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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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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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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다산은 척박한 그 시대에 오로지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보호하려는 애민정신과, 배교여부와는 상관없이 서학에 접하면서 왜래문화와 전통문화의 조화를 통한 균형감각, 여기에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합리적 학문자세 그리고 과학적인 실용정신 등으로 당대 학문의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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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화연구가들의 평가와 선생의 당부말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80회] 마무리글

    감당하기 어려운 탐방길이었다.다행히 선학들의 다방면에 걸친 연구(둘래길)가 있음으로 하여 그나마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었다. 깊숙한 광맥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놓친 부분이 적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대무변이...
    20.11.18 17:55 ㅣ 김삼웅(solwar)
  • 79화미처 캐지 못한 광맥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9회] 아쉬움을 덜고자 광맥에서 주운 몇 대목을 소개한다

    그의 책 어느 쪽을 펼쳐도 금빛이 나고 생동감이 넘치는 경세의 문장이다.500여 개에 이르는 책의 이정표를 찾아다녀도 범인의 생로는 모자란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광맥을 그냥 차밭(茶山)으로만 알고 스쳐지난 것 같다. 아...
    20.11.17 18:29 ㅣ 김삼웅(solwar)
  • 78화정헌대부 추증과 '문도' 시호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8회] 정약용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그에 대한 연구나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약용이 별세한 지 46년이 지난 1882년 고종은 내각에 지시하여 『여유당전서』는 전부 필사하여 내각에 수장케 하고, 순종은 1910년 7월 18일 "정헌대부(正憲大夫) 규장각 제학(정2품)"에 추증한데 이어 '문도(文度)'라는 시호...
    20.11.16 18:07 ㅣ 김삼웅(solwar)
  • 77화결혼 60주년 회혼날에 75세로 운명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7회] 1836년 2월 22일 조선에서는 큰 별이 떨어졌다

    세월의 화살은 정약용도 비켜가지 않았다.회갑을 맞이했을 때에도 그 느낌을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이 하여 한가히 세월을 보내는 일을 그만두고, 아침저녁으로 성찰하는 일에 힘써 하늘이 내려주신 성품을 회복할 수 있으리...
    20.11.15 16:13 ㅣ 김삼웅(solwar)
  • 76화5편의 단편소설 집필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6회] 정약용이 아무리 '백과전서파' 지식인이라 해도 소설까지 지은 것은 놀랍다

    월간 『문학사상』은 1976년 10월호에 "새로 찾아낸 다산의 소설소품ㆍ시론ㆍ그림"을 특집으로 꾸미면서 「처녀바람」, 「현진자전(玄眞子傳)」, 「장천용전」, 「김씨부인전」, 「빈사전(貧士傳)」등 5편의 단편 소설을 발굴, ...
    20.11.14 13:21 ㅣ 김삼웅(solwar)
  • 75화우리나라 최초로 사진기 사용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5회] 그는 어떤 사진기를 사용했을까

    정약용의 천재성과 과학적인 사고 그리고 서학에 대한 깊은 이해 등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진기를 사용한 사람이라면 얼른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어떤 사진기를 사용했을까."다산이 ...
    20.11.13 15:56 ㅣ 김삼웅(solwar)
  • 74화의서 펴낸 의술전문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4회] 그는 중년에 귀양살이를 할 때부터 여러 가지 병고에 시달렸다

    조정에서 왕이나 왕세자가 위급할 때이면 불러들일만큼 그는 의학(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미 의학전문서적으로 『마과회통』 12권을 지었고 『의령』이라는 독립된 의서뿐만 아니라 문집 곳곳에 의학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20.11.12 16:20 ㅣ 김삼웅(solwar)
  • 73화생계용 인삼밭 일구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3회] 정약용은 젊은 시절부터 놀고 먹는 양반들을 질시하였다

    노후에 이르러 가정의 생활이 어느 정도 펴게 되었다. 부인 홍씨가 누에를 치고 가족이 함께 인삼밭을 가꾸어 수확하면서이다. (1827년) 부인은 신혼 초기부터 누에를 쳤다. 양반집 규수로 자라났지만 남편이 급제는 했으나 아직...
    20.11.11 17:41 ㅣ 김삼웅(solwar)
  • 72화허균ㆍ김만중의 한글소설과 '조선시선언'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2회] 정약용은 왜 한 편의 글도 한글로 짓기 않았을까

    정약용이 살던 시대 동아시아는 중국의 한자문명권이었다. 한자가 문화와 문명의 매체역할을 하였다. 세종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3년 뒤 이를 반포했으나 여전히 공용문자로는 한문이 사용되고, 훈민정음을 지배층에서는...
    20.11.10 18:00 ㅣ 김삼웅(solwar)
  • 71화농지개혁의 '여전제' 제안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1회] 그의 현실인식은 치밀하고 예리했다

    「탕론」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전론(田論)」은 정약용의 개혁사상의 대표급에 속하는 논저이다. 그가 살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기 조선은 봉건제도의 붕괴와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되면서 민란이...
    20.11.09 17:31 ㅣ 김삼웅(solwar)
  • 70화회심했는가 배교자인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70회] 해배 후 정약용의 신앙생활은?

    정약용은 23세 때 이벽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듣고 두 형과 함께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한자로 쓴 『천주실의』 등 각종 서책도 열심히 읽었다. 세례명은 요한(Johane)이었다. 이로 인해 혹독한 탄압을 받고 폐족의 신세가...
    20.11.08 16:43 ㅣ 김삼웅(solwar)
  • 69화혁명적인 개혁안 '탕론'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9회] 정약용은 전근대를 뛰어넘은 근대인인가, 아닌가

    정약용의 철학과 사상은 봉건군주 시대에 성장한 특수 산물이다.그가 살던 시대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반상질서가 강고한 사회구조였다. 그 역시 양반 출신이었고, 집에는 노비(종)가 있었다. 각별한 군왕의 총애를 받았고, ...
    20.11.07 16:34 ㅣ 김삼웅(solwar)
  • 68화당대의 석학들과 주고받은 편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8회] 대산ㆍ연천과 주고 받은 품격 있고 격조 높은 편지

    정약용의 파란곡절의 생애에서 환갑을 전후하는 시기가 그나마 가장 행복했던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노쇠하고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자유로운 몸으로 저술을 하고 산천을 유람하며 당대의 석학들과 학문을 토론하거나 편...
    20.11.06 17:22 ㅣ 김삼웅(solwar)
  • 67화회갑에 자서전 '자찬묘지명' 쓰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7회] 그는 왜 굳이 회갑에 묘지명을 썼을까

    1822년 6월 16일 회갑을 맞았다.귀향한 지 3년, 고향에 정착하여 빈곤한 살림살이와 노년의 병마로 신음하면서도, 그동안 독서와 저술로 쉴새없이 글을 썼다. 이가환ㆍ이기양ㆍ권철신ㆍ오석충과 둘째형 정약전의 묘지명을 지...
    20.11.05 17:28 ㅣ 김삼웅(solwar)
  • 66화생활고에도 유유자적 '열수' 아호짓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6회] 그나마 귀양보다 귀향이 나은 것은 자유스러움이었다

    가족의 생활이 지극히 어려웠다.18년 유배의 뒷바라지 하느라 살림은 거의 바닥이 났고 농삿일이 서툰 두 아들의 농사로는 가족의 먹거리 마련도 쉽지 않았다. 국사범으로 낙인된 신분이라 해배가 되었다해서 옛 동료들의 지...
    20.11.04 17:18 ㅣ 김삼웅(solwar)
  • 65화'소실 정씨' 모녀의 실체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5회]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흔히 이 부문은 전기ㆍ평전에서 빠지고, 연구자들의 각종 논저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사실성'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으로 정평이 있는 「자찬묘지명」에도 언급...
    20.11.03 17:21 ㅣ 김삼웅(solwar)
  • 64화귀향하자 정적이 하인 보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4회] 반갑지 않은 인물이 안부를 물어왔다

    비록 귀양살이지만 옹근 18년을 살아온 강진은 비애와 함께 정이 깃든 곳이었다. 해배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시답잖은 권위의식을 벗고 학자의 본성으로 돌아가 제몫의 삶을 산 기간이었음을 ...
    20.11.02 17:10 ㅣ 김삼웅(solwar)
  • 63화18년 만에 해배되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3회] 중년의 세월을 모두 강진에서 보낸 정약용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여름에 『국조전례고』를 마무리할 즈음에 옛 친구 김이교(金履喬)가 찾아왔다.29세 때 우상 채제공의 천거로 그와 함께 한림의 후보로 뽑혔고 예문관 검열로 임명되어 한림원에서 같이 일했던 막역...
    20.11.01 13:51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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