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총성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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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찬(potriss08)등록 2022.07.10 14:45
돌이켜보면 박근혜는 정말 해로웠다. 물론 국정농단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의 존립을 흔들 만한 커다란 문제였다. 하지만 더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박근혜를 통해 음모론이 좋은 무기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진 인물인 아비의 후광을 등에 업고, 7공화국 체제 이후 최초로 과반의 득표를 얻고 당선된 박근혜가, 사실은 그저 얼굴마담이고 듣도 보도 못한 최순실이라는 사이비 교주의 딸이 그때껏 대통령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문제는 그 다음이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음모론이 현실이 되었을 때, 모든 음모론은 잠정적 실체를 얻은 것이다. 그 무기를 가장 잘 써먹은 사람들은 김어준을 위시한 극단적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다. 김어준은 세월호가 고의적으로 침몰됐다고 주장했고, 그 전에 박근혜가 당선됐던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더 나아가 민주당 인사들을 향해 벌어지던 미투 운동의 배후에 공작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가 제기한 음모론 중 그 어떤 것도 사실로 밝혀진 적이 없지만, 그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잠정적 실체에 이어 이항대립적 근거를 얻은 음모론을, 수구 진영이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가로세로연구소'를 위시한 극우 유튜버들이 난립했고, 그들은 각각 N개의 음모론을 펼쳤다. 그 이후로 실시된 모든 선거마다 부정선거론이 제기됐고, 벌어진 모든 사건마다 실체 없는 배후가 지목되고 있다. 사실 여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제 누구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언어는 책임을 영원히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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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가 어제 총탄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한다. 아베는 일본의 보수 정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극우적 성향을 띄고 있다고 평가되는 정치인이며, 실제로 그가 총리로서 벌인 일도 그랬다. 나는 아베에 대해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고, 그의 죽음을 추모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가 테러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에 '쌤통' 따위의 반응을 보이는 것, 그리고 이번 사건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관망하는 것 등은 용인할 수 없는 행위이다. 그것은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따위의 당위적이고 관념적인 이유에 따른 판단이 아니다. 단지 정치적 테러리즘이 사용 가능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같이 합법적 총기 소유가 가능한 국가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한국과 비슷하게 총기 소유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더구나 3D프린터로 총기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실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무기를 만들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쏘기 시작한다면, 가장 많이 죽어나가는 존재들은 죽어마땅한 사람들이 아니라 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베의 죽음에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딱히 책임감 같은 것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음모론이라는 무기가 언어를 잠식하면서, 책임은 구태여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사건의 결과를 긍정함으로써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용인할 때, 자신들은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상상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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