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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왜 정부 여당에 등을 돌렸느냐고?

[보궐선거 그 후] '원래 민주당편'이었던 계층은 없다

등록 2021.04.20 12:01수정 2021.04.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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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및 캠프 관계자들이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20대 여성, 20대 남성, 30대 남성, 30대 여성. 모두가 우리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단언컨대 '원래 민주당편'이었던 계층은 없다. 청년들이 보내주는 지지는 당연했던 것이 아니다. 먼저 환상에서 깨어나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게재한 장문의 4.7 보궐선거 분석 글 중 일부다. 20대 청년층의 보궐선거 표심을 두고 갖가지 분석과 설왕설래가 난무하는 가운데 박 전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여성정책에만 그리고 페미니즘에만 '올인'했다? 그래서 졌다? 이토록 게으르고 손쉬운 분석이 어디 있는가"라며 이렇게 일갈했다.

"정치권에서 청년층은 여전히 어렵고 복합적인 존재인데,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노력조차 하기 어려우니 일각에서 주장되는 하나의 이유를 붙여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청년층의 보수화가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만 봐도, 60대 다음으로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세대가 바로 20대 남성층이었다. 2017년 대선(한국갤럽 예상 득표율 조사)과 4.7 보궐선거(지상파 3사 출구조사)를 비교하면, 20대 남성을 놓고 봤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15%p 정도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놓고 보면, 박영선 후보는 40대 남성을 제외하고 전 연령대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패배했다. 딱히 20대 남성의 표심 이반을 도드라지게 걱정하기보다 더 근본적인 패배 요인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 '갈라치기'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일 터다.

질문

이렇게 묻자. 민주당이 집권 내내 페미니즘에 '올인'했는가. 진짜 그랬다면, 이른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왜 정부나 여권을 여전히 비판하는가. '올인'하지 않았다면, 일부 국민의힘 인사들은 왜 20대 남성 표심에 유독 집착하는가. 정부 여당이 이를 비판적으로, 적확하게 읽어내지 못한다면, 차기 대선에서도 이 이른바 '페미니즘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여권이 주목해야 할 표심은 출구조사 결과 40대 남성에 이어 유'이'하게 박영선 후보의 승리를 안겨 준 20대 여성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왜 그나마 오 시장보다 박 후보(앞서 언급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박 후보는 오 시장에게 3.1%p 차이로 앞섰다)에게 좀 더 표를 던진 걸까.

적어도 선거 국면에 있어서는 2030세대의 주류 담론 혹은 화두가 된 '페미니즘 담론'은 걷어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언론이나 소셜 미디어 주도층이 갑론을박하기 안성맞춤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찬반이 실제 표심으로 연결됐다 확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결국 '정권심판론'이 우세했던 이번 보궐선거 역시 유권자들은 계급 계층의 이익 혹은 그에 따른 기대 심리에 기댄 측면이 우세했다. 20대 여성이라고 크게 달랐을까. 식자들의 담론보다 자기 피부에 와 닿는 그간의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를 되돌아보지 않았겠는가.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 정국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했다. 현 정부 들어 갖가지 디지털 성범죄와 여성 혐오 범죄가 가시화됐다. N번방 사건이나 버닝썬 게이트, 연예인 불법 촬영물 제작 및 유포 사건, 이전 정부에서 이어져 온 미투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20대 남성보다 20대 여성의 여권 지지가 높았던 것 역시 같은 결과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란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여성 대상 성범죄 수사에 일정 정도 제스처를 취하고 디지털 성범죄 척결에 신호를 보냈다. 공분을 불러일으킨 N번방 사건의 사법적 판단을 가시화해냈으며 우여곡절 끝에 '스토커 방지법'을 통과시킨 현 정부를 지지했다는 결론이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20대 전체의 정서는 어떠했을까. 보궐선거 전 1020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이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직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이른바 유머 페이지에 올라온 박영선 후보의 전통 시장 방문 사진이다.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린 해당 게시물은 전통 시장을 방문해 길거리 음식을 먹는 박 후보의 모습이었다. 대학생이 주를 이루는 사용자들에게 대체로 "별반 다를 게 없는 기성 정치인"으로 조롱을 받고 있었다. 20대의 생활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전통 시장을 찾아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구태' 정치인으로 비춰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단 그 사진과 게시물의 조롱이 전부였을까. 이렇게 질문해 보자. 이번 보궐선거에서 여권은 과연 단단하게 덧씌워진 '내로남불'과 '위선'의 이미지를 혁파할 만큼의 파격을 선보였나. 몇몇 청년 대상 정책을 제외하고 기존의 관행을 답습해 온 것은 아닌가. 

게으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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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공약 난무하는 보궐선거 반대한다." 지난 1일 오후 서울도서관 앞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응을 위한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청년들의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1020세대는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에 수천 건의 댓글을 달며 바로 이러한 '내로남불'과 '위선'을 지적하고 있었다. 소위 '뽑아줬더니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다'거나 '촛불로 당선된 정부가 나태하다', '공정한 정부 맞느냐'하는 여타 세대의 정부 비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양상이었다.

20대가 정치에 무지하다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좋다. 그렇다고 치자. 그럴수록 뉴스 하나, 각인된 이미지 하나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정부 여당은 그 20대를 위해 어떤 혁신과 개혁을 실천해왔는가. 그 20대 표심을 붙잡기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할 수 있는가. 그저 촛불에 기대 '저쪽보단 이쪽이 낫다'는 게으른 정치에 '올인'했던 것은 아닌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이후 그에 대한 대응책마저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3월 이후 드러난 민심 이반을 자처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급조되다 못해 누더기에 가까운 채로 국회를 통과한 이해충돌방지법이 그 증거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대는 '내 집 한 채', '내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20대에게 현 정부 여당은 지지할 만한 '희망'을 심어줬다고 자신할 수 있나.

이게 다 '언론 탓'이라고 하소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MBC <스트레이트> 조사에 따르면, 포털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진보 언론'의 뉴스량은 4% 미만이었다고 한다. 과거보다 현 정부에 극도로 불리한 언론 지형, 맞다. 그 진보 언론마저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전부일까. 20대나 청년층만으로 국한시켜 보면 어떨까. 이들이 과연 기성 언론을 통해 얼마나 세상을 볼까.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진영 논리가 20대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칠까. 결코 높지 않은 '국민의힘'의 20대 지지율이나 변치 않는 보수야당의 비호감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도 싫지만 정부 여당 역시 무능하고 위선적'이란 프레임이야말로 이번 선거를 좌우한 대표적인 표심 아니겠는가.

정치 저관여층일수록 기성 언론이나 기존 프레임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언론이나 여론의 지형을 정부 여당이 몰랐다면 무능했고, 알고도 지금처럼 임했다면 무능과 무책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결국 20대의 표심 역시 다른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언컨대 '원래 민주당편'이었던 계층은 없다"는 박 전 최고위원의 평가는 옳다. 21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몰아준 180석을 가지고도 민주당은 각 계층이 요구하는 개혁에 머뭇거렸고 언론의 눈치만 봤다. 결정적으로 각종 개혁 입법이나 진보적 정책에선 보수 야당 핑계를 댔다. 180석을 가지고도 말이다.

20대라고 다를 바 없다. 진즉 보수화돼왔던, 아니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청년층을 탓할 필요가 없다. 여당'발' 제한적 '군 가산점 제도 부활' 운운이 헛발질로 보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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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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