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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400원 올리려 100여일 농성... 덕성여대 손배 협박"

[노란봉투법⑦] 윤경숙 덕성여대 청소노조 분회장 "학생들이 우리 존재 기억해줬으면"

등록 2023.01.13 10:43수정 2023.07.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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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쟁의행위를 하면 수십,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노란봉투법' 제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이미 해를 넘겼다. 정부·여당·재계는 반대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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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의 정문을 나서려면 청소노동자들의 달아놓은 현수막을 볼 수 있다. 현수막에는 "이곳은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짓밟은 덕성여대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발을 딛고 꾸준히 투쟁하고 살아내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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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행정동의 노조 게시판에는 청소노동자들 지지하는 대자보가 게시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는 파업을 반대하는 여러 부착물이 게시되어 있기도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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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정문에 부착 되어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 ⓒ 이희훈

 
서울 강북구 4.19학생혁명기념탑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덕성여자대학교 대학본부 건물 입구에는 두 개의 상반된 학생 자보가 나란히 붙어있다. 하나는 '청소 노동자 지지 학생 발언문', 다른 하나는 '학생볼모 하청파업 반대한다 철회하라, 학생임금 9160원 청소근로자임금 9390원'이라고 쓰여있다.

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유리벽 안으로 굳게 닫힌 총장실이 보인다. 총장실 1미터 앞, 한기가 올라오는 복도 바닥에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다. '우리는 새벽부터 일을 하고 낮에도 밤에도 이곳에서 기다립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우리 때문에 환해졌습니다', '엄마는 무서울 것이 없다' 등 손글씨가 적힌 종이들로 빼곡하다. 농성은 11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지난해 3월, 폭등하는 물가에 맞춰 2022년도 시급을 400원 인상해달라며 시작한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들의 싸움은 원청인 학교의 합의 거부로 결국 해를 넘겼다. 학교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청소 노동자들은 급기야 지난해 10월 김건희 총장 사무실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청소 노동자들이 소속된 곳은 하청 용역업체지만 실제 이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건 덕성여대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오히려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내 청소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거론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청소노조가 있는 서울지역 13개 대학 중 아직 2022년도 임금 합의를 마무리 짓지 못한 곳은 덕성여대가 유일하다. 13곳 사업장이 집단교섭을 맺는 방식이기 때문에 나머지 12개 학교 청소 노동자들도 덕성여대가 합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급 400원 인상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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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 덕성여대 청소노조 분회장 ⓒ 이희훈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들은 아침 6시 30분~7시 30분 사이에 출근해 보통 1명당 건물 1개 층을 청소한다. 1개 층에는 대개 강의실이 10개 이상 있고, 화장실이 3~4개, 변기가 수십 칸씩 있다. 청소 노동자들의 시급은 9390원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인 9160원보다 230원 높다. 월급으로 하면 약 185만 원이다. '학생임금 9160원, 청소근로자임금 9390원'이라는 학생들의 자보는 '이미 최저임금보다 높게 주고 있다'며 청소 노동자들의 시급 400원 인상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학교 측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일한 숙련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간접고용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인 탓에 근속연수를 인정받지 못해,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시급이 모두 9390원으로 같다. 용역업체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퇴직금 계산할 때도 차별을 받는다. 덕성여대에서 10년 이상 일한 노동자라 해도 퇴직 전 마지막에 속한 용역업체에서 일한 시간만 경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는 총 51명, 이중 조합원은 41명이고 모두 여성이다. 평균 연령 63세가 넘는 이들은 대부분 노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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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 덕성여대 청소노조 분회장이 농성장의 날짜 판의 숫자를 넘기고 있다. 점거 농성을 시작한지 98일이 되었다. ⓒ 이희훈

 
윤경숙(65)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분회장은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싸움을 두고 "이미 돈을 더 받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됐다"고 했다. "1년 가까이 싸우면서 든 비용만 따져도 시급 인상 효과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시급 400원 인상이면 한 달에 8만 3000원 오르는 건데, 지난해 9일 동안 파업하면서 엄마들 월급이 적게는 60~70만원씩, 많게는 100만원씩 까였다"고 했다. 그는 "학교도 이 사정을 뻔히 알면서 손해배상까지 물리려 한다"고 했다.

윤 분회장은 "학교는 늘 '우린 용역 회사와 계약했으니 우리에게 따지지 말라'며 책임을 미뤄왔는데, 최근엔 시급 400원 인상 받아줄 테니 2026년까지 정년 퇴직하는 12명에 대한 인원 충원은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했다. 그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라며 "학교 스스로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윤 분회장은 현재 국회에 막혀있는 노란봉투법 제정(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했다. 노란봉투법은 청소 노동자들 같은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막는 법이다.


윤 분회장을 지난 9일 덕성여대 총장실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에도 학교 관계자들이 농성장 주변을 말 없이 오갔다. 노조 전임자가 한 명도 없는 덕성여대에서 윤 분회장은 청소 일과 노조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시위라도 잡혀있으면 주말 밤 학교에 홀로 나와 미리 청소를 해둔다고 했다.

그는 "여성들이 사회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당장 관심은 크지 않더라도, 우리 덕성여대 학생들이 훗날 그런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이렇게 빨간 조끼 입고 노동조합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던 우리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펑펑 울었다"...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들이 학생들에게 건넨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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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 덕성여대 청소노조 분회장 ⓒ 이희훈

 
- 총장실 앞 농성 100일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3월 14일부터 빨간 조끼를 입고 본격적으로 싸웠으니 벌써 10개월째 투쟁이다. 투쟁 기간에 비하면 우리 요구가 너무 약소하지 않나. 시급 400원 인상이면 월급 8만3000원 인상이다. 이미 오른 물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학교는 작년도 임금에 합의를 해주지 않고 있다. 서울 13개 대학 중 우리만 합의가 안 돼서 다른 대학 청소 노동자들에게도 참 미안하다."

- 대학교 건물에 '학생임금 9160원, 청소근로자임금 9390원'이라는 학생 자보가 붙어있더라.

"학교 측이 내세운 논리다. 최저임금은 9160원인데 왜 청소 노동자들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230원 높냐는 거다. 우린 당연하다는 듯이 최저임금만 받아야 하나. 우리는 학교에서 10년, 20년, 30년 일한 숙련된 필수 노동자들이다. 그 230원도 그냥 받아낸 돈이 아니다. 학교가 예산을 늘려서 준 돈이 아니란 말이다. 지난 6~7년간 정년 퇴직으로 8명 정도의 인원 감축이 있었고, 그렇게 줄어든 인원만큼 늘어난 작업량을 엄마들이 몸으로 메워서 만든 임금 인상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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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은 덕성여대 총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 중이다. 총장실을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비서실 벽면에는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피켓들이 부착되어 있다. ⓒ 이희훈

 
그런데도 학교는 계속해서 학생들과 우리를 갈라치려 했다. 총장님은 학교 홈페이지에 마치 저희가 굉장히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고, 학교 예산은 학생 교육의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식으로 게시글을 올리셨다. 우리가 학교의 걸림돌인 것처럼… 거기에 동의하는 학생들의 댓글도 많았다. 사실 그걸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욕까지는 아니었지만 저희가 모멸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댓글들도 있었고. 특히 '청소 노동자들 학교에서 나가라'는 말을 보고 많이 울었다.

그래도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우린 학생들을 자식 같이 생각하며 일한다. 제게도 대학생 아들이 있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꿈의 시절이지 않나. 예쁜 캠퍼스에서 놀고 싶고, 사진도 찍고, 동산에서 마음껏 있고 싶은데 학교 곳곳에 플래카드들이 붙어있으니 실망스럽기도 할 거고 불편할 거다.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서 지난번 하계 학위 졸업식 때, 우리들이 장미꽃 110 송이를 손수 포장해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 '우리의 투쟁을 꼭 기억해주세요'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그런데 어느 학생 하나가 '그동안 감사했다고, 청소를 너무 깨끗하게 잘 해주셔서 공부 잘하고 간다'고 울면서 인사를 하는 거다. 그때 우리도 그 학생 붙잡고 펑펑 울었다."

"평균 연령 63세 이상, 여성 가장들이 60~70만원씩 까이며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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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 덕성여대 청소노조 분회장 ⓒ 이희훈

 
- 지난해 10월 파업까지 갔었다.

"학교가 콧방귀도 안 뀌니 우리로선 뭐라도 해야 했다. 마침 수시 시험이 있는 시기였다. 학교는 이렇게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행사가 있을 때 특히 민감해 하니까. 우리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우리도 엄마들이다. 학생들이 시험 보러 왔는데 떠들 순 없었다. 그저 피켓만 들고 침묵 시위만 진행했다.

조합원 전체 파업이 9일 갔고, 간부 파업은 14일 갔다. 더 이상은 힘들었다. 벌써 학교가 엉망이었고 학생들 불만도 높아졌다. 우리들의 출혈도 너무 컸다. 파업을 하면 임금을 못 받으니까. 대개 60~70만원씩 월급이 까였다. 많이 까인 조합원은 100만원까지 줄었다. 월급이 185만원인데 그만큼 까이면 사실 우리에겐 치명적이다. 여기 엄마들은 거의 다 가장들이다. 평균 연령이 63세가 넘어가니 남편이 없거나 이미 은퇴해서 사회 활동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소 저축하면서 살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그런데도 이탈하지 않고 파업을 했다." 

- 파업은 끝났지만 총장실 앞 농성은 계속하고 있다. 이후 학교 측과 대화가 있었나.

"없었다. 면담 요청을 아무리 해도 총장님이 만나주시질 않는다. 농성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해 5월 총장님과 만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학교 측은 늘 '우리와 상관 없는 일이니 용역회사에 가서 알아보라'고만 했다. 하지만 투쟁이 길어지자 '시급 400원 인상 수용할 테니 2026년까지 감축되는 인원 12명에 대한 충원은 없다는 데 동의하라'고 제시했다. 앞뒤가 전혀 안 맞지 않나. 학교 스스로 자신이 사용자 맞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인원 감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내가 지금 인문사회관 1층을 맡고 있는데 극장식으로 된 큰 강의실이 4개, 작은 강의실이 2개, 세미나실 8개, 여자화장실 2개, 남자화장실 1개, 변기수가 총 20개다. 요즘처럼 방학 때면 스쿠터 무게의 청소기계로 바닥에 윤을 내고 대청소까지 해야 한다. 작년 방학 땐 학교에서 노후 케이블, 천정 에어컨 교체 공사를 했는데 그때 나온 석면이나 공사 잔해들도 우리가 다 치워야 했다.

코로나 밀접 접촉 학생들, 확진자 학생들이 주말에 분리 시험을 봤을 때도, 교직원 선생님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역복을 입은 채 시험 관리를 했지만 청소 노동자들에겐 마스크 한 장 지급되지 않았다. 우리들은 '혹시 감염되면 어떡하지'하고 벌벌 떨면서 쓰레기 치우고 청소했다. 참 너무하다 싶었다. 그런데 인원이 준다는 건 지금보다도 일이 더 늘어난다는 얘기 아닌가.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 학교 측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거론했다고 하더라.

"학교가 용역회사에 손배소를 내겠다는 내용증명을 수차례 보내왔다고 전해 들었다. 협박성이다. 지난해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배를 청구한 경우는 있었지만, 학교가 직접 노동자들에게 소송을 낸 적은 없었다. 학교가 무슨 손해를 입었다는 건지 사실 의아하다. 노조법 2조 개정이 반드시 돼야 한다. 원청인 학교가 이렇게 다 쥐고 흔들면서, 사용자로서의 권리를 다 누리면서, 막상 책임질 일이 생기면 '나는 모른다' 하는 게 맞나."

"노조법 2조 개정해야... 그들이 인정 안 해도, 우리는 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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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 덕성여대 청소노조 분회장 ⓒ 이희훈


- 학교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은 수익 내는 게 지상 목표인 일반 사기업과 다르지 않나. 그런데 원청으로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심지어 우리보고 '너희는 덕성여대 일원이 아니다, 용역업체 직원이다, 우리 학교에서 나가라'고 하니까.

하지만 우리도 학교가 '나쁜 학교'로 낙인 찍히는 건 원치 않는다. 학교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도 덕성에서 일하는 덕성인이다. 덕성에 10년 이상 몸 담는 동안 그 생각으로 일했고, 덕성을 사랑한다. 그건 알아줬으면 좋겠다.

학생들에겐 그저 미안하다. 모진 말도 들었지만, 학생들도 빨간 조끼를 입은 우리들을 보고 있을 거다. 그리고 학생들도 사회에 나가면 노동자가 될 거다. 학생들이 언젠가 노동자로서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여성들은 특히 더 그런 일이 많을 텐데, 우리 존재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알바를 하더라도 '주휴수당 주세요'라고 크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학생이 1000명 중 단 1명일지라도, 우리를 그렇게 기억하는 학생이 있기만 하다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더는 미안하고 싶지 않다. 3월이면 또 개학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돌아오기 전까진 끝났으면 좋겠다."

[관련 기사]
"고소한 학생들 미워하지 않아...방관하는 '진짜 사장' 연세대가 문제" http://omn.kr/1zot2
[노란봉투법①] 유최안 "죽음 결심했었다...470억 손배? 더 잃을 것도 없다" http://omn.kr/213uj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노란봉투법 #윤경숙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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