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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한바탕 뒤집은 영상...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뒤엉켰다

[사오정 이야기] '배달앱 수수료 상한' 법안 통과시킨 뉴욕, '측은지심'으로 끝난 한국

등록 2022.05.19 05:56수정 2022.05.19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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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린 2021년 8월 21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도로 위로 배달라이더가 비를 맞으며 길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영업계에서 상반기 대표적 비수기는 4월이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행사의 달 5월은 그 사정이 다르다. 월급쟁이에게는 꿀처럼 달콤한 '근로자의 날', 가장들의 주머니 사정을 압박하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거기에 '부처님 오신 날'에 비록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스승의 날'까지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점 같은 서비스 업종에 5월은 반짝 성수기이다.
 
그래서일까? 4월 한 달 우리 사회를 제법 시끌시끌하게 만든 '배달 앱' 이슈가 많이 사그라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달 그렇게나 외식배달업계를 흔들었던 '배달 앱'의 근본적인 문제(음식 중계 수수료 및 배달요금)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상황은 이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관련 자영업자들이 반짝 성수기에 정신이 팔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뿐이며, 조만간 다시 터질 휴화산과 같은 상황이란 뜻이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면 가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를 대표로 하는 온라인 음식 주문 플랫폼 사업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신종사업인가? 아니면 외국에도 비슷한 사업이 있지만, 그 나라들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문제는 없는 건가?
 
같은 시스템, 같은 문제
 
필자는 이전 기사 '배달앱은 어떻게 자영업자들을 노예로 만들었나 http://omn.kr/1n7ld'를 통해 우리나라의 음식 중계 플랫폼 기업(아래 배달앱 기업)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소비자와 외식배달 자영업자 사이에 자리 잡았는지를 다루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의문처럼 이 신종사업은 이미 백여 년 전부터 냉면을 배달로 시켜 먹었다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사업 아이템일까?
 
현재의 단건 배달 서비스인 배민1(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쿠팡이츠) 사업 모델은 2017년 우버이츠가 우리나라 이태원과 강남에 도입했던 사업 모델과 같다. 비록 우버이츠는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안착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이 사례로 알 수 있는 것은 배달앱 사업이 외국에서도 상당히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바로 '과도한 수수료' 논쟁이다.
 
미국에서는 현재 도어대시(DoorDash)라는 기업이 우버이츠를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고 한다. 미국의 배달앱 기업들도 우리 배달앱 기업들처럼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재난 속에서 급격히 성장했다.
 
언제나 그렇듯 어떤 기업이 전에 없던 성장을 하면 그에 수반되는 문제 또한 발생하기 마련이다. 2021년 8월 26일 미국의 뉴욕 시의회는 배달앱 기업이 수취하는 수수료를 음식 판매가 대비 배달 수수료는 15%, 광고 수수료는 5%, 거래 수수료는 3% 내로 제한하는 '영구적인 제3자 음식 배달 수수료 상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법안은 원래 한시적 규제안이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중 뉴욕시의 음식점들 또한 매출 대부분을 배달로 올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배달앱을 이용하다 보니 최고 30%에 달하는 수수료(배달+광고+거래)를 배달앱 기업에 지급해야 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아무리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 한들 불만이 안 생길 리 없다. 그래서 뉴욕시 의회가 이들의 숨통을 틔워 주고자 한시적인 규제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뉴욕 시의회가 한시적 규제안을 '영구적인 정책'으로 변경한 것이다.
 
뉴욕 시의회의 이 법안 통과가 시사하는 것은 우리나라 배달앱에 입점한 자영업자들의 원성을 산 요소들, 즉 음식점 간 과다한 경쟁을 부추기는 배민의 무제한 깃발광고 정책, 요기요의 비싼 중계 수수료 문제, 그리고 올해 개정 발표된 배민1(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단건 배달 수수료(판매가에 최고 27%) 정책에 대한 자영업자의 반발이 결코 상투적인 엄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유시장 경제'의 나라 미국, 그래도 약자는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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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배달플랫폼지부 배달노동자 300여명이 5월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배달료 거리 깎기 중단' 촉구 집회 및 오토바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이 소식은 미국(지방정부)도 거대자본을 무기로 시장을 지배하는 플랫폼 기업의 일방적이고 높은 수수료가 소상공인들에 끼치는 악영향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그런데 뉴욕 시의회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2021년 9월 23일 도어대시, 우버이츠, 그럽허브 등과 같은 배달앱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음식 배달 노동자에 대한 보호 법안'도 통과시킨 것이다. 그 법안에 명시된 규정 중 몇 가지만 전달하면 다음과 같다.
 
배달기사는 배달 최대 거리를 설정할 수 있다.
배달기사는 다리, 터널 시설 통과를 거부할 수 있다.
배달기사에 지급되는 '보온가방'에 대해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배달앱 기업은 '음식점은 픽업을 위해 방문한 배달기사에 화장실 사용을 허용한다'라는 조항을 계약서에 추가해야 한다.
   
이 법안이 만들어진 동기도 참으로 인상적이다. 해당 법안은 허리케인으로 쏟아지는 장대비와 물에 잠긴 도로를 뚫고 음식을 배달하는 뉴욕의 'Gig worker'(우리나라의 특수고용직)의 모습이 SNS로 알려지면서,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주고자 만들어졌다. 
 
미국에서는 보호 대상, 우리는?
 
현재 뉴욕 시의회가 통과시킨 이 법안들은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들이 동조하고 있고 참가하는 주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해당 기업들은 소송을 준비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들 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고액 연봉을 지키려면, 그리고 그들의 천문학적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려면 이 법안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는 어떠할까? 미국 플랫폼 배달기사의 악천후 속 배달기사 사진은 사실 1년 먼저 우리나라에 등장했다. 그리고 사진에 찍힌 악천후 속 '위험, 고단함'은 미국발 사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의 반응은 잠시 잠깐의 측은지심과 연민으로 끝났을 뿐, 사회적 고민과 정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럼 배달 외식 자영업자의 숨통을 조이는 배달앱 기업의 수수료 문제는 어떠할까? 뉴욕시의 배달앱 기업 규제 법안에 비하면 정말 미약한 수준인 우리나라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조차 정부가 바뀌면서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뉴욕 시의회 사이트와 미국 언론 사이트를 검색하며 느낀 감정은, 솔직히 부끄러움과 부러움이었다. 코로나19 재난 기간 중 미국의 허술한 모습에 '이제 미국이란 국가의 수준은 우리보다 아래'라고 여긴 내 착각이 부끄러움을 안겼고, 우리라면 기업 성장을 방해하는 공산주의적 발생이라며 펄쩍 뛰었을 법안을 과감하게 통화시키며 사회적 약자 보호가 국가의 당연한 의무임을 상기시킨 그들의 모습이 부러움을 안겼다.
 
"우리는 수십 억 달러 규모의 기업과 그 투자자들이 음식점을 희생시켜 더 부자가 되도록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플랫폼 기업이 음식점에 부과하는 수수료를 기한 없이 제한함으로써 우리는 소상공인이 회복하고 번창할 기회를 보장해 줘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업 그리고 그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 뉴욕 시의원 Francis Moya
#배달앱 #플랫폼 #온플법 #뉴욕시 #수수료 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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