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잃은 현대인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그림

정연지 개인전, 11월 2일부터 12월 29일까지 '헤이마 갤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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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daeguedu)등록 2023.11.03 16:41
정연지 개인전이 11월 2일 대구시 동구 파계로 583 '헤이마 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오는 12월 29일까지 계속되는 전시에는 한국화 30여 점과 도자 조형 25여 점이 출품되었다. 홍익대 일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 화가는 같은 대학 강사, 금호창작스튜디오·경기창작센터·대구예술발전소·순천예술창작촌 입주작가를 지냈다.
   

정연지 그림 중 한 작품 ⓒ 정연지

  개인전에 선보인 그림들은 대작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The Way Home>이라는 일련의 제목이 붙어 있다. <The Way Home>은 협의로 말하면 '집으로 가는 길', 광의로 말하면  '고향으로 가는 길' 정도를 뜻한다. 고향 또는 집은 인간에게 어떤 곳인가? 

고향은 태고 이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 가족, 마을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유전자적 자연이다. 억압과 소외가 없는 선한 공동체이다. 신분, 재산 등을 따지지 않음으로써 동질성을 공유한 채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동무들이 있었던 곳이다.

사상과 거주의 자유가 없던 과거 신분사회 사람들은 어머니, 가족, 동무들이 있는 '전원으로서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향을 만들어 그리워하기도 했다. 옛날 예술가들이 어머니, 동무, 고향, 이상향을 소재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민주사회, 과학시대가 되면서 고향도 변했다

역사 발전에 힘입어 민주사회가 도래하면서 현대인은 전통사회 사람들과 다른 회귀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화로 말미암아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하이데거)'의 회귀의식은 전원과 무관한 형태로 바뀌었고, 비현실적인 이상향의 존재도 믿지 않게 되었다.

현대인은 정치적 자유는 누리고 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초래한 물질 중심 비인간화에 얽매인 결과 경제적·문화적 구속 상태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과학시대의 예술가는 막연히 산천과 이상향을 담는 것만으로는 현대인의 회귀의식을 제대로 형상화할 수 없다.

정연지 화가는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채로 전원을 그리워하고 있는 현대인의 상실감, 재개발 등의 이름 아래 사라져가는 태생지와 옛집에 대한 애틋함, 그것들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심리를 화폭에 담는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세계의 주체가 아니라 '인적 자원'이 되어 철저히 객체로 전락한 데서 오는 소외감 등을 시각화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시대에 맞는 회귀의식의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정연지 화가의 <The Way Home>이라는 제목이 흑백 단색조 화면과 잘 어울리고, 발묵 효과를 담은 표현의 깊이가 심리적 고향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마음에 위안을 선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연지 도자 조형 중 한 작품 ⓒ 정연지

 
도자 조형 작품들에 부여된 제목 <We've been through a lot together>도 <The Way Home>과 같은 인식을 담고 있다. 먼 길을 긴 시간 걸어 드디어 고향에 당도했다. 그 동안 나 혼자였던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때로는 사람, 때로는 자연이 나와 동행했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와, 또는 무엇인가와 함께 했다. 많은 것을 함께 겪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다. 동구 밖에서 나를 반겨준 숲은 너무나 평온했고, 나무들 사이로는 빛(위 도자 조형 작품 안의 동그리마)이 밝게 빛났다.

모두들 많은 것을 겪었으니 다들 쓸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도자 조형 작품에는 그 이야기를 써넣을 빈 칸들이 마련되어 있다(네모 형태의 공간). 정연지 화가의 그림과 도자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도 각자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그 자리에 써넣을 수 있다. 현대인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자고 하는 것, 그것이 정연지 화가의 창작 이유이다.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어보자

정 화가는 2012년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2013년 충무로 영상센터, 2015년 인천아트플랫폼, 2018년 홍익대 현대미술관, 2022년 청주 B77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 '여성작가 날개달기' 선정작가, 2025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 선정작가, 2017년 전라남도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작가에 뽑혔다.

정 화가의 그림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외교통상부, 정부미술은행, 인천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SBS '질투의 화신'에 작품이 출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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