 하루에도 몇번씩 비가 쏟아지기 때문에 이런 날에는 사람들의 표정도 달라진다고 한다. ⓒ 김태유


"애프터스콜레에서 자유란 '내가 선택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것은 덴마크 방문 셋째 날인 지난 8월 12일 오후 애프터스콜레 협의회를 방문했을 때였다.


여러 학교를 방문하여 관계자의 진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아이들을 인터뷰했지만 무언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교육 기관에 근무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론적으로 선진국들의 교육을 많이 접한 탓인지 특별히 새롭지 않다는 생각도 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애프터스콜레 협의회장의 '자유'와 '아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이 생각의 파도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라는 부제가 붙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책을 접하고 저자 강연도 들었다. 주제가 책 제목과 같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였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는 행복이 아닌 자유였다. 덴마크 아이들이 누리고 있다는 교육제도, '곁을 볼 수 있는 자유' 애프터스콜레가 바로 그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탄 덴마크행 비행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일 자정 무렵,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덴마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꿈틀비행기 6호는 숲유치원에서 덴마크 교육부까지 다양한 교육기관을 방문하고 조별 자유취재도 하는 7박 9일의 탐방프로그램으로 저저인 오연호 대표가 모든 일정에 함께 한다는 조건이 큰 매력이었다.

처음으로 타보는 유럽행 비행기였다. 장시간 움직이지 못해 다리가 퉁퉁 부어가는 긴긴 비행시간 동안 몸을 비틀고 뒤척이다 잠에서 깰 때면 생각하곤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먼 길을 가고 있는 걸까?'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자유'였다.

힘들고 지루한 비행시간 동안 그 단어는 나에게도 작은 자유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어볼 수 있는 자유'.

덴마크의 숲유치원. 다리만 보이는 분은 60세가 넘은 남자선생님으로 20년이 넘게 이 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 사과쥬스의 재료를 마당의 사과나무에서 따고 있다. 나무 속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숨어있다. ⓒ 김태유


30명이 넘은 참가 인원과 세 명의 스태프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단순 여행도 아니니 길을 잃기가 더 어려운 여정이다. 왜 문득 그런 자유를 꿈꾸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릴 무렵에는 그 말이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후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것은 20대의 일이다. 제대로 된 진로교육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도 어떤 직업으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20대 후반까지 헤매고 방황했다.

그 시기에 가장 동경했던 나이가 바로 40대 후반이다. 그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길이 다 선명하게 보이고 안정감 속에서 단단하고 깊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 나이에 다시 낯선 땅에서 길을 잃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선택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것이 자유다.'

그날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꾸 말을 건네는 것 같았지만, 명확하지 않았고 웅얼거리는 느낌이었다.

프레드릭스버그 정원 ⓒ 김태유


길을 잃은 순간,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

이어진 주말 일정은 조별 자유취재였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자유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도 조원들의 희망지에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시끌시끌한 다른 조와 달리 우리 조는 특별히 원하는 곳이 없으니 서로 말하라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 즈음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자유'를 느껴보고 싶다고. 의외로 다들 흔쾌한 반응을 보여서 전철 내릴 역과 고등학생 조원을 위한 박물관 한 곳만 정하고 나머지 시간은 도심을 헤매고(?)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사전모임이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아침, 가야 할 장소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우리 조는 가장 빨리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정말,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숙소에서 전철로 다섯 정거장을 가면 코펜하겐 시내가 나오는데, 두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지도와 역 이름이 모두 달랐다. 불안한 마음에 앞 좌석의 유모차를 밀고 탄 젊은 여성에게 코펜하겐 시내 지도를 내밀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은 지도의 한가운데. 그런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음 정거장 위치는 지도의 끝에 가까운, 이미 코펜하겐을 벗어난 옆 도시였다. 우리는 시간 맞춰 타기도 힘든 익스프레스 전철을 타고 단 세 정거장 만에 코펜하겐을 벗어나버린 것이다.

우리 조 다섯 사람은 허둥지둥 놀라서 그녀를 따라 내렸다. 하늘색 뾰족 모자를 쓴 예쁜 눈의 아가는 우리를 보고 호기심에 눈을 빛내며 까르르 웃고 손뼉을 쳤다. 당황하는 우리들을 보며 젊은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며칠 더 머무르는 일정인가요?"

그녀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더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 도시에는 정말 아름다운, 왕의 여름 궁전이 있다고 했다. 걸어서 10분이면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며 여기까지 왔으니 대신 이곳을 돌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유모차를 밀면서 직접 입구까지 안내해주었다. 가는 동안 우리가 취재하려던 모든 내용을 인터뷰해주었음은 물론, 이곳에 얽힌 왕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아이가 자기가 매단 공갈젖꼭지를 찾아보고 있다. 아이의 아버지가 인터뷰와 더불어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김태유


길을 잃은 덕에 만난 횡재... 내 삶을 돌아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프레드릭스보그성의 정원이었다. 산과 숲이 거의 없는 덴마크에서 드물게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름드리나무와 넓디넓은 잔디정원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호수들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정원을 느리게 산책했고 악기를 가져온 이는 작은 뜰에서 플루트를 불었다. 데인족의 풍습이라는 공갈젖꼭지를 매달아 놓은 나무도 보았고, 전형적인 유럽의 카페에서 생각보다 훌륭한 가격에 점심식사를 했다.

나는 분명히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멋진 경험이었다. 그 순간에 누군가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고, 기꺼이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가고자 한 곳은 아니었지만, 비교할 수 없는 어떤 하루를 보냈다.

그날 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은 곁을 볼 수 있는 자유와 같은 것이었다. 길을 잃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도에서 가야 할 지점을 다시 확인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며,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 삶을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가 없는지,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시간이 필요했던가 보다. 젊은 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는 진작 이별을 해야 했다. 덴마크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공갈젖꼭지를 나무에 매달며 자신의 한 시절에 정식으로 이별을 고한 것처럼.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나는 시내 관광에 따라나서지 않았다. 편한 신발을 챙겨 신고 작은 수로를 따라 나 있는 소박한 동네 산책길을 걸었다. 물그림자를 가르며 잿빛 오리떼가 무심하게 줄지어 지나가고, 은발머리 어린 남자아이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수로에 담근 귀여운 발을 동당 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조용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자유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란 볼 수 있는 것이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며, 나를 안다는 것은 삶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니체가 떠올랐다. <우상의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 가지 과업이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고 쓰는 것이라 했다. 우리의 교육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이 '보는 것'이리라. 깊이 천천히 응시하는 눈, 평온하며 인내하는 눈을 가지는 것.

마을 산책길 옆 작은 수로. 도시 곳곳에 수로와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 김태유


'자유'...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 국가인 이유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 국가인 이유를 나는 자유에서 찾았다. 삶에서 매우 중요한,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에 잠시 망설일 수 있는 자유. 익숙하고 편안한 부모 품을 떠나 낯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옆도 바라보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덴마크의 아이들.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자유학기제 속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갈 수 있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 삶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결심한 몇 가지가 있다. 운동과 글쓰기, 일과 여가 사이에 균형을 맞출 것, 마지막으로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직장을 오래 비우고 떠난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고 홀로 떠난 첫 여행이었다. 설렘도 있었지만 염려스러움도 함께 가지고 떠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돌아올 때 혼자가 아니었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낯선 길에서 기다려 온 또 다른 나를 만나' 함께 손잡고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싶은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내년 1월에 출발하는 다음 꿈틀비행기에 올라보시라. 진정한 행복의 이유를 묻고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 안에 이미 꿈틀거리고 있었던 또 다른 덴마크를 발견하게 될 터이니.

애프터스콜레란?

애프터스콜레는 덴마크에만 있는 독특한 교육시스템이다. 중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희망하는 경우 갈 수 있는 1년 과정의 인생설계학교다. 학교마다 다양하게 특화된 교육과정을 가진 애프터스콜레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기르기 위하여 아이들이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이 원칙이다. 덴마크에는 250여개의 애프터스콜레가 있으며 약 3만여명의 아이들이 고등학교 대신 애프터스콜레로 진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올해 경기도 강화에 꿈틀리 인생학교가 문을 열었다. 현재 30여명의 학생이 '옆을 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며칠 전 덴마크에서 한 여학생이 한국의 애프터스콜레인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을 위해 입국했다.


덴마크의 교육부. 왼쪽의 삼각형 건물들이 덴마크 교육부 건물이다. 카페처럼 커다란 유리창으로 외벽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 김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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