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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만 들고 가면 알맹이 채워주는 환상의 가게

[서평] 오는 주말, 우리 가족 출동합니다... 책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등록 2024.05.09 16:10수정 2024.05.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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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위즈덤하우스

 
우리 집에서는 비누로 세안과 샤워를 모두 한다. 지인이 만들어준 DIY 비누를 쓰거나, 종이 상자에 담긴 중성 비누를 애용한다. 4인 가구에서 바디클렌져와 페이스워시만 비누로 바꾸어도 상당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아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조금이라도 나오는 것이 싫다며 고체 치약과 샴푸바를 고집한다. 슬프게도 탈모 증상이 슬금슬금 나타나는 나는, 최근 기능성 샴푸를 사용하느라 플라스틱 폐기물 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씻고 난 후에도 순한 로션 하나로 얼굴과 몸에 다 바른다. 500ml 대용량 제품이라 그나마 개별 화장품 용기를 적게 사용할 수 있다.

만약 화장품을 리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서 담근 장을 유리 용기에 퍼 오듯 세제와 화장품류도 받아 오는 것이다. 더 큰 꿈을 꾸자면, 레몬즙이나 베이킹소다, 구연산 같은 것들도 소분해서 팔고 버리기 아까운 재활용 자원도 모아주는 가게가 있다면 어떨까. 그런 환상의 가게가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같이 다닐 텐데.

화장품만 리필 가능, 재활용 모아주는 가게... 있다, 그런 곳이 

그런데 서울 망원동에는 그런 가게가 있다. 알맹상점이다. 환경에 좀 관심이 있다 싶은 분들에게는 진짜로 유명한 가게다.

말 그대로 알맹이만 팔아서 '알맹상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저장 용기를 들고 가서 필요한 만큼 담아 오면 된다. 코코넛 껍질로 만든 수세미도 팔고, 페트병뚜껑을 모아 업사이클링한 소품도 판다. 그야말로 제로웨이스트 러버들에게는 비현실적이게 좋은 공간. 강원도에 사는 나는, 서울에 가서 방문하고픈 장소 탑5 안에 '알맹상점'이 들어있다. 


책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은 알맹상점의 창업자인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세 분이 어떻게 가게를 열고 운영하는지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2018년 '쓰레기 대란'이 터졌을 때 알맹이만 찾는 자(알짜)들 모임에서 인연을 맺었단다. 알짜들은 쓰지 않은 장바구니를 모아서 시장에서 대여해주고, 용기를 가져가 알맹이만 사려고 노력했다. 

망원시장 내 카파엠에서 반년 간 무인 세제리필샵을 운영하던 저자들은, 함께 뭔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를 외치는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차리게 된 것이다(관련 기사: '이 가게'가 다이소만큼 많아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https://omn.kr/27b1f ).

그럼에도 시작은 험난했다. 말통 세제와 저울만 있으면 굴러갈 줄 알았던 가게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대용량 세제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매번 용기를 직접 소독하여 공장에 부친다고 해도 마음에 꼭 드는 형태로 판매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겨우 구매에 성공했다고 해도 내용물에 맞는 펌프와 깔때기를 찾는 과정도 시행착오의 연속. 팔리지 않으면 재고가 쌓이기에 다른 제로 웨이스트 샵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구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적자의 연속, 그럼에도 

첫 육 개월은 적자의 연속이었단다. 물건판매뿐 아니라, 브리타 정수기(필터 교체로 사용하는 친환경적 정수기) 폐 필터와 우유 멸균팩 수거 등 자원순환 기능까지 진행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느새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자영업자의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긴장이 되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환경과 건강한 삶이라는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차린 가게이지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열정과 헌신이 필요했다. 게으른 내 눈에는 저자 분들이 플라스틱 프리,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위해 우주에서 강림한 위대한 '전사'로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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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에 담아 온 잡곡과 종이 상자에 담은 방울토마토. 재사용 가능한 용기에 물건을 받으면 기분이 참 좋다. ⓒ 이준수

 
알맹상점에서 취급하는 제로웨이스트 제품과 리필 벌크 라인업은 상당하다. 수제 쿠키, 코코, 비누, 무포장 딸기, 수분크림, 현미유 등. 설마 이런 것까지 리필이 가능해? 하고 스스로 한계 짓고 있었던 사고를 해방시킬 수 있다. 

알맹상점은 상품 판매뿐 아니라 환경 캠페인도 진행한다. 2021년에는 화장품 용기 어택을 감행했다. '재활용 어려움'에 해당하는 화장품도 예외 없이 등급을 표시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같은 해 브리타 어택을 통해 브리타 필터를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했다. 필터 4000개와 15000명의 서명을 모아 브리타 코리아에 전달한 결과, 아시아 최초로 폐필터 수거 후 재활용이 가능해졌다. 

2022년에는 '이중 병뚜껑 어택'을 했다. 병뚜껑 안에 고무패킹, 실리콘이 이중으로 붙어있으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탄산 블라인드 테스트,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씨그램과 나랑드사이다의 이중 병뚜껑을 재활용이 가능한 단일 형태로 변경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본죽 어택, 배스킨라빈스 스푼 어택, 파리바게트 빵칼 어택, 케이팝포플래닛 굿즈 어택 등 갖은 쓰레기, 플라스틱 어택에 연대하여 참여 중이다.

우리 가족은 알맹상점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저자님의 활동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로부터 다양한 영감을 받았다. 여름철 티셔츠와 아이들 손수건 세탁을 위해 화학 세제 대신 '소프 넛'을 사용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강릉의 제로웨이스트 샵에서 여기서 본 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 식물 소재 수세미를 들여왔다. 브리타 필터를 모아뒀다가 회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덤이다. 

알맹상점에서 리필을 받기 위해서는 간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리필에 반드시 필요한 용기들을 챙겨야 한다. PP, PET, PE 재질의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을 세척 후 건조 상태로 지참하면 된다.

혹시라도 현장에서 꼭 사고 싶은 제품이 생겼는데 용기가 없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매장에 기증받은 용기가 비치되어 있기 때문. 더불어 소독기도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 털어내고 살균이 가능하다. 그다음은, 물건을 담고 저울에 올려 계산하면 끝.

알맹상점의 뜨거운 열정과 인류애에 조금이라도 감응하는 독자라면, 언젠가 매장을 직접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은 저자들의 철학과 따뜻한 속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알맹상점 종합 사용설명서'다. 운이 좋으면 저자님 중 한 분을 현장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계산을 마친 뒤 수줍게 책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드리면 왠지 활짝 웃으며 기뻐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책 읽는 내내 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는 행복감이 물씬 드는 책, 이번 주말에 우리 가족은 강릉에서 서울을 향해 떠날 예정이다, 진짜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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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상점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면 최신 소식을 쉽게 받아볼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almang_market/) ⓒ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 용기를 내면 세상이 바뀌는 제로웨이스트 습관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22


#알맹상점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제로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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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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