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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ㆍ1독립선언 후 총독부에 구치되어 재판을 받을 때 일인 검사가 “앞으로도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라는 심문에 “물론 그렇다.”고 결연히 말하였다. 생과 사, 투옥과 석방의 갈림길에서 강고한 의지를 밝힌 지사였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였다. 업적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샘 해지지 않는’ 독립운동가, ‘기타’ ‘등’으로 배제되고 망각된 33인 민족대표의 일원이다. 근곡 박동완 지사의 이름 앞에 하나의 수식어가 필요하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를 찾고자 평전을 쓰게 되었다.
참여기자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42] 그의 동포 사랑의 정신은 심도가 매우 높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41] 우국정성의 글을 쓰고 민족대표 33인으로 구속되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40] 그의 생애는 불교용어인 ‘처염상정(處染常淨)’ 그대로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9] 그는 <한인기독교보>에 무척 정성을 쏟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8]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최후 승리일 것을 의심치 않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7] 정의에 기반한 사랑과 화합만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6]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은 여기저기서 불러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5] 병든 육신을 신앙심으로 지탱하면서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4] 그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3] 그로 인해 와히아와 교회는 나날이 부흥하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2]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떠난 길이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1] 일제는 신궁을 세우고 치안유지법을 통해 민족운동을 더욱 옥죄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0] 좌우협동과 합작에 의한 민족유일당ㆍ민족단일당 결성운동 등에 큰 촉매제 역할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9] 민족운동 대표기관의 설립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8] 민족운동을 분열ㆍ약화시키려는 고도의 식민지 지배정책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7] 박동완은 일체의 글쓰기를 중단하고 직접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6] 총독부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고 뒤쫓는 시선이 많아졌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5]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박동완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