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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 이름 짓고 근현대사 연구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11] '작명가'의 작심을 직접 들어보자

등록 2024.04.16 08:02수정 2024.04.1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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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 권우성

 
유신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박정희는 이에 저항하는 민주인사, 학생 등을 탄압하고자 긴급 조치를 잇달아 선포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해 동해 한가운데에서 수장시키려다가 실패로 돌아가고, 민청학련 사건·인혁당 사건 등을 날조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감금하거나 사형에 처했으며, 정보기관을 동원해 독립운동가 장준하를 실족사로 위장해 암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7·4 남북공동선언이 폐기되고 남쪽과 북쪽에서 모두 절대권력이 강화되면서 한반도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만길은 연구 방향을 조선왕조 시대에서 차츰 근현대사로 바꾸었다.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사학자이자 언론인 출신 천관우의 저서 <한국사의 재발견>의 서평이 실렸는데, 이 글은 강만길의 학문에서 변곡점이 되었다.

천관우 선생이 썼던 글들을 모아 <한국사의 재발견>(일조각, 1974)이란 책을 냈는데, 창비에서 서평을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천관우 선생은 해방 후에 배출된 제1세대 역사학자 중 대표적인 분이며, 따라서 그의 역사학은 하나의 시기적 특징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서평 쓰기를 승락했고, 쓰면서도 책 내용에 대한 논평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 근현대사학사가 정리되면 '천관우 사학'이 어떤 위치이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며 서평의 한 대목에 이렇게 썼다.

1945년이 시기 구분의 커다란 분수령이 되리라 짐작할 수 있으며, 1945년 이후의 사학사가 어디에서 시기 구분의 근거를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앞으로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때가 바로 1945년 이후 사학사가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되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1945년 이후부터 민족통일이 이루어질 앞으로 어느 시기까지를 사학사적 입장에서 이름 붙인다면 '분단시대 사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이름 붙인 분단시대란 말이 앞으로 일반사적 시대 구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 (주석 1)

'분단시대'는 해방 이후 양단된 민족사를 압축하는 용어가 되었다. 학술 용어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시사 용어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의 한민족 현대사의 시대 구분 용어로 쓰일 것이다.

하나의 문화권과 생활권을 유지해 오던 사회가 두 개로 쪼개져 동족이 적이 되어 피 흘리며 싸웠던 전쟁을 치르고도 여전히 다른 한쪽을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자기 동시대를 분단시대라 이름 지은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1948년에 수립된 두 개의 남북 정부는 자신이 한반도 전체를 통할하는 중앙정부라 자처하여 자신들 정부 수립의 근거가 되는 각각의 '국가'에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했는데, 강만길이 자기 동시대를 분단시대라 이름 지은 1974년경 남쪽 역사학계 일반의 인식과 분위기도 대부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단시대란 대한민국이나 조선인민공화국에 덧씌워진 정통성의 강요된 도그마에서 벗어나 분단 그 자체를 객관적 모순으로 파악하게 될 때 성립할 수 있는 역사적 규정이나 민족사회의 다른 한쪽을 적이 아닌 동족으로 생각하고, 실패한 우리 현대사의 모순의 한 결절로 이해하게 될 때 분단시대라는 역사적 이름이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주석 2)
  
'분단시대'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작명가는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고행의 길에 나선다. '분단시대'라는 획기적인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작명가'의 작심을 직접 들어보자.

1945년 8월 15일 이후 시기에 대한 역사성을 담은 명칭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는데, 그것은 이 시기 전체 민족 구성원의 염원인 민족통일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시기 남한사회의 사상적 동향 일반을 근거로 해서 '반공주의 사학'이라 이름 붙일까도 생각했으나, 그것 역시 민족사적 전망성이나 지향성이 없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또 해방 후 시대를 사는 역사학자 모두가 '반공주의적' 역사의식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원고를 완성하고도 이 용어 때문에 고심하다가 반공주의나 대북적대주의에 고착된 시대가 아니라, 평화통일을 전망하고 지향하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시대로서의 '분단시대'로 이름 짓기로 했다. (주석 3)

강만길의 연구 영역은 대단히 넓고 다양했다. 1975년에 <이조의 상인>(한국일보사)과 <한국 상공업의 역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출간하는가 하면, 성균관대학의 이우성·성대경·임형택, 서울대의 김진균, 경희대의 김태영 교수 등과 함께 '다산연구회'를 설립해 <목민심서> 번역도 시작했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서 <정약용의 상공업 정책론>을 썼는데, 일반에는 덜 알려진 다산의 '광산국유론'을 밝혀서 다산 연구가들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했다.


주석
1> <역사가의 시간>, 193~194쪽.
2> 신용옥, <해제: 분단시대를 지식인으로 살아온 평화통일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자기 기록>, <역사가의 시간>, 643~644쪽.
3> 강만길, <'창비'와 인연으로 '분단시대'가 태어나다>, <역사가의 시간>, 192~19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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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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