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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숲... 서울 한복판의 무릉도원

여의샛강생태공원을 가꾸는 시민들... 누구나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등록 2021.04.20 15:20수정 2021.04.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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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 내내 저는 말을 더듬는 아이였습니다. 저에겐 일고여덟 살 무렵의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나마 어릴 때 기억 중 또렷한 것 중 하나가 바로 A언니에 대한 것입니다.


말더듬이들은 첫 말을 발화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목구멍에서 말이 갇혀 있다고 할까요. 갇힌 말을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긴장과 불안이 교차합니다. 아이였던 저는 말을 하기 위해 팔을 크게 흔들거나 하는 따위 동작으로 겨우 갇힌 말을 내뱉곤 했지요. A언니가 저의 동작을 흉내내며 놀렸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그런 언어장애를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학창 시절 내내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배제와 차별, 소외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채 살아 보니, 아무래도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이제까지 이런저런 봉사 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환경을 위한 봉사, 외국인들과의 인권 활동, 정신장애인들과의 친구되기 활동,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발달장애인들 댄스 교실에서 봉사도 했고요.

제가 하는 일도 점차 약자들을 돌보고, 다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주의 단체에서 일하며 난민을 지원하는 일을 했고, 지금은 환경을 가꾸고 문화를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환경이나 자연 생태계도 인간의 문명에 밀린 '약자'나 다름없으니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샛강생태공원
 

여의샛강생태공원 버드나무 숲 올 봄 초록 향연을 펼치는 샛강 버드나무 숲입니다. 샛강에서 자원봉사를 줄기차게 하는 이영원 선생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 이영원

  

비에 젖은 여의샛강생태공원 지난 4월 3일 비가 내리는 여의샛강생태공원 여의못 주변 모습입니다. 이 아름다운 숲을 가꾸는 데 힘을 보태는 이영원 선생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그는 은퇴 후 자원봉사로 샛강을 가꾸는 일에도 열심입니다. ⓒ 이영원

 
제가 일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2019년 봄부터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이고 여의도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곳인데, 아는 사람만 알고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23만평의 넓은 하천 부지이자 공유지라 시민들과 같이 잘 가꾸면 멋진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제안을 했고 받아들여져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위탁운영을 하고 있고요.

2년여 전 초봄에 여의샛강생태공원에 와서 맨 처음 한 일은 가시박 죽은 덩굴들을 장대로 걷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가시박은 하천변의 도도한 주인 노릇을 하곤 하는데, 샛강에서도 커다란 버드나무들을 타고 올라 나무들이 시름시름 죽어가게 했습니다.


저희는 시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가시박을 걷어내고, 환삼덩굴을 뽑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하천변이라 여겨 시민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도 수시로 줍고 있습니다. 그러자 샛강은 서서히 찬란한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원시의 자연을 간직한 곳, 도심 속 비밀의 숲, 일상의 반전을 꿈꾸는 곳, 버드나무 숲이 아름다운 곳, 이런 찬사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갑갑한 코로나시대, 공원과 자연이 아쉬운 시민들의 발길이 샛강으로 향했습니다.
 

샛강에 꽃을 심는 시민들 기후실천투어에 참여한 영등포장애인복지관 시민들이 함께 쑥부쟁이를 심고 있습니다. 오가는 산책 시민들에게 가을께 아름다운 선물이 되겠지요. ⓒ 조은미

 
저희는 이에 맞춰, '코로나 블루 숲 치유'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꽃과 나무를 심는 활동도 계속 만들어가고 있습니다(코로나 안전이 제1원칙이기에 야외이지만 소규모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난달 영등포장애인복지관 분들을 만나며 이 자부심이 미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샛강은 복지관 코앞에 있지만, 저희에게는 멀리 있는 섬 같은 곳이지요. 장애인들에게는 접근하기가 너무 불편하거든요."

다같이 겪는 코로나블루를 극복하는 일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보다는 연세가 있으시거나 소외계층에 있는 분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잊고 있었습니다. 사실 샛강에서 일을 시작하며 구현하고 싶은 것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원이었지만, 그저 '언젠가 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가꾸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원
 

무릉도원 교실 여의샛강생태공원에 무릉도원을 만들고 거기에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 야외 교실을 만들었습니다. '버드나무교실' 자원봉사자들이 여의샛강생태공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 조은미

 
저희는 아예 샛강 공원 가운데 아름드리 참느릅나무와 뽕나무가 멋있게 서 있는 곳을 가꾸고 무릉도원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재작년 태풍에 쓰러진 버드나무를 잘라 통나무 의자로 만들고 야외 교실을 조성했습니다. 산책로 옆에는 참나리와 쑥부쟁이를 심었고요. 이제 남은 숙제는 이곳 무릉도원에 누구나 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해달라는 프로그램은 다 열어주자, 일단 기조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영등포구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해 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무릉도원 근처에서 샛강의 봄꽃을 구경하며 느릿느릿 산책을 하는 프로그램을 했습니다(그러나 보행이 어려운 어르신에게는 무릉도원까지 걸어오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의 가드닝 여의샛강센터 옥상 한귀퉁이에서 가드닝에 여념이 없는 서울 사는 프랑스인들. 코로나 안전수칙을 위해 철저히 소규모로 활동합니다. ⓒ 조은미

 
서울에 사는 프랑스인들이 가드닝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길래 옥상 귀퉁이 공간을 열어주었습니다. 프랑스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또 서래마을 이웃들이 오가며 그 작은 공간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7일에는 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서 기후실천투어를 해보았습니다. 
 

샛강 기후실천투어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함께 샛강에서 4월 17일 진행한 기후실천투어 ⓒ 조은미

 
공원이 너무 아름답다고, 이런 곳이 근처에 있는 줄 몰랐다고, 꽃을 심을 수 있어 기뻤다고 말하는 장애인 시민들의 소감에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무릉도원을 가꾸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드는 일이 이제 시작입니다.
 

샛강의 명자나무 꽃 지는 벚꽃과 피어나는 명자나무 꽃이 한데 어울려 또 자연을 만듭니다. 이렇게 자연에서는 생명의 순환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 이영원

 
장애인으로 호명되기보다 '인간 장영희'라고 말씀하셨던 지금은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님이 가르쳐준 삶과 시에서, 삶의 길을 찾고 따라 걸어봅니다. 작은 새 한 마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소소한 선의와 호의, 관심과 환대를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자, 이곳 무릉도원으로 오셔서 꽃 한 포기 심어 보시겠어요?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진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 에밀리 디킨슨 시 부분 인용. 장영희 교수님 번역
#여의샛강생태공원 #장애인의날 #샛숲학교 #사회적협동조합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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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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