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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2년차 검사였던 윤석열... 5.18 쉽게 말하지 말라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그의 발언에서 빠진 것

등록 2021.05.20 10:27수정 2021.05.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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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발언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이번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에 즈음한 메시지 표명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5.18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며 그를 겨냥했다.

그는 지난 16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역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이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5.18은 어떤 형태의 독재와 전제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지난해 2월 20일 광주고등검찰청과 광주지방검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그는 5.18에 관한 발언을 남겼다. 이번 발언과 그때 발언에는 뉘앙스의 차이가 존재한다. 5.18과 민주주의를 연관시키는 대목에서 그런 차이가 드러난다.

작년 2월 20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당시 총장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정신을 깊이 새겨 현안 사건 공판(전두환 재판)의 공소유지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검찰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처럼 '5.18의 민주주의 정신을 새기라'고 말했던 그가 이번에는 '5.18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타오르는 것을 증명한다'고 발언했다. 2020년에는 '민주주의'와 연계시키고 금년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연결한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법조계에서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은 윤석열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1년 전인 1990년 4월 2일에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제5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에서 나타난다(89 헌가 113 사건).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1인 독재 내지 1당 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국가적 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자치·자유·평등을 구현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한 것.

그런데 한국의 보수파나 극우파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이것과 똑같지 않다. 그들이 숭상하는 이승만·박정희는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지배자들이었다. 두 독재자는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했다. 그런데도 보수·극우는 이승만·박정희를 자유민주주의의 구심점으로 떠받든다. 이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똑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설명한 뒤 구체적 내용으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 및 시장경제질서 등을 거론했다. 이런 제반 요소를 갖춰야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극우·보수는 그중에서 사유재산 및 시장경제질서를 특히 중시한다. 또 '국가권력의 공공성'보다는 '재벌과 대기업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연관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보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혜자는 엄밀히 말하면 재벌·대기업과 이들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2020년에는 5.18을 민주주의와 연관시킨 윤석열이 이번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연관시킨 동기를 명확히 밝혀줄 단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가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재판소 판례에 나온 그 자유민주주의인지, 아니면 보수·극우나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그의 향후 행보에 더욱 주목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과오, 전두환·노태우 불기소

16일에 나온 메시지에 대해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 뒤인 17일, 윤석열은 새로운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내놨다. 16일자 발언의 배경을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통화를 통해 "5.18이 우리 국민에게 널리 공유되는 역사 기억으로 교육적인 의미를 띠고, 다음 세대도 계속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5.18 당일에 이 발언을 전달한 이철우 교수는 "민주당이 만일 '5.18을 우리만 기념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5.18의 의의를 오히려 훼손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윤석열도 5.18을 언급할 자격이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철우 교수의 말처럼 5.18은 우리 국민 모두와 관련된 것이므로 누구나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의 의견 표명 자체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전직(前職)'으로 인해 문제는 달라진다. 이 때문에 그는 5.18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가 몸담은 조직은 5.18에 대한 과오가 적지 않은 검찰 조직이다. 검찰의 과오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5.18 진상규명 요구가 뜨거웠던 1995년에 나왔다. 그해 7월 19일자 <동아일보> 1면 톱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5.18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18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피고소·고발인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고 불기소처분했다고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5.18 진상규명을 저해하는 반역사적인 공소권 없음 결정이 검찰에서 나왔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관한 검찰의 설명은 황당했다. 전두환을 처벌하면 그가 만든 헌정질서가 파괴돼 사회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검찰은 '공소권 없음' 결정과 관련, '80년 당시 신군부의 일련의 행위에 대해 위법 여부를 판단할 경우 헌정질서나 법질서의 단절을 초래, 정치·사회·법률적으로 중대한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어 사법판단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밝혔다.
 
검찰이 반역사적 결정을 내리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두환이 의도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또 계엄군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 관련, 계엄군의 강경 진압이 시위 상황을 악화시켜 살상행위로까지 이어졌으나, 신군부 측이 광주 유혈사태와 같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촉발 또는 기도했다고 볼 만한 증거 자료나 관련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전두환이 학살을 자행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두환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기 힘들므로 재판에 회부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중대 범죄가 자행된 객관적 상황에 주목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전두환의 내면 심리까지 거론하면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때 윤석열은 2년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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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비 전국 지검장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유성호

 
그해 겨울에 검찰이 전두환을 소환하고 12월 1일에 전두환이 소환장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그 사이에 검찰의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검찰의 결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가운데, 11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이 "5.18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을 의법 처리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결과일 뿐이었다.

수사권 및 강제수사권(구속·압수수색)과 공소 유지(재판상태 유지) 등을 통해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독재정치를 보조했던 검찰이다. 그런 검찰이 전두환 퇴임 7년 뒤인 1995년 7월에는 '헌정질서의 연속성이 깨질 수 있다', '전두환이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5.18 진상규명을 향한 국민적 열망을 저버렸다.

'공소권 없음' 결정 당시 윤석열은 2년차 검사였다. 그 결정이 국민들을 얼마나 분노케 했는지를 그가 잊어버렸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5.18에 관한 메시지를 띄우면서 검찰의 과오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반 검사가 아닌 검찰총장을 지낸 그가 '다음 세대도 5.18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 데 그쳤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검사였든 아니든, 1995년에 검사였든 아니든, 1980년 이후의 검찰총장들은 검찰의 과오를 항상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퇴임 뒤에도 마찬가지다. 현직이든 전직이든, 검찰 조직을 이끈 총장들은 검찰의 과오에 대한 참회 의식을 품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담화에는 그게 없다. 그것이 문제다.
#윤석열 #5.18 #광주민주화운동 #자유민주주의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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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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