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은 어쩌다 '꽃 중의 왕'이 됐을까

등록 2021.04.16 13:40수정 2021.04.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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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모란꽃 마침내 활짝 핀 모란꽃 ⓒ 정병진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란꽃이 오늘 드디어 피었습니다. 화왕(花王), '꽃 중의 왕'이라 그런지 아니면 새색시의 수줍음 때문인지 시나브로 피는군요. 봄이면 산과 들에 온갖 꽃이 피어납니다. 매화, 복사꽃,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모과꽃, 철쭉꽃, 목련꽃.... 그 하고많은 꽃 중에 모란은 어찌 '왕'의 자리에 등극하였을까요?

그것도 삼국시대에 이미 '화왕'으로 뽑혔으니 천년도 훨씬 넘게 장기 집권입니다. 이만하면 퇴임할 때도 되었으니 화상(花相: 꽃의 재상)인 '작약'에게 옥좌를 내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모란꽃은 '자리에 절대 연연하지 않는다'며 매년 작약 꽃에게 바통을 넘기곤 합니다. 하지만 여태 자신을 대체할 적당한 후계자가 없다며 완전히 물러나진 않는군요. 
  

모란 꽃망울 모란 꽃망울 ⓒ 정병진

 
신라의 뛰어난 문장가로 알려진 설총은 '화왕계'(花王戒)란 글을 남겼습니다. 신문왕이 심심해할 때 들려준 우화랍니다. 이 이야기에서 모란은 왕으로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대강 이렇습니다.

모란 왕은 자신을 알현하고자 몰려드는 여러 꽃 중에서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홀딱 반해 왕비 삼아 가까이 두려 합니다. 이즈음 또 다른 꽃이 찾아왔는데 '백두옹(白頭翁)'이란 이름의 '할미꽃'입니다.

백두옹은 서울 밖에서 사는 지조 높은 충신을, 장미는 달콤한 아첨을 일삼는 간신을 상징합니다. 모란 왕은 두 꽃 사이에서 누굴 택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실망한 백두옹은 "현명한 왕인 줄 알고 찾아왔더니 내가 잘못 봤다"며 떠나려 합니다. 그제야 모란 왕은 자신이 잘못했다며 할미꽃을 붙잡습니다. 
  

모란 꽃망울 자태를 드러내는 모란꽃 ⓒ 정병진

 
사실 모란은 향기로 치면 그리 자랑할 게 못 되는 수준입니다. 가까이 코를 대야 겨우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약하디 약하게 풍깁니다. 은은하긴 하지만 잊지 못할 만큼 인상 깊은 향기는 아닙니다.

이에 비해 서향(천리향)은 꽃은 비록 작지만 그 향기가 일품입니다. 굳이 가까이 접근하지 않아도 충분히 맡을 수 있습니다. 또 홍단풍꽃은 어떻습니까? 잘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수많은 꿀벌을 불러들일 정도 인기가 대단합니다.  
 

붉게 핀 모란꽃 마침내 붉게 핀 모란꽃 ⓒ 정병진

 
모란이 '꽃의 왕'의 자리를 차지한 비결은 아마도 꽃 자체의 풍성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란꽃은 꽃잎이 큰 편일 뿐더러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꽃을 둘러싼 이파리들도 무성합니다.

모란꽃 색깔은 세 종류, 곧 붉은색, 흰색, 분홍색의 꽃이 있습니다. 품종 개량으로 형형색색의 꽃이 피는 장미에 비하면 단순한 편입니다. 하지만 꽃도 크고 여러 겹으로 피는 데다 천천히 피어나 겨우 일주일 정도 만에 지고 말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커 사람들의 남다른 사랑을 받은 거 같습니다. 
 
김영랑 시인은 "온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 노래하였습니다. 그에게 모란꽃은 한 해의 절정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나는 모란꽃이 진다 해도 그 정도 서운하진 않습니다. 모란꽃 닮은 '작약꽃'이 피어날 순번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모란꽃 작은 모란꽃 ⓒ 정병진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모란꽃 #화왕계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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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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