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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못지않은 매력 지닌 베트남 종단열차

서울-부산 4배 거리나 되는 베트남 종단 철도

등록 2022.09.13 17:27수정 2022.09.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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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종단했습니다. 남부의 대표도시 호치민시티부터 북부에 위치한 수도 하노이까지를 가로지르는 여정이었습니다. 두 도시를 잇는 철도의 길이만 해도 1726km에 이르렀고, 저는 여기서 북부의 사파까지 한참을 더 가야하니, 총 거리가 2000km를 훌쩍 넘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이 400km 남짓이란 점을 고려하면 베트남 종단은 꽤나 긴 여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열차를 좋아하는 저는 몇 년 전 블라디보스톡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열차여행을 한 일이 있습니다. 목적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 박경리 선생 동상이 막 섰던 참이고, 그 도시엔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묻혀 있었기에 그들을 만나는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이때 모스크바까지의 시베리아횡단열차 거리만 9288km이고 모스크바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가 700km가 넘어서 꼭 1만km를 달리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그 2할쯤에 해당하는 것이었죠.


베트남 종단은 여러 도시를 다니며 문물을 만끽하는 여행 목적의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철도 등 교통수단을 체험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횡단이나 종단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만큼 큰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인기의 이유로 꼽힙니다. 남북을 횡단하는 와중에 내려 쉴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들, 요컨대 남쪽부터 나트랑, 뀌년, 꽝아이, 다낭, 후에, 동호이 같은 특색 있는 도시들이 해안을 따라 줄지어 있는 것이죠. 비행기처럼 훨씬 빠른 교통수단이 있음에도 철도의 인기가 높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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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철도 1미터 협궤를 달리는 베트남 열차는 차량 폭이 좁다. ⓒ VNR

 
1726km 달리는 베트남 종단열차

철도는 한 나라를 이해하기에도 좋은 수단입니다. 어느 나라든 철도가 교통과 물류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철도가 멈춰서는 주요한 역과 그 규모는 개별 도시의 경제를 이해하는 효과적인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쌀 공출에 시달린 일제강점기 동안 목포와 여수, 이리(현 익산)의 철도가 발달했고, 현재 세종에 KTX 주요 역사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그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무려 1700km가 훌쩍 넘는 베트남 종단열차를 한 번에 가려면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걸립니다. 때문에 시간이 갈급한 여행객들은 열차 안에서 잠을 자고 내려서 하루를 시작하는 경제적 탑승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트남 열차엔 침대칸이 발달해 보통의 좌석차량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마찬가지 이유죠.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경우 차량 전체에 2층 침대를 놓은 3등실, 2층 침대 2개씩 방이 구분된 2등실, 테이블 양쪽에 단층 침대가 자연히 횡으로 누인 침대도 길이가 짧고 복도 역시 좁습니다. 하나씩 있는 1등실로 구분돼 있다면, 베트남 열차 침대칸은 모두 방구분이 있는 게 특징입니다. 침대칸은 3층 침대 2개가 놓여 6명이 쓰는 방과, 2층 침대 2개가 놓여 4명이 쓰는 방으로 나누어지죠. 중앙 통로를 두고 양쪽에 2열 좌석이 놓인 일반 차량도 1~2량쯤 있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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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열차 베트남 열차 침대칸들 사이로 뻗은 통로가 좁은 차량 폭을 실감케 한다. ⓒ VNR

 
익숙지 않은 협궤열차, 색다른 경험

베트남 열차의 또 다른 특색은 협궤입니다. 이는 베트남 열차여행을 세계 열차여행 중 상위 난이도로 꼽도록 하는 요소입니다. 협궤는 표준궤로 불리는 궤간 거리 1435mm짜리 철도폭보다 좁은 폭을 이르는 용어로, 베트남도 협궤를 쓰는 대표 국가입니다. 통상 토지가 표준궤를 놓기 어려울 만큼 척박하거나(늪지대, 동토, 고저차 등), 이용자 편의보다 비용을 적게 들일 요구가 큰 경우에 설치됩니다. 식민지들은 후자의 이유로 협궤가 깔리는 것이 보통인데 베트남은 산악지대까지 많아 독립 후에도 협궤철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동토가 많아 협궤를 많이 쓰는 러시아의 경우엔 주요노선인 시베리아횡단철도 만큼은 1520mm의 광궤를 두어 열차폭이 널찍하고 쾌적한 편입니다. 이에 비하면 미터궤간으로 불리는 1000mm를 안정적으로 달려야 하는 베트남 열차는 폭이 훨씬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횡으로 누인 침대 역시 길이가 짧고 복도 역시 좁습니다. 불편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들에게도 좁게 느껴지는 열차니 상대적으로 큰 여행객들에겐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이 불편이 베트남 열차의 또 다른 매력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가장 베트남적인 것을 체험하려는 이들에게 베트남의 협궤와 야간열차 여행이 색다른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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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열차 3층 침대가 양쪽에 놓은 침대칸 모습. 3층 침대의 좁은 공간에도 출발시간이 임박하면 열차를 예매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가 높다. ⓒ VNR

 
베트남인들과 함께 보낸 하룻밤

호찌민시티 사이공역에서 오후 6시30분 출발해 다음날 낮 1시에 뀌년에 내린 저의 여정도 돌아보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같은 칸 안에서 내내 시끄럽게 통화하던 사내와 약간의 언쟁 아닌 언쟁이 있었고, 그 덕에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도 되었죠. 인심 좋은 같은 칸 이들과 먹을 것을 나누어 먹고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 참, 베트남 종단열차의 가장 큰 매력은 열차가 해안을 따라 올라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베트남은 동해안을 끼고 있으니 가는 내내 바다를 바라볼 수 있지요. 특히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는 건 꽤나 색다른 경험이라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저는 해가 뜬 뒤에야 일어났지만 말입니다.

베트남 종단열차는 아직 남북을 종단하는 고속도로가 뚫려 있지 않은 베트남에 있어 시민들이 이용하는 제일의 교통수단입니다. 그곳에서 베트남인들과 섞여 하루를 지내는 것도 베트남을 알아가는 매력적인 수단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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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열차 베트남 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기에 동편으로 해안을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 VNR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베트남 #열차 #VNR #호찌민시티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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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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