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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중년' 조롱 조선일보, 이거 4050세대 해부 맞나

[미디어비평]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이라더니... 근거 없이 부정적 언급 가져와 나열

등록 2024.03.25 19:53수정 2024.03.2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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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조선일보> B03면에 실린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 기사. ⓒ 조선일보PDF

 
지난 주말 사이 인터넷을 달군 기사가 하나 있다. 바로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23일자 <조선일보> 기사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이란 표현에서 이 신문이 4050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낸다. 그렇다면 무엇을 누리고, 무엇에 깨어있는 척한다는 걸까. 제목으로 삼은 만큼 기사에 그 내용이 들어가야 함은 명백하다. 하지만 기사를 곱씹어 읽어봐도 "진보 중년"은 그동안 뭘 누렸고, 무엇에 깨어있는 척한다는 것인지 알기 쉽지 않다.

<조선일보>는 현 40~50대가 "1970년대 초반~1980년대 초반 태어나, 산업화의 과실이 축적된 1980~90년대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성장했다"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이 가능하기 위해선 이들 세대가 누린 혜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데이터를 근거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일 테다. 그러나 이 신문은 근거로 역할하는 데이터를 언급하진 않았다. 개인주의의 성장, 대학진학률의 폭증과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의 증가, 초기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또래와의 정서적 경험 공유를 나열했을 뿐 그것이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기자는 4050세대를 향해 "고졸이든 대졸이든 취업 잘되고 내 집 마련도 쉬웠던 마지막 세대"라며 "현재까지도 자산 축적 속도가 가장 빠른 세대로 꼽힌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주장을 뒷받침할 관련 데이터 역시 언급하지 않았다. 정리하면 근거 없는 주장만 가득한 셈이다. "깨어있는 척"이란 진단의 근거가 없음도 마찬가지다.

근거 없이 4050 향한 부정적인 주장만 나열한 <조선>

대신 <조선일보>는 4050에 속한 개인의 목소리를 인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썼다.


"토플 공부만 하면 '의식 없는 놈'으로 찍혔다"는 발언을 두고 "X세대의 무의식에 왠지 모를 운동권 부채감이 싹텄다"고 설명하고, "광화문 노제에 달려가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모르는 또래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는 발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X세대 영광과 노사모의 자부심으로 뭉쳤던 젊은이들이 돌연 피해의식을 갖게 된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이런 개인의 발언은 당연하게도 특정 개인의 주장일 뿐, 자신이 속한 세대를 대표할 수 없는 데다가 특정 주장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자극적인 사례를 부각해 4050을 향한 비판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이런 절망적인 나라에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40대 부부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는 사실 난임이었다" "사정 모르는 시부모가 '정치가 너희 인생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연을 끊었다"라며 부정적인 서술을 부각했다.

또한 "부부는 요즘도 이재명·조국 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해 '왜 보수의 거악은 놔두고 진보의 작은 흠만 들추느냐' '검찰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란 게시물을 올린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사례가 과연 4050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60대 이상 제외한 전 연령층이 '반윤석열'... 이 데이터는 못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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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최근 데이터를 언급한 것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실시한 2024년 3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의 4050세대 정당 지지율이었다. 이 신문은 해당 여론조사에서 "40대와 50대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 신당의 지지율 합계가 각각 58%, 51%로 과반이었다"라는 점을 주목했다(40대 : 민주당 47% - 조국혁신당 11%, 50대 : 민주당 37% - 조국혁신당 14%).

하지만 같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묻는 말에 18~29세는 응답자의 61%, 30대는 64%, 40대는 76%, 50대는 66%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절반을 넘지 않는 세대는 60대와 70대 이상뿐이었다. 특히 18~29세의 경우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2%로 전연령층에에서 가장 낮았다. 

그렇다면 현재 4050만이 <조선일보>의 표현대로 "변종 세대"라고 불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세대가 윤 대통령을 향한 반감으로 뭉쳐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진보 대학생', '영포티' 운운하며 세대 갈라치기 앞장서는 <조선>
   
데이터 등 실증적 근거 없이 주장만 있는 기사의 내용도 문제지만 언론으로서 <조선일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기사를 통해 특정 세대를 낙인 찍고 세대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데 있다.

이 신문은 "폭주하는 진보 중년을 보는 20~30대는 어리둥절하다"며 "도대체 꼰대들 왜 이럼?" "자기들도 수험생 자식 키우면서 조국 지지하는 게 말이 됨?"이란 비판적 반응을 인용했다. 또한 "젊은층은 몸은 쇠하기 시작하나 심장이 끓는 중년을 '진보 대학생'이라 비웃고, 어르신들도 '영포티(young forty, 젊은 척하는 40대)'에 혀를 찬다"고도 덧붙였다. 

물론 젊은 세대 중 4050의 정치적 결정에 비판적인 이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가 4050세대의 정치적 결정을 비판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지 "진보 대학생" "영포티" 등 특정 세대를 향한 비하적 언어를 내세우는 것은 갈라치기와 같다.

첨언하자면, 20대인 필자로서는 또래 내에서 거의 쓰지도 않는 '꼰대'란 단어를 사용하고, 낡아도 너무 낡은 '음슴체'를 통해 젊은 세대임을 강조하는 <조선일보>의 인용이야말로 무척 '영포티'스럽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에서 인용된 '한국갤럽' 여론조사(3월 둘째주)는 3월 12일~14일 이뤄졌으며,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됩니다.
#조선일보 #세대갈라치기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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