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까지 항암치료 받는 한국, 정상일까?

[김성호의 독서만세 224] 김범석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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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starsky216)등록 2024.05.16 08:20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죽음은 언제고 반드시 닥쳐올 것이지만, 사람들은 죽음이 제게는 오지 않을 것처럼 인생을 대한다.

필연적 소멸을 무시하는 태도가 삶에 활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매 순간 끝을 떠올리는 이가 멀고 험한 길을 갈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렇기에 인간은 닥쳐올 죽음보다 지금 이 순간에 더욱 충실하며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죽음을 완전히 외면하는 건 바람직한 일일 수 없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와 이웃까지, 내가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주고받는 모든 이들이 마침내는 죽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책 표지 ⓒ 흐름출판

 
오늘의 한국이 죽음을 대하는 법

책을 읽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삶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을 이야기 해달라고 말했다. 질문을 들은 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상실을 이야기했다. 저의 실패나 절망보다도 가까운 이의 상실이 더 괴로웠다는 이가 많았다. 삶 전체를 흔들 만큼 괴로운 상실을, 그러나 우리는 대비하고 있는가. 적어도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자면 영 아닌 것만 같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놀랄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다른 곳에선 어처구니없는 일일 때가 잦은 것이다. 반대로 우리에겐 이상한 일이 외국에선 자연스럽기도 하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도 그와 같다.

나는 다른 나라에 갈 때면 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알아가길 즐긴다. 독일과 스페인에서, 벨기에와 남아공에서, 베트남과 태국에서, 일본과 중국에서 나는 그들이 죽음을 대하는 법을 보았다.

어떤 나라에서 죽음은 평온이다. 세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규모의 공동묘지에 사슴과 온갖 야생동물이 뛰어다닌다. 사람들은 그곳에 소풍을 온 듯 자리를 깔고서 도시락을 먹고 운동을 한다. 또 다른 나라가 있다. 집 안에 뼛가루 든 그릇을 두고서는 제단을 두어 돌아간 사람을 때때로 그린다. 한국을 유교의 전통을 많이 받은 국가라고들 하지만, 사당도 위패도 두지 않는 게 일반적인 국가는 유교권 국가 중 한국 정도가 아닐까.

가게마다 조상신을 모시는 제단을 두고서는 매일 같이 과일이며 꽃을 갈고 복을 비는 이들도 있다. 논 가운데 무덤을 두거나 가까이 찾기 쉬운 묘지를 선택하는 문화권도 있다. 사람이 죽은 뒤 그 지인이 모이는 날 일종의 축제를 벌이는 문화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나라에서 느낀 공통점과 위화감은 한국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결코 자연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죽은 이를 사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두고 특별한 날에만 엄숙히 떠올리는 것, 우리는 유독 죽음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퍼올린 이야기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이들의 이야기다. 서울대학교 암병원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의 에세이로, 그가 병동에서 만난 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겼다. 죽음을 앞에 둔 환자와 제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따로 더할 것이 없는 말기암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마음이란 그 위치에 서보지 않고는 짐작할 수 없는 것일 테다.

더불어 이 책은 한국의 특수한 의료시스템 안에서 갈수록 치료가 듣지 않는 환자들을 마주하는 의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록이기도 하다.
 
책에는 많은 사연이 나온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 사업을 일군 중년 사내는 제게 닥쳐온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삶의 수많은 순간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이다.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아온 그라서 멈추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스스로 삶을 일으킨 방식이 죽음을 대하는 법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니, 역설적이지 않은가. 남들이 좀처럼 닿지 못할 많은 것들을 부여잡아온 그 손아귀에서 가족과 시간과 관계와 자기를 돌아볼 기회 같은 귀한 것들이 줄줄줄 흘러내린다.
 
또 다른 이도 있다. 어느 할머니는 제게 다가선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녀는 평소처럼 장을 봐서 요리를 하고 딸과 등산이며 사우나를 함께 하고 손녀들을 보살핀다. 그녀는 의사에게 제가 가진 유일한 걱정을 토로했는데, 자식과 손주들이 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살면서 한 번은 겪어야 할 것이니 씩씩하게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하였다. 어디서나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가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이처럼 비범하여서 저자는 그녀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며 환자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제 가족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이들이 있고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도 끝내 화해하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하루라도 더 살려 발버둥치는 이들과 제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암을 이겨낸 이들과 이겨냈으나 세상 가운데 차별과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그 면면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언젠가 찾아올 저와 제 가족의 죽음을, 또 그를 대하는 저의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제일의 미덕이라 할 것이다.

자본주의에 잠식된 의료의 문제
 
책은 중간을 넘어서며 또 다른 문제를 슬며시 드러낸다. 어느 장에서는 뭔가를 해야만 보상이 뒤따르는 행위별 수가제도 가운데 하지 않는 방식의 치료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죽음을 대비할 시간이 지나치게 짧은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도 얕지만 안타까움을 표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미국 사람들은 보통 사망 6개월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다. 즉 그들은 삶을 정리하는 데 적어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에 반해 서울대병원 통계상에서 환자들은 사망 한 달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다. 삶을 정리하는 게 고작 한 달의 시간을 가지는 셈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항암치료를 가장 '빡세게' 하는 나라이고, 여기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삶을 정리할 준비를 한다고 보야 한다. -181p
 
이밖에도 의사가 시간당 정해진 수의 환자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존엄한 죽음을 위해 마련된 임종방에서 환자들의 죽음을 억지로 미뤄가는 상황이 발생하는 모습 등도 언급된다. 하나하나가 자본과 제도와 의료체계에 긴밀히 엮여 있어 사회적 의미가 크지만 책은 간략한 언급 이상으로 깊어지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적 특수성과 곤란함 때문이겠으나 부작용이 톡톡 튀어나오는 오늘의 한국이라면 조금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나 아쉬움도 든다.
 
이밖에도 함께 책을 읽은 어떤 이는 '식도암 환자는 대부분 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다. 식도암을 술이 주요 원인이고 술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주 오래, 그것도 아주 많이 마셔야 생긴다. 모든 식도암 환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매일 소주 한두 병씩 이삼십 년을 마시던 사람들인데,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 남자를 가족이 좋아할 리 없다'는 서술이 부적절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식도암이라는 질병에 편견을 더할 수 있는 대목으로 의사라면 환자와 가족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일반화하는 서술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을 좋게 읽었다는 이의 날카로운 비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몇몇 아쉬움에도 책은 의미가 분명하다. 암병동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독자에게 충실히 전달하여 제게 아직 닥치지 않았으나 반드시 오고야 말 순간을 예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연명의료에 대한 입장은 가족 단위에서 미리 고민해볼 사안으로, 실제 닥치고 난 뒤에 고민하기엔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때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도록 이끈다. 나는 이 책이 독자를 더 충실한 삶으로 이끌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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