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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한국 여성 가방에 불, 그 다음 생긴 뜻밖의 일

[깨는 여자들 ③] '매디캡' 띄운 매들린 박... "뉴스 보고 정말 화가 났다"

등록 2021.04.19 07:01수정 2021.04.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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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성들이 있다. 당연한 틀을 갈라지고 터지게 만든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편집자말]
  "나와 같은 나이의 한국 여자 가방에 대낮에 불이 불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더 불안해졌어요."

지난 3월 30일 오전 8시 35분(현지시간), 뉴욕 지하철역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 남성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 뒤로 다가가 그녀의 배낭에 불을 붙였다. 피해자는 지하철에 올라타 다른 승객들이 그 사실을 알려주기 전까지 자신의 배낭에 불이 붙은 줄도 몰랐다고 했다. <뉴욕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이 사건을 동양 여성에 대한 증오 범죄로 보도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증오범죄에 노출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택시비를 지원하는 '매디 캡'(Maddy Cab, 매디는 박씨의 애칭) 캠페인의 발단이 됐다.

이 캠페인을 시작한 매들린 박(29, 한국 이름 박나진)씨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해당 뉴스를 접하고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정말 화가 났어요. 터무니없고 비논리적인 외국인 혐오증에서 비롯된 분별 없는 증오 범죄니까요."

행동
 

매들린 박씨는, 증오범죄에 노출된 뉴욕 내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택시비를 지원해주는 '매디 캡'을 시작했다. 이틀 만에 1억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 매들린 박 인스타그램(@cafemaddy)

 
앞서 일어났던 증오 범죄 뉴스를 접하면서 박씨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그는 "무서웠다"고 했다. "인종차별 증오범죄 뉴스가 많이 나오다 보니 지하철 탈 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자신과 같은 나이의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 또한 "앞으로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학생 때 항상 돈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타고 걸어 다녔거든요. 이런 학생들이 많을 거 같아서 속상했어요. 택시 탈 돈만 있으면 (일단은) 안전할 수 있을 텐데..." 

그는 행동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카페 매디 캡' 계정을 개설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택시를 이용하고 자신에게 비용을 청구하라며 2000달러(약 223만원)을 내놓았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 뉴욕의 아시아계 여성, 노인, 성소수자들은 택시를 타고 비용을 청구하세요. 40달러(약 4만5천원)씩 택시비를 지원하겠습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기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돈은 12만 5435달러(약 1억 3983만원)에 이른다. 그 돈으로 1122명에게 택시비를 지급했다. 

지지
 

매들린 박씨는, 인스타그램 계정(@cafemaddycab)을 통해 '매디 캡' 시작을 알렸다. ⓒ 매디 캡 인스타그램(@cafemaddycab)

 
박씨는 자신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뜻을 함께 한 것에 대해 "정말 놀랐다"고 했다. 

"(아시안 증오범죄) 뉴스 영상을 보면서 아무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고 눈앞에서 폭행을 당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어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지난 몇 달 동안 찾을 수 없었던 '희망'을 이 캠페인을 통해 봤습니다. 기부금이 쉬지 않고 들어오는 걸 보면서 우리가 안전했으면 좋겠는 사람이 참 많구나 느꼈어요. (이 캠페인으로) 모든 사람이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관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며 박씨가 내 건 기치는 'We've got your back(걱정 마, 우리가 있잖아)'이었다.

"매디 캡은, 우리가 고통 속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줘요. 사람들은 서로를 지지하기 위해 함께 모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생각해요." 

매디 캡 이용자들은 다종다양하다.

"병원에 매일 출퇴근하는 간호사분들도 많고요.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싶은 사람, 밤에 나왔다가 안전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택시를 부른 사람,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가는 사람, 지하철을 타려다 수상한 사람을 보고 뛰쳐나와서 택시를 탄 사람... 엄청 많은 거 같아요. 다들 밖에 나가면 불안한 심정이라고 하네요."

균열

15년 전 미국으로 이민 와 뉴욕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한국 사람이 많은 뉴저지 뉴욕에서 자라 요즘처럼 심한 인종차별은 겪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는 작년에 시작했는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아시안 증오범죄가 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어떤 사람은 (아시안 증오범죄는) 똑같이 많았는데 보도가 안됐을 뿐이라고 하는데, 몇 주 전 총기사건을 보면 심해지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작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로 흑인 인종차별부터 이제는 아시안 인종차별까지... 너무 안 좋은 일로 이슈가 많이 된 만큼 이제 변화할 차례인데, 변화가 생기는지는 두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매디 캡을 통해 개인적 변화를 일궈낸 그녀의 최종 목표는 "매디 캡이 최대한 빨리 필요 없게 되는 것"에 있다.

"정부는 우리가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돕기 위해 개입해야 합니다. 관리들과 정치인들은 아시아 증오 범죄와 외국인 혐오증을 정치적으로 비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지하철 승강장과 거리가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돕기 위한 시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필요할 때까지 계속 매디캡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뉴욕이 안전해져서) 더 이상 매디캡이 필요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독립편집부 = 이주연·이정환 기자 facebook.com/ohmyeum
#매디 캡 #뉴욕 증오범죄 #미국 인종차별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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