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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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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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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기미년 3ㆍ1독립선언 후 총독부에 구치되어 재판을 받을 때 일인 검사가 “앞으로도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라는 심문에 “물론 그렇다.”고 결연히 말하였다. 생과 사, 투옥과 석방의 갈림길에서 강고한 의지를 밝힌 지사였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였다. 업적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샘 해지지 않는’ 독립운동가, ‘기타’ ‘등’으로 배제되고 망각된 33인 민족대표의 일원이다. 근곡 박동완 지사의 이름 앞에 하나의 수식어가 필요하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를 찾고자 평전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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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화지언행합일(知言行合一)의 실천적 삶의 궤적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42] 그의 동포 사랑의 정신은 심도가 매우 높았다

    그의 동포 사랑의 정신은 심도가 매우 높았다.<내가 사랑하고 싶은 조선 것>이란 글에는 "특히 애정이 풍부"란 부제가 달려 있다. 우리 조선사람처럼 진실한 사랑심이 많은 사람은 못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하자...
    22.01.30 09:51 ㅣ 김삼웅(solwar)
  • 41화무궁화 아호로 상징되는 민족혼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41] 우국정성의 글을 쓰고 민족대표 33인으로 구속되었다

    근곡 박동완 선생이 긴 세월 기름진 곳, 양지쪽에 곁눈 팔지않고, 무사안일도 취하지 않고, 지성일관ㆍ초지일관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정신의 고갱이는 무엇일까, 질풍노도의 시대에 평생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고결하게 살 수 있었...
    22.01.29 11:30 ㅣ 김삼웅(solwar)
  • 40화1941년 55세로 소천하시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40] 그의 생애는 불교용어인 ‘처염상정(處染常淨)’ 그대로였다

    박동완이 하와이에서 잡지를 발행하고 교민사회의 화합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을 즈음 국내에서는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토해내고 있었다.1937년 6월 그동안 묵인해왔던 온건하고 타협적인 흥사단 계열의 실력양성단체이던 ...
    22.01.28 15:54 ㅣ 김삼웅(solwar)
  • 39화마지막 열정 ''한인기독교보'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9] 그는 <한인기독교보>에 무척 정성을 쏟았다

    그는 <한인기독교보>에 무척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된 일에 감사하였다. 창간호의 <편집 뒤의 말>에 그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꼭 10년 만에 다시 글을 쓸려고 붓대를 잡으니 이런 생...
    22.01.27 15:39 ㅣ 김삼웅(solwar)
  • 38화월간 '한인기독교보' 발행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8]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최후 승리일 것을 의심치 않고

    박동완은 언론ㆍ기독교ㆍ독립운동의 마치 세 솥발과 같이 정립(鼎立)된 인격체라 하겠다.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기둥이고 버릴 수 없는 과제이었다. 그는 다시 언론인으로 돌아왔다. 49세인 1934년 7월 1일, <한인기독교...
    22.01.26 15:45 ㅣ 김삼웅(solwar)
  • 37화교민통합 위해 거듭 노력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7] 정의에 기반한 사랑과 화합만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박동완은 야만이 지배하던 시대에 한국과 미국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경계인으로 살아야하는 양서류의 운명이었다. 민족대표의 역사의식과 도덕적인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세상의 한 구석이라도 정화시키고자 하는 기독교적인 ...
    22.01.25 15:39 ㅣ 김삼웅(solwar)
  • 36화3개월 고국방문, 각지에서 연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6]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은 여기저기서 불러냈다

    3ㆍ1혁명에 이어 신간회운동 등 국내의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해외 한인의 민족교육운동의 일환으로 하와이에서 활동하다 1931년 6월 4일 하와이학생 모국방문단을 이끌고 잠시 귀국하였다. 3년여 만이다. 두고 온 가족이 ...
    22.01.24 15:31 ㅣ 김삼웅(solwar)
  • 35화병환 중에도 목회와 한글교육 매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5] 병든 육신을 신앙심으로 지탱하면서

    에뜨랑제, 많은 사람이 지상낙원이라 부르는 하와이도 인종과 계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기 땅에서 발붙이지 못하여 이민선을 타고 흘러온 한국인들이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려 2세가 성장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노동에 시달리고 자식...
    22.01.23 16:51 ㅣ 김삼웅(solwar)
  • 34화교회성장, 고국지원 나서기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4] 그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그가 하와이에 이주하여 목회와 한글교육을 시작할 즈음의 미주 특히 하와이의 교포사회는 크게 분열되어 있었다. 하와이 8개의 유인섬에는 한인교포 6,5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이 백인소유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일하고, 자작농...
    22.01.22 17:32 ㅣ 김삼웅(solwar)
  • 33화하와이 교포들에게 한글 교육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3] 그로 인해 와히아와 교회는 나날이 부흥하였다

    43세 중년의 나이에 찾아온 하와이는 낯선 곳이었다.육신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성한 곳이 별로 없고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민족운동을 함께해온 동지들과 신앙동료들 그리고 사나운 승냥이 밑에서...
    22.01.21 20:15 ㅣ 김삼웅(solwar)
  • 32화한인교회 초청으로 하와이행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2]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떠난 길이다

    박동완은 시대를 절망하면서 '길이 없는 길'을 찾아나섰다.식민지 조선 사회는 마치 봉인된 병속에 갇힌 물고기의 운명이었다. 그는 3ㆍ1혁명을 주도한 대표의 일원으로서 역사에서 부여된 책무를 다하지 못하더라도 구도자의 신분이...
    22.01.20 15:29 ㅣ 김삼웅(solwar)
  • 31화일제, 역사왜곡과 남산에 신궁 세워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1] 일제는 신궁을 세우고 치안유지법을 통해 민족운동을 더욱 옥죄었다

    박동완이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운동과 사회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하던 1920년대 중반 일제의 지배체제와 압제의 양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총독부는 1925년 5월 치안유지법을 공포한데 이어 6월에는 조선사편수회를 만...
    22.01.19 15:39 ㅣ 김삼웅(solwar)
  • 30화임시집행부 부의장 등 책임 맡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30] 좌우협동과 합작에 의한 민족유일당ㆍ민족단일당 결성운동 등에 큰 촉매제 역할

    박동완은 신간회가 3ㆍ1혁명에서 다하지 못한 자주독립의 꿈을 이루고자 헌신하였다. 임시집행부의 부의장과 전형위원ㆍ총무간사 그리고 지방에 설립된 지회를 안재홍ㆍ홍명희ㆍ신석우 등과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격려하고 연설하였다.&nb...
    22.01.18 15:37 ㅣ 김삼웅(solwar)
  • 29화민족협동전선 신간회 창립 주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9] 민족운동 대표기관의 설립

    1927년 2월 15일 민족주의계열과 사회주의세력이 연합하여 〈민족단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합법적인 항일운동 단체로 신간회를 창립했다.처음에는 신한회(新韓會)라는 명칭을 썼으나 등록과정에서 총독부가 한(韓) 자 ...
    22.01.17 15:38 ㅣ 김삼웅(solwar)
  • 28화'문화정치' 내세우며 조선민족 말살 시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8] 민족운동을 분열ㆍ약화시키려는 고도의 식민지 지배정책

    1920년대 초 일제는 무단통치만으로는 조선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정무적 판단으로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였다. 외형상의 유화정책을 통해 조선민중의 저항의지를 삭이는 한편 민족운동을 분열ㆍ약화시키려는 고도의 식민지 ...
    22.01.16 17:02 ㅣ 김삼웅(solwar)
  • 27화흥업구락부 등 민족운동에 앞장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7] 박동완은 일체의 글쓰기를 중단하고 직접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총독부는 '문화정치'라는 이름 아래 1921년 5월 이광수를 중국에서 회유ㆍ귀국시키고 이해 6월 복역중인 최린과 최남선을 가출옥시키면서부터 '실력양성', '참정권청원'(또는 자치청원), '민족성 개조' 등 '민족개량주의'의 슬로건을 내...
    22.01.15 17:19 ㅣ 김삼웅(solwar)
  • 26화'재만동포옹호동맹'조직, 현지조사활동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6] 총독부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고 뒤쫓는 시선이 많아졌다

    일본은 열도내의 아이누족 합병→류우쿠합병→타이완 합병→대한제국 병탄에 이어 만주를 넘보기 시작했다. 만주에는 구한말 이래 많은 한인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봉오동ㆍ청산리대첩을 비롯하여 각종 무장항일전이 가능했던 배경이...
    22.01.14 15:29 ㅣ 김삼웅(solwar)
  • 25화'지성일관'의 신념, 총독부가 글 일부 삭제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25]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박동완 지사

    박동완의 사유체계나 행동반경을 꿰뚫는 하나의 준칙이 있다면 그것은 '지성일관(至誠一貫)'이 아닐까 싶다. "지극한 정성으로 한결같다"는 의미에서, 그는 매사에 정성스럽고 처음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았다. 믿음의 생...
    22.01.13 16:03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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